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10월29일 청와대에서 열린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뉴시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에서 저승(하데스)의 맹인 예언자로 나오는 테이레시아스. 그가 실존인물이었다면 인류 최초의 트랜스젠더(성전환자)였을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남성으로 태어난 그는 산에서 교미하는 뱀을 죽였다가 '가정의 여신' 헤라의 노여움을 샀다. 그는 헤라의 저주로 7년간 여성으로 산 뒤 남성으로 돌아갔다.

훗날 제우스와 헤라는 '남녀 중 누가 사랑의 쾌락을 더 크게 느끼는가'를 두고 논쟁하다 그를 찾았다. 남녀로 모두 살아본 그는 여성이 더 크게 느낀다고 답했고, 분노한 헤라는 그의 눈을 멀게 했다. 미안함을 느낀 제우스는 대신 그에게 예언 능력과 일곱 세대의 수명을 선물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오디세우스가 그를 찾아가 조언을 구한 것도 그의 예언 능력과 장수로 얻은 지혜 때문이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에서 테베에 역병이 돌자 오이디푸스가 부른 인물도 테이레시아스였다.

결정의 중압감에 시달리는 지도자가 예언자나 신탁, 점술을 찾는 건 동서를 가리지 않는다. 영화 '300' 속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는 페르시아의 침공을 앞두고 델포이의 아폴론 신탁에 운명을 물었다. 중국 상나라(은나라) 임금은 거북 배딱지와 짐승 뼈로 전쟁과 날씨, 농사의 길흉을 점쳤다. 지금은 AI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는 점이 달라졌을 뿐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10월20일 김지용 초대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장이 국무회의에 배석해 논란이 일자 이튿날 엑스(X)에 '제미나이에게 물어봤습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정부조직법을 부정하는 공소청장·중수청장의 국무회의 배석 불가론은 위헌적 억지이고 대통령의 행정감독권을 부정하는 궤변이라고 제미나이가 답변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필자가 AI 모델 제미나이 3.1 프로에게서 받은 대답은 달랐다. '공소청장과 중수청장의 국무회의 배석은 적절한가, 부적절한가'라고 물었더니 이런 답이 나왔다. "이는 '수사 기관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와 '국가 형사사법 정책의 효율적 조율'이라는 두 가지 가치가 충돌하는 사안으로, 다양한 시각이 존재합니다."

이 대통령이 어떤 질문을 던졌는지는 알 수 없다. '배석은 합법 아닌가. 이것이 부당하다는 주장을 어떻게 보나'라고 물었다면 비슷한 답이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AI의 답은 질문 또는 질문자에 따라 달라진다. 사람도 그렇지만 AI는 사용자의 성향과 예단을 따라가는 경향이 더 강하다. 업계는 이를 아첨(Sycophancy) 현상이라고 부른다. 사용자가 만족하는 답을 내놓도록 훈련하는 '인간 피드백 기반 강화학습'(RLHF)이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AI 모델 중에서도 챗GPT는 특히 아첨이 심하기로 유명하다.

AI의 할루시네이션(환각)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2023년 6월 미국 뉴욕 남부 연방지방법원은 챗GPT가 지어낸 가짜 판례를 제출한 변호사들에게 5000달러(668만원)의 벌금을 물렸다. AI가 내놓은 결과가 항상 정확하진 않다는 얘기다.

AI를 쓰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효율로 보면 오히려 권할 일이다. 다만 한 AI 모델의 답에만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 필자는 일할 때 클로드와 챗GPT, 제미나이, 퍼플렉시티 등 4가지 AI를 모두 열어둔다. 판단이나 분석, 전망이 필요한 작업에는 반드시 2개 이상의 AI에 질문을 던진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걸작으로 꼽히는 '신세기 에반게리온'(1995년)에는 '마기'(MAGI)라는 AI가 나온다. 과학자와 어머니, 여자라는 3가지 인격을 나눠 가진 슈퍼컴퓨터 3대가 다수결로 결정을 내린다. 30여년 전 만화영화도 하나의 AI에만 기대는 것을 경계한 셈이다.

부서 회식 장소 하나를 고를 때도 AI 세 곳에 묻는 세상이다. 하물며 5000만 국민이 사는 나라의 국정이라면 어떨까. 대통령이 SNS에 글을 올리기 전에 참모들뿐 아니라 적어도 AI 세 곳에는 물어보고, 질문도 조금씩 바꿔보길 바란다면 지나친 기대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