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신경은 귀에 쏠려있다. 피아노 소리를 잘 듣기 위해서다. 올망졸망한 눈망물은 지휘자 선생님을 향한다. 선생님의 동작이 커지자 20여명 남짓한 어린이들이 한 목소리를 낸다.

그리 뛰어난 합창은 아니다. 마치 모국어가 아닌 듯 발음이 매끄럽지 않다. 하지만 목소리만큼은 다른 합창단과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다. 한명 한명이 자신감에 찬 듯 하면서도 묘한 화음을 이룬다.  

아마도 세계에서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청각장애아동들로 이뤄진 합창단, ‘아이소리앙상블’의 연습장면이다. 장충동 파라다이스복지재단에서 막바지 연습에 한창인 이들은 올 가을 첫 단독공연의 꿈을 향해 잰 걸음을 옮기고 있다.

아이소리앙상블은 청각장애를 가진 13세 이하의 아동들을 중심으로 파라다이스 그룹의 파라다이스 복지재단이 지난해 5월 발족한 합창단이다.

1년 넘게 매주 1회씩 연습실에 모여 기초음악이론을 배우고, 재활활동과 노래연습을 병행했다. 손녀딸의 손을 잡고 온 시각장애인 할머니나 멀리 지방에서 매주 서울을 오가는 엄마까지 가족 모두가 합창단의 치어리더였다.

◆ 기적을 만들어낸 합창단

지난해 이 합창단이 출범할 때만 해도 이들의 성공을 예상하는 이는 별로 없었다. 인공와우(청각장애를 가진 사람의 달팽이관에 삽입하는 보조공학기구로 전기신호를 통해 소리를 인지하도록 돕는 장치) 시술을 받은 청각장애아동들이 비장애인처럼 음계를 익히고, 화음을 이뤄 합창을 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 동안 청각장애아동이 악기 연주나 공연을 한 경우는 있었지만 합창단을 구성한 것은 유례가 없다. 음의 높낮이를 인식하기 어렵고 인공와우의 기술적 문제로 인해 상대적으로 넓은 음역을 요하는 가창에 한계를 보여 왔기 때문이다. 특히 수술 후 개인 간 편차로 인해 서로간의 화음이 중요한 합창과 중창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청각장애아동의 대부분이 언어장애를 갖고 있는 것도 이들의 성공을 의심하는 이유였다.

하지만 보란 듯이 첫 번째 공식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지난 4월8일에는 강남구 압구정동 장천하트홀에서 열린 서울드림싱어즈의 공연 <패션(Passion)> 무대에서 게스트로 출연해 성공적인 전초전을 치렀다. 동요 ‘구슬비’를 비롯해 ‘퐁당퐁당’, ‘도레미 노래’, ‘아빠와 크레파스’ 등 4곡을 불러 관객으로부터 가장 큰 환호를 받았다.

이제는 단독공연을 준비 중이다. 오는 9월 밀알학교 내 세라믹 팔레스홀에서 감격스런 첫 공연을 가질 예정이다.

아이소리앙상블 단원의 한 어머니는 “노래 실력도 실력이지만, 아이가 매사에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 제일 기쁘다”면서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또래의 아이들이 음악을 통해 교감하면서 정서적 안정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파라다이스의 꿈, '지원보다 재활'

파라다이스그룹이 1994년 설립한 파라다이스복지재단은 그 동안 장애인 복지, 특히 장애아동의 교육과 치료 분야에서 눈에 띄는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재단 설립 후 줄곧 일회성 이벤트나 일방적인 지원을 지양하고 장애인 스스로의 재활활동 지원에 무게를 둔 까닭이다.

아이소리앙상블의 활동도 단순히 청각장애아동의 가창능력 개발이라는 기능적 측면보다는 아이들의 정서적 치유를 이끌어내는 데 초점을 두고 진행하고 있다. ‘청능-언어재활’ 중심의 치료 활동에서 벗어나 음악을 매개로 청각장애아동의 건전한 인격 형성과 정서 발달을 이끌어내겠다는 의도다.

파라다이스복지재단은 아이소리앙상블 외에도 장애인 및 장애인식 개선 교육분야에서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다. 장애인 전문 포털사이트인 ‘아이소리 넷(http://isori.net)’은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장애아동의 교육, 치료 및 재활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 장애아동과 학부모들의 커뮤니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비장애인들의 장애 인식 개선을 위한 교육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최근에는 비장애아동을 대상으로 한 장애 인식 개선 인형극 <버디&키디>를 개발, 서울ㆍ경기 지역 초등학교를 돌며 공연했다. 자폐, 지적 장애, 지체장애, 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장애를 가진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인형극을 통해 비장애아들이 장애인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을 떨칠 수 있도록 했다. 그 공로로 서울시가 2010년 장애인식 개선 지원 사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재단은 일반 및 특수교사, 장애아동 부모, 사회복지사, 치료사들을 대상으로 장애인 복지 관련 교육도 전개했다. 특히 몽골 등 제3세계 국가의 특수교육 관계자를 위한 연수 프로그램을 진행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파라다이스복지재단 윤성태 이사장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리는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이 파라다이스복지재단이 할 일”이라면서 “9월 아이소리앙상블 단원들이 보여줄 환상의 하모니가 장애인들은 물론 비장애인들에게도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