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에서 하동을 거쳐 광양으로 들어가는 길은 한폭의 아름다운 산수화다. 이 길은 사철 흐름을 멈추지 않는 섬진강과 함께 달린다. 섬진강 옆으로는 4개의 계곡을 둔 백운산이 우뚝하다. 광양의 삭막한 이미지를 부드럽고 온화하게 바꿔주는 강이고 산이다.
섬진강을 따라 간다
섬진강을 따라 맨 먼저 들른 곳은 다압면 매화마을. 매화꽃은 없지만 이즈음에 찾으면 연갈색으로 변해가는 드넓은 매실밭을 감상하는 맛도 쏠쏠하다. 매실농원에서 바라보는 섬진강 풍경이 절경이다. 강 저쪽은 경남 하동땅이다. 매실농원 중앙에는 매실을 담그기 위해 놓아둔 수천개의 옹기들이 들어차 있다. 농원 뒤편 대숲길은 영화 <취화선>을 촬영한 곳이다. 사방에서 바람에 서걱이는 댓잎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가 싫지 않다.
매화마을에서 나와 다시 섬진강길을 따라간다. 백운산으로 가는 길이다. 우리나라에는 백운이란 이름을 가진 산이 50여개에 이른다. 광양 백운산은 호남정맥의 끝자락에 솟아 있다. 전남에서는 지리산 노고단 다음으로 높다. 산협으로 뻗은 4개(남쪽 동곡계곡, 서쪽 성불계곡, 북쪽 금천계곡, 동쪽 어치계곡)의 계곡은 언제 찾아도 웅숭깊다. 정상에서 보는 조망도 탁월하다. 지리산의 장쾌한 마루금과 광양만이 가슴 가득 안긴다.
어치계곡으로 간다. 4개의 계곡 중 가장 깊은 곳에 있지만 접근성은 편리하다. 수어호(댐)를 끼고 가는 길은 정말이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수어호를 지나면 12개 마을(비촌, 평촌, 탄치, 지계, 외회, 내회, 어치, 죽림, 신전, 웅동, 신황, 구황)로 이루어진 백학동이 나오는데 어치계곡은 마을이 끝나는 곳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계곡 깊숙이 들어가면 사람 발길이 전혀 닿지 않은 원시림이다. 계곡 상류 바위절벽을 타고 내리는 구시폭포의 물줄기가 시원하다. 한낮에도 이슬이 맺힌다는 오로대며 선녀들이 목욕했다는 선녀탕도 만날 수 있다.
어치계곡에서 나와 옥곡면 소재지를 지나 옥룡면으로 간다. 백운산은 그 기세가 이곳에도 미쳐 그 한자락에 백계산이란 걸출한 산을 만들어놓았다. 백계산 남쪽에 있는 옥룡사지로 가는 길, 도선국사가 창건한 천년 불교의 성지다. 도선국사는 원효, 의상, 지눌과 함께 우리나라 대표 고승으로 입적할 때까지 35년간 이곳에 머물렀다. 옥룡사는 화재로 소실돼 터만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창건 당시 땅의 기운을 돋우기 위해 도선국사가 심었다는 동백나무는 사철 푸름을 잃지 않고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곳에 늘어선 7000여그루의 동백나무는 국내 최대 규모인데 매년 3월이면 옥룡사지 일대가 붉은 동백꽃으로 뒤덮인다. 옥룡사지에서 발견된 청자 백자, 수막새, 분청접시, 명문비편과 도선 국사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은 이 절집의 깊은 내력을 말해준다.
옥룡사지에서 나와 옆 산길로 거슬러 오르면 동양 최대의 청동약사여래불이 서 있는 운암사가 있다. 찾아오는 이 누구나 반갑게 맞아주는 아름다운 절집이다. 그냥 지나치지 말고 들러보면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는다. 옥룡사지 위쪽에 있는 도선국사마을에도 가본다. 도선국사의 이름을 따서 지은 마을에서는 다도교육, 도자기 벽화 그리기, 천연 염색, 손두부 만들기, 산나물 뜯기 같은 산 체험을 해볼 수 있다. 오랜 옛날부터 식수로 썼다는 사또 약수터는 지금도 멀리서 물을 뜨러 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물맛이 좋다.
오토캠핑장, 야영장, 물놀이장, 황토길, 산막 등을 갖춘 백운산 자연휴양림(061-763-8615, 797-2655)과 신라 경문왕 때 도선이 창건한 중흥사도 바로 위에 있다. 특히 2km에 이르는 휴양림의 황토길은 흙에 들어있는 원적외선이 뿜어져 나와 맨발로 걸으면 혈액순환에 큰 도움이 된다.
광양 사람들의 쉼터, 유당공원
읍내로 간다. 광양만으로 흘러가는 서천(西川)을 끼고 돌아가서 만난 유당공원(버들못)엔 이팝나무, 팽나무, 수양버들, 느티나무 등 400∼500년 묵은 고목들과 연못이 있다. 조선 명종 2년(1547년) 당시 현감이었던 박세후가 읍성을 쌓은 후 바다에서 보이지 않도록 숲을 만든 것이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백운산 쪽(북쪽) 칠성리는 호랑이가 엎드린 형국이고 바다 쪽(남쪽) 읍내리는 학이 나는 형국인데 남쪽의 기가 약해서 늪 지역에 연못을 파고 숲을 만들었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무가 많이 베어져 울창하던 숲이 크게 훼손된 건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숲 한쪽에 우뚝 선 이팝나무는 천연기념물 제235호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유당공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엔 장도장의 맥을 이어온 박용기 옹(중요무형문화재 60호)이 자신이 만든 장도 300여점을 모아 건립한 장도박물관(www.jangdo.org)이 있다. 장도는 칼집, 주머니칼, 칼자루, 은장도(銀粧刀), 목장도(木粧刀)를 통칭해서 부르는 말로서 칼날을 섭씨 800도의 열에 달궜다가 식히는 공정을 수없이 반복해야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한다.
유당공원에서 길은 광양만을 끼고 뻗어 있다. 이 해안길을 따라가면 컨테이너부두가 있는 광양항과 광양제철소가 거대한 모습을 드러낸다. 광양에서 제일 높은 월드마린센터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광양만과 포스코 제철소 전경이 시원스럽다. 우리나라 경제의 대동맥인 포스코 제철소를 좀 더 실감 나게 보려면 광양시청이 있는 중마동의 가야산 중복도로에서 내려다보면 된다. 광양항 한쪽에는 광양항의 역사와 미래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홍보관(061-797-4500)도 마련돼 있다.
그림 같은 해안, 망덕포구와 배알도
태인동에서 길은 하동 쪽 망덕포구로 이어진다. 태인대교를 건너 망덕포구에 이르면 아름다운 풍경화 한폭이 펼쳐진다. 포구 앞, 솔숲으로 둘러싸인 배알도가 아름답다. 덕유산이 보인다 해서 붙여진 망덕(望德)이라는 이름도 시정이 넘친다. 섬이 건너편 망덕산을 향해 절하는 형상이어서 '배알(拜謁)'이라고 부른단다.
망덕포구는 가을철 전어로 유명한 광양의 유일한 포구다. 망덕포구는 시인 윤동주(1917~1945)의 자취가 어린 곳이기도 하다. 망덕포구 쪽에 윤동주 시인의 유고를 보관했던 낡은 가옥과 시비가 서 있다.
여행수첩
광양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다. 대전-통영 고속도로를 타고 진주갈림목에서 남해고속도로로 갈아탄 후 광양 나들목으로 나가는 방법과 호남고속도로 고창갈림목에서 고창-담양간 고속도로로 갈아탄 후 다시 호남고속도로에 올라 순천을 지나 광양까지 가도 된다.
●맛집 : 광양은 맛 또한 여느 고장에 뒤지지 않는다. 불고기와 섬진강에서 나는 재첩국과 은어회, 매실로 만든 매실엑기스, 매실장아찌, 매실식초 등은 꼭 한번 맛봐야 할 음식이다. 광양읍내 서천변에 불고기식당이 모여 있다. 광양불고기는 쇠고기(한우부위 중 등심만을 쓴다)를 구리 석쇠에 올려놓고 참나무숯불에 노릇노릇 구워 먹는데 씹을수록 연하고 부드러운 맛이 난다.
시내식당(763-0360), 금목서(761-3300), 대중식당(762-5670), 매실한우(762-9178), 한국식당(762-9292), 삼대광양불고기(762-9250) 등이 유명하다. 재첩은 엄지손톱만한 민물조개이고 은어는 담백하고 향이 좋아 회는 물론 구이와 찌개로 먹어도 좋다. 요즘에는 망덕포구에서 나는 전어의 참맛을 볼 수 있다. 용궁횟집(772-0882)을 추천한다.
●숙박 : 광양읍에 깨끗한 숙소들이 많다. 호텔 필레모(761-8700), 그랜드모텔(761-3600), 새천년모텔(762-8345), 로비스힐(793-9932), 썬비치(794-2576) 등. 망덕포구 쪽에 다이아모텔(772-8898), 삼덕여관(772-2126), 남해장(772-2526) 등과 어치계곡 쪽에 1박2일 쉼터(772-7745), 백학동펜션산장(772-7761), 명일민박(772-3357), 장수민박(772-3381), 청탑민박(772-3570) 등이 있다. 남도민박(www.namdominbak.go.kr) 참조. 지역번호 0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