한국인의 아버지로 사랑받은 배우 최불암이 지난달 29일 별세했다. 발인은 2일 오전 엄수되며 같은 날 오전 9시 여의도 성당에서 장례미사가 거행 된다. 빈소에 놓인 영정 이미지에 국화를 얹었다./이미지합성


'수사반장'과 '전원일기'로 한 시대를 함께한 국민배우 최불암이 지난달 29일 서울 강서구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87세. 지난해 3월 허리디스크 수술 후 '한국인의 밥상'에서 하차하고 재활에 힘써왔지만 최근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

사랑과 세상을 향한 책임, 그리고 성실함이 그의 87년 삶을 관통했다. 사람을 향한 애정은 어린 시절부터 그의 곁에 있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뒤 어머니는 홀로 서울 명동에서 막걸리집 '은성'을 꾸렸다. 박인환, 천상병 같은 문인들이 막걸리잔을 기울이며 시와 삶을 이야기하던 그곳이 소년의 첫 학교였다. 아들이 극단 무대에 서면 어머니는 가게의 예술가 손님들과 공연을 보러 갔고, 막이 내리면 함께 연기를 짚어줬다. 어머니는 그의 첫 관객이자 첫 비평가였다.

연극에 평생을 걸겠다던 청년을 TV로 이끈 것도 사랑이었다. 첫눈에 반한 당대의 스타 김민자를 만나기 위해 브라운관으로 향했고, 두 사람은 1970년 부부가 됐다. 반세기 넘게 서로의 곁을 지켰다. 2024년 최불암이 '한국인의 밥상' 출연 14년 만에 첫 휴가를 떠났을 때 빈자리를 목소리로 채운 사람도 아내였다. 김민자 역시 난청 아동을 돕는 '사랑의달팽이' 회장을 맡아 나눔의 길을 걸었다.
MBC '전원일기'의 한 장면./MBC


낮고 묵직한 목소리 때문에 젊어서부터 자신의 나이보다 훨씬 무거운 역할을 맡았다. 20대 후반부터 노역을 소화했고, 청춘물의 주인공보다는 중후한 인물로 먼저 기억됐다. 18년간 '수사반장'의 박영한 반장으로, 22년간 '전원일기'의 양촌리 김 회장으로 살며 시시비비를 엄중히 가리면서도 따뜻한, 한 시대 한국인이 기대한 '아버지의 얼굴'이 됐다.

최불암은 그 얼굴이 가진 힘을 누구보다 무겁게 여겼다. '수사반장'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본 박정희 대통령이 따라 담배에 불을 붙인다는 말을 전해 들은 뒤, 화면 속 몸짓 하나가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려웠다고 했다. 그 두려움은 책임감으로 바뀌었다.
1981년 '수사반장' 500회 특집에서 어린이 유괴와 가족의 아픔을 다룬 일은 이후 미아 찾기 방송과 사회적 관심으로 이어지는 계기 가운데 하나가 됐다.

'전원일기'에서 금동이의 입양을 그린 뒤에는 아동 후원에도 적극 나섰다. 1981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인연을 맺었고, 1985년부터 전국후원회장을 맡아 40년 넘게 아이들을 돌봤다. 박 반장의 이미지는 현실에도 스며들었다. 1972년 명예 경찰에 위촉됐고, 2024년에는 민간인 최초로 명예 국가수사본부장이 됐다. "좋은 배우가 되려면 먼저 사람이 돼야 한다"는 그의 말이 삶으로 이어졌다.
MBC '수사반장'에서 박 반장(가운데)역의 최불암과 남 형사(왼쪽, 남성진), 김 형사(김상순)./MBC


성실함도 빼놓을 수 없다. 2011년부터 14년간 인간 최불암으로 '한국인의 밥상'을 이끌며 전국의 바닷가와 산골을 누볐다. 일흔을 넘긴 나이에도 평범한 사람들과 마주 앉아 밥을 나누고 그들의 삶을 들었다. 2024년에야 14년 만의 첫 휴가를 떠날 정도로 프로그램을 오래 지켰다. 그동안 단 한 번의 지각도, 조퇴도 없었다.

생전 마지막 인터뷰에서 그는 '행복은 혼자 누리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것'이라고 했다. 황혼을 바라보며 "뜨는 것도 감동이고, 지는 것도 감동"이라고 말한 그의 시선에는 삶의 시작과 끝을 함께 껴안는 너그러움이 묻어났다.

빈소를 찾은 김혜자는 "너무 그리운 사람"이라며 그를 기렸다. 1969년 '개구리 남편'을 시작으로 '전원일기'까지 화면 속에서 가장 오래 그의 아내로 호흡을 맞춘 배우다. 문화예술계와 후배 배우들의 추모도 이어졌다. 지난 6월 병실을 찾은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최불암은 "퇴원하면 막걸리 한잔하자"고 했다. 어머니의 막걸리집에서 자란 소년이 '국민 아버지'가 되어 남긴 마지막 약속도 막걸리 한잔이었다. 그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못했다.

정부는 67년 연기 인생과 사회공헌의 공로를 기려 문화훈장 최고 등급인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발인은 2일 오전이다. 서울 여의도성당에서 염수정 추기경이 집전하는 장례미사를 마친 뒤 생전 오랫동안 인연을 맺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들러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장지로 향한다.

한국인의 아버지로 살아온 배우 최불암의 푸근한 미소와 온기는 오래 우리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