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지수가 2년3개월 만에 1800선을 돌파하고, 코스피시장 시가총액은 1000조원을 넘어섰다. 선진국 경기의 더블딥 우려는 줄어들고 중국의 경제지표가 호전되면서 중국발 호황을 예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덕분에 투자심리가 크게 개선되고, 향후 증시에 대한 낙관론도 확산되는 추세다.
 
하지만 이런 상승세에서 철저히 소외된 기업들이 있다. 한때는 시장을 이끌었던 반도체 관련주들이다. 삼성전자, 하이닉스반도체는 연중 최고가를 경신하기는커녕 연초 주가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실적 추정치는 연일 하향 조정되고 목표가도 떨어지고 있다.
 

◆'밸류 트랩'에 빠진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연초까지만 해도 올해 100만원 돌파도 가능하다며 120만원대까지 치솟았던 삼성전자 목표가는 다시 100만원 밑으로 낮아지는 추세다. UBS증권 같은 일부 외국계 증권사는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중립'으로 하향 조정했고, 목표주가도 110만원에서 83만원으로 24.5% 끌어내렸다. 국내 증권사인 대우증권도 삼성전자의 목표가를 110만원에서 92만원으로 16% 깎으면서 "삼성전자가 내년 1분기까지는 밸류 트랩(가치함정, 저평가 상태지만 주가는 오르지 않는 현상)에 갇힐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이닉스도 마찬가지다. 4만원이 넘는 목표가를 제시한 증권사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2만원대로 목표가를 낮추는 증권사들이 이어지고 있다.
 
사실 이런 상황은 우리 반도체기업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해외 주요 반도체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세계 최대 반도체기업인 인텔의 주가는 작년 말 20.4달러였지만 9월15일 현재 18.72달러에 불과하다. 미국의 대표적 메모리반도체회사인 마이크론테크놀러지도 같은 기간 주가가 10.56달러에서 6.94달러로 떨어졌고 일본의 엘피다, 대만의 난야, 이노테라 등도 마찬가지다.
 
◆거시경제가 기업실적을 억누르고 있다
 
반도체기업들의 실적은 나쁘지 않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모두 2분기까지 사상 최대 실적 행진을 벌였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외에도 여러 사업부가 있지만 사상 최대 실적의 핵심 동력은 반도체였다. 하이투자증권에 따르면 블룸버그의 컨센서스에서 지난해 대비 올해 삼성전자, 마이크론, 엘피다의 주당순자산가치(BPS) 상승률은 각각 24%, 45%, 35%를 기록할 전망이고 하이닉스의 상승률은 무려 58%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2006년 말부터 몰아친 공급과잉 같은 수급상의 문제도 없었다. 하반기 들어서면서 예상보다 수요가 부진하지만 공급이 과거처럼 과잉 상태에 놓여있지도 않고 올해는 반도체업계 사상 최대의 호황기다. 가격이 하반기 들어 예상보다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음에도 기업들이 여전히 높은 수익을 내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관련주들의 부진은 '거시경제가 기업실적을 억누르고 있는 국면'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유럽의 재정 위기, 선진국의 더블딥 우려 등으로 PC 등 완제품 제조사들이 향후 수요 둔화를 우려해 재고 소진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고 소진이 우선이다 보니 신규 수요가 더딘 것이다. 이러다 보니 반도체업계에는 전통적인 성수기인 3분기의 계절적 효과가 올해는 거의 실종된 상태다. 4분기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등을 앞두고 완제품 제조사들은 3분기부터 부품을 확보하기 때문에 반도체업계는 통상 3분기에 가장 매출이 커진다.
 
이승우 신영증권 연구원은 "올해 3분기 재고비축 수요는 과거 3분기의 계절적 수요 회복에 비해 훨씬 약한 상황"이라며 "PC OEM들은 여전히 하반기 PC 수요에 대해 보수적 태도를 유지하면서 과거에 비해 재고를 낮게 가져가려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지금이 바닥권 베팅 타이밍?
 
시가총액이 큰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 등의 부진이 지속되면 전체 시장에도 부정적이다. 삼성전자가 지지부진함에도 코스피지수가 1800선을 넘고 시가총액이 1000조원을 돌파했다는 것은 반대로 삼성전자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상승 탄력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결국 삼성전자 등 반도체기업들의 주가 반등은 관련주 투자자뿐만 아니라 시장 전체적으로도 중요한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지금의 반도체 주가는 그동안의 우려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고 하방 경직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데는 거의 이견을 찾아보기 힘들다. 추가로 하락할 여지가 많지 않다고 해서 곧바로 반등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주가야 얼마든지 바닥에서 횡보할 수도 있다.
 
반도체 담당 애널리스트들은 최소한 찬바람이 불어야 반도체주들이 따뜻해지기 시작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봄바람이 불 때쯤으로 더 늦춰 잡는 애널리스트들도 있다. 근거는 다양하다. 수급상 움직임으로 분석하기도 하고 거시경제의 움직임으로 예측하기도 한다.
 
키움증권은 메모리 반도체 경기가 4분기에 바닥을 다질 것으로 예상했다. 수요 측면에서 PC가 예상보다 저조하지만 스마트폰, 태블릿PC, 3D TV 등 신규 응용제품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고, 엔고로 인한 일본 업체의 설비투자 위축, 반도체산업의 빅뱅 가능성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김성인 연구원은 "계절적 비수기로 인한 수급공백으로 메모리 반도체 가격은 4분기에 또 한차례 조정이 불가피하지만 이미 큰 폭의 주가 조정이 있었기 때문에 하락폭은 제한적일 것"이라며 "지금의 주가는 메모리 가격 하락에 따른 실적 악화 우려가 과도하게 반영돼 밸류에이션 지표상 현저히 저평가돼 있다"고 말했다.
 
하이투자증권은 경기선행지수와 반도체 주가가 상관관계를 보인다며 중국 경기선행지수 증감률의 상승이 예상되는 4분기 중순부터 반도체 주가의 본격적인 상승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송명섭 연구원은 "경기선행지수 증감률은 단순히 향후 경기를 전망하는 지표일 뿐 아니라 경기 민감 산업인 반도체 산업의 업황 및 반도체 업체들의 실적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며 "4분기 초순까지 반도체 주식들에 대한 저가 매수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