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규 인터파크INT 대표와의 인터뷰는 예상외로 한숨과 함께 시작됐다. 다름아닌 지난 3월 론칭한 전자책 단말기 비스킷 얘기다. 그런데 한숨소리가 마냥 무겁지 만은 않다.
“이제 막 첫발을 내디뎠으니, 아직은 욕먹는 게 당연하다"는 이 대표. 아무리 그래도 마음 고생이 적잖을 텐데, 시원시원한 그의 목소리에서는 자신감이 묻어난다.
돌이켜보면 인터파크의 역사 역시 이와 닮아있다. 국내에서는 전자상거래에 대한 개념조차 모호했던 1996년 국내 최초로 인터넷쇼핑몰 사업에 뛰어들어 지금껏 성장해 오기까지 수많은 도전을 거쳤고 때로는 실패를 경험하기도 했다.
인터파크INT는 쇼핑, 도서, 공연티켓(ENT) 등을 아우르고 있는 인터파크의 핵심 계열사다. 이상규 대표는 이기형 회장과 함께 지난 1996년 LG데이콤의 사내 벤처 기업으로 인터파크를 설립한 창립 멤버로 인터파크 쇼핑, 인터파크 여행, 인터파크의 대표 이사 등을 역임하며 변화를 주도해 왔다.
최근 전자책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인터파크INT의 이상규 대표를 만나 도전을 멈추지 않는 그의 경영철학을 들어보았다.
◆출판유통회사의 '단말기' 도전기
시작과 동시에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최근 출시한 ‘비스킷’이 화제에 올랐다. 전자책 단말기 비스킷은 국내 최초로 3G(3세대) 이동통신망을 지원해준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더군다나 유혹적인 것은 이를 위한 통신비가 모두 무료라는 것. LG텔레콤과의 협약을 통해 인터파크 측에서 3G 통신비를 부담하는 것으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내 손안의 도서관을 만들겠다”는 이 대표의 포부를 실감케 하는 부분이다.
“도서관이라는 곳은 누구나 쉽게 책을 꺼내서 내용을 훑어보고, 다시 책장에 꽂아 놓거나 마음에 드는 책이라면 자세히 읽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책 읽는 문화 역시 이와 비슷합니다. 책을 쉽게 꺼냈다 뒤적거리고 또 다 읽으면 쉽게 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기본이었죠.”
3G 이동통신 비용을 인터파크 측에서 부담하기로 한 것 역시 투자비용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 이러한 포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일까. 과감한 투자 결정(?)에 대해 슬몃 물어봤다.
“뭐든지 도매로 하면 싸잖아요. 하하. 데이터를 벌크로 사오는 형식이기 때문에 비교적 경제적인 가격에 통신비를 부담하고 있습니다.”
그는 비스킷의 취지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기 때문인지 통신비 부담에 대해서는 사내 결정이 순조로웠다고 말한다. 오히려 단말기 제작을 결정할 때야 말로 치열했다는 것.
“인터파크 도서를 보면,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한달에 구입하는 책 권 수는 1~2권입니다. 전자책을 많이 산다고 하더라도 4~5권 정도. 그러니 이게 ‘되는 사업이다’ ‘안 된다’ 내부에서도 반응이 거셌습니다. 그런데 전자책 시장이라는 게 콘텐츠는 물론이고 단말기 같은 하드웨어까지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면 새로운 시장을 열 수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비스킷으로 꿈꾸는 ‘출판 문화의 변화’
LG이노텍과 협약을 거쳐 단말기를 출시하기까지도 순탄치 만은 않았다. 디자인부터 기능까지, 뭐든지 처음 해보는 도전이 쉽지만은 않았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 “단말기 출시 후 배부를 만큼 욕 먹고 있지만, 그만큼 더 좋아질 수 있다” 는 이 대표의 말에는 지금껏 수많은 시행착오 거쳐 세상에 나온 비스킷에 대한 확신이 담겨 있는 셈이다.
이제 관건은 콘텐츠 확보. 이 대표는 비스킷 출시 기자간담회 당시 “연내 10만종의 콘텐츠 확보” 등 풍부한 콘텐츠를 장점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이 사장은 “생각만큼 속도가 붙지 않는다”며 어려움을 토로한다.
“아직까지는 출판사 측에서도 기존의 책을 전자책으로 재출판 하는 과정에서 ‘저작권 문제’ 등 난관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한마디로 ‘새롭게 판을 다시 짜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게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것 같습니다.”
그의 얼굴에 순간 답답함이 스친다. 그러나 이내 “그래도 출판사나 소비자나 작년 보다는 올해가 다르고, 올해보다 내년엔 더 달라질 겁니다. 조금씩 전자책 시장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데 희망을 걸고 있다”고 말한다.
그가 전자책 시장에 걸고 있는 또 하나의 기대는 ‘1인 출판’에 관한 것이다. 때마침 인터뷰가 진행된 날은 KT에서 전자책 오픈마켓을 운영하겠다고 발표한 즈음이었다. 그러나 이 대표는 “KT와는 모델이 전혀 다르다”고 못박는다.
“책 한권이 출판되기까지 출판사의 역할을 무시하지 못합니다. 책을 기획하고 그 책의 가치를 결정하는 건 바로 출판 기획의 몫이니까요. 누구나 책을 만들 수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출판사의 역할은 필요하고 그런 가치를 지켜줘야 합니다.”
그는 “다만, 전자책이 활성화되면 책을 만드는 데 비용이 적게 들어갈 테니 출판사가 예전보다 책 기획과정에서 유연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출판 기획의 폭이 더 넓어진 만큼,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다양한 책을 만나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다.
“아직은 초기 단계이니 고생길이 훤합니다. 전자책 시장 역시, 아직까지도 주변에서 미심쩍어 하는 시선이 많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어렵다고 포기할 수 있나요. 기필코 성공 시켜야죠.”
◆무모한 도전? 새로운 ‘비전’을 창조하는 일
사실 인터파크는 최근 몇 년 사이 인터파크INT의 전자책 시장 진출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더욱 활발하게 도전하고 있는 중이다.
도서, 쇼핑, 문화 등 다양한 콘텐츠를 아우르고 있는 인터파크INT를 중심으로 지난해에는 인터파크의 자회사로 ‘쇼파크’를 출범하고 공연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 현재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공연장을 건설 중이다. 2010년 2월에는 영어교육 전문 인터파크 페디아, 지난 4월에는 컴퓨터그래픽 업체 3곳을 인수해 ‘디지털아이디어’라는 신설법인을 설립하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에 ‘선택과 집중 없이 사업 다각화가 과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이 대표는 “얼핏 보면 모두 다 다른 얘기를 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결국 커다란 줄기는 하나”라고 얘기한다.
“인터파크의 중심은 소프트웨어, 즉 콘텐츠 사업입니다. 이처럼 다양한 콘텐츠를 얼마나 유연하고 신속하게 대응하고 받아들일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각각의 콘텐츠들이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고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앞으로 하나의 큰 밑그림을 그려갈 것이라고 봅니다.”
그의 말에서 굳은 의지가 묻어난다. 하지만 그 도전이 항상 성공으로만 끝나는 건 아니다. 실제로 지난 2006년 인터파크INT는 생필품을 온라인으로 유통하는 인터파크 마트 사업에 진출했으나, 2008년 중단한 바 있기도 하다.
이 대표는 “가슴 아픈 얘기를 꺼낸다”면서도 개의치 않는 듯 답을 이어간다. “항상 당시에는 적기라고 생각하는데 지나고 보면 너무 빨리 시작해서 고생을 사서 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전자책도 마찬가지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분야에 끊임없이 도전을 계속하는 이유는 뭘까.
“어떤 사업이든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시장을 키워갈 수 없습니다. 변화를 그저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도전은 필수입니다. 어떤 분야에 도전하느냐보다 중요한 건 이 사업을 '왜' 하는지 구성원들이 비전을 공유하는 겁니다. 구성원 모두가 새로운 비전에 대해 확신한다면, 도전을 겁낼 이유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