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한 지인의 수첩을 본 적이 있다. 그 수첩엔 주변의 모든 일이 적혀 있다. 그는 항상 펜과 노트를 가지고 다니며 자신의 모든 일을 메모로 남기는 습관이 있다. 가방에도 손톱깎기 등 잡다한 물품들을 꼭 챙겨갖고 다니는 사람이다. 집에 가 봐도 오래된 소장품들로 창고가 넘쳐난다.

우리 주위에는 쓸모없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쌓아둔 채 지내는 사람을 볼 수 있다. 영국 BBC방송 인터넷판 보도에 따르면 이런 사람들은 강박장애 환자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 이런 생활습관과 강박장애 사이의 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한 것은 아니다.

얼마 전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UCLA) 연구팀은 광고우편물이나 고장이 난 가전제품들을 버리지 않는 사람 13명과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 73명의 뇌를 비교하는 실험을 했다. 이들은 모두 사고로 뇌에 손상을 입은 환자들이었다. 연구팀은 각각의 뇌를 비교한 뒤 쓸모없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대뇌피질 오른쪽 앞부분에 뇌손상을 입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강박장애 환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을 느끼며 불필요한 동작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증상을 보인다. 이들은 지나칠 정도로 손을 씻거나 청소를 하고, 무엇인가를 계속 점검한다. 이들 중 몇몇은 특정한 물건을 수집하려는 강렬한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강박증의 내면을 살펴보면 뭔가 두려워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그 두려움의 대상이 매우 막연하여 의식적으로는 정확한 원인을 찾을수 없으며, 영화나 TV를 볼 때, 남의 이야기를 듣거나 책을 읽을 때 조차도 다리를 떨거나 하는 등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뭔가 생각하고 움직인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순간 집중력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그리고 순발력 및 임기응변도 뛰어나다. 또 공명정대한 것을 좋아하여 뭔가 숨기는 분위기, 뭔가 속이는 것을 참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순발력 있는 사람들은 컴퓨터의 램처럼 순간인식을 잘하나 하드에 저장되지 않으면 없어지듯이, 정리해 놓지 않으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지뢰 찾기 게임을 하듯이 어떠한 키워드를 보면 그 주변의 상황이 확 열리듯 생각나는 것이다.

수시로 정리를 해놓고 자신의 뇌를 점검하는 행위가 기록의 습관이고, 물건의 수집이다. 자신의 마음을 홀가분하게 털어내지 못하고, 자꾸 집착하다보니 강박증이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수첩이 없으면 매우 불안하고 답답하여 머리가 멍해지거나 귀가 울리거나 어지러움까지 생기는 등의 증상도 보일 수 있다.

동의수세보원에서 동무공은 두려움(懼心)을 예(禮)와 관계된 사양지심(辭讓之心)의 영역에 배치해 놓으면서, 비장 위장 어깨 가슴 등 중상초의 질환을 잘 만든다고 설명하고 있다. 세상을 볼 때 무의식적으로 지혜로운가 어리석은가를 먼저 보는 경향의 사람일수록 자신의 어리석음에 두려움을 느끼며, 강박 집착 두려움이 발생하는 까닭에 남과 나의 마음을 살펴보는 사양지심을 길러 이겨내야 한다.

그렇다고 집착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집착은 인간의 본성인 오욕칠정을 바탕으로 한다. 오욕은 재물욕, 명예욕, 성욕, 식욕, 수면욕으로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기본적 욕구와 집착을 버릴 수 있다면, 그것은 생명체가 아니다. 그러나 사물에 대한 강박적 집착이 아닌 멋진 삶에 집착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갖게 되면 사양지심이 발휘되어 강박 두려움을 이겨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