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포구는 한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짙은 안개로 뒤덮여 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서서히 안개가 걷히며 사물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고깃배, 부두, 횟집, 어시장, 그리고 사람들…. 쓸쓸할 것만 같은 계절이건만 포구는 외롭지 않다. 아니 오히려 정겹다. 바다를 찾는 연인과 가족들, 회를 맛보려는 미식가들, 늦게나마 김장을 담그려는 주부들로 북적거리기 때문이다. 인천 소래포구 초겨울 풍경이다.
활력 넘치는 수도권 최대 어시장
수도권 최대 재래 어시장인 소래포구. 만선의 어선들이 오전 밀물시간에 맞춰 들어오는 포구엔 활력이 넘친다. 바닷가엔 해풍을 희롱하는 갈매기의 날갯짓이 여유롭고, 낚싯대를 드리우고 망둥이를 낚는 낚시꾼들의 표정엔 한가함이 묻어난다.
포구로 향하는 길 주차장 주변은 횟집, 조개구이집, 바지락칼국수집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수도권 제일의 어시장답게 입구부터 꽤나 혼잡하다. 어시장의 미덕 중 하나는 활기. 상인들이 살이 통통하게 오른 싱싱한 새우, 꽃게, 전어로 지나는 손님들을 불러 세운다. 상인들이 호객하는 소리와 조금이라도 싸게 사려는 손님들의 흥정으로 시장은 시끌시끌하다. 포구를 뒤덮은 비린내조차 정겹다.소래포구 어시장의 최고 명물은 새우젓. 김장철이 끝나갈 무렵인 요즘도 젓갈을 사가려는 주부들의 발길이 아침부터 이어진다. 예년에 비해 턱 없이 올랐던 배춧값 때문에 엄두도 못 내던 김장. 그렇지만 요즘은 상대적으로 배춧값이 많이 떨어진데다 또 겨울 추위가 바싹 찾아오면서 김장을 더 이상 미룰 수도 없게 된 것이다.
어시장엔 젓갈을 파는 상점만 20~30군데에 이른다. 대부분 큼직한 통 안에 젓갈을 푸짐하게 채워놓고 손님을 기다리는데, 새우젓을 비롯해 황석어젓, 멸치액젓 등 온갖 종류의 젓갈이 다 전시돼 있다. 아무래도 요즘엔 서해안에서 잡아 올려 토굴에서 발효시킨 새우젓이 인기 으뜸이다. 새우젓은 시기와 종류에 따라 5월에 담는 오젓, 6월에 담는 육젓, 가을에 담는 추젓, 봄에 담가 한겨울에 내놓는 새하젓 등으로 다양하게 구분한다.
김장을 맛있게 담그기 위해서는 싱싱한 배추는 물론이거니와 잘 숙성된 젓갈을 고르는 것도 중요하다. 다행히 젓갈 가격은 지난해와 비슷하다. 이곳에선 시중 가격보다 20% 정도 싸게 구입할 수 있다.
어시장 옆엔 즉석에서 떠온 싱싱한 회를 맛볼 수 있는 '노천식당'이 있다. 삼삼오오 모여 돗자리를 깔고 회를 먹는 광경은 소래포구에서만 볼 수 있는 이색적인 풍경이다. 크고 작은 어선들이 서로 부딪히는 부둣가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회를 먹는 맛이 제법 쏠쏠하다.
메뉴도 다양하다. 광어 우럭 민어 농어 병어…. 모듬회로도 맛볼 수도 있는데, 3만원 정도면 성인 두어명이 섭섭지 않게 맛을 볼 수 있다. 키조개, 새조개, 석화 등 각종 싱싱한 조개구이도 3만원 정도면 충분하다.
아련히 남아있는 수인선 협궤열차의 추억
서해의 갯골을 따라 바닷물 드나드는 소래포구는 예전엔 서해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평범한 포구였다. 1933년 포구 안쪽엔 소래염전이 들어섰는데, 1930년대 후반 일제가 소래염전에서 생산되는 천일염을 전쟁에 필수품이었던 화약의 제조 원료로 쓰기 위해 수인선 협궤철도를 건설하면서부터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한국전쟁 후엔 소래에 자리를 잡은 실향민들이 돛단배를 타고 가까운 바다에서 새우나 고기들을 잡아다가 인천 부평 서울 등지까지 나가서 팔았다. 1970년대 들어 돛단배는 통통배로 바뀌었다. 어선의 숫자도 부쩍 늘었다. 이 무렵부터 소래의 어부들은 더 이상 도시로 나가지 않았다. 중간 상인들과 일반 소비자들이 소래포구로 직접 찾아왔기 때문이다.
이후 소래포구는 드라마나 영화의 촬영장소로 자주 이용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고, 1990년대에 들어서는 수도권에서 가장 활기찬 어촌으로 탈바꿈했다. 보통 때는 평일에도 하루 1만명이 넘는 인파가 찾아드는데, 주말이나 공휴일엔 3만~5만명이나 몰려들어 한바탕 복잡한 삶의 현장으로 변한다. 지난 가을 축제 기간엔 나흘 동안에 100만명 가까운 인파가 몰렸다고 한다. 최근엔 내비게이션 통계 조사 결과 가장 많이 찾아본 관광지 2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 높은 포구다.
소래포구엔 인천의 송도와 경기도 수원을 잇던 수인선 협궤열차의 추억이 남아 있다. 시속 60km로 뒤뚱거리며 달리는 협궤열차 철길의 폭은 1m도 안 되는 72.6cm. 차창을 등 뒤로 두사람이 마주 앉으면 통로를 지나는 사람의 무릎이 걸릴 정도로 객실이 좁았다. 일제가 소금을 실어나르기 위해 건설한 협궤열차는 해방 후엔 수원과 인천을 오가는 학생들의 통학수단으로 바뀌었고, 철길을 끼고 살았던 주민들을 외부와 연결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1980~90년대엔 추억을 만들려는 연인들의 낭만과 사랑을 싣고 달리던 이색 열차로 명성을 날렸지만 1994년 폐선이 되고 말았다. 만성적인 적자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이후 수인선 철길은 소래철교를 빼고는 대부분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인천의 소래와 시흥의 월곶을 잇는 소래철교는 길이 126m, 폭 2.4m의 다리다. 남아있는 협궤 철로의 침목을 밟으며 바다 위에 걸린 다리를 건너는 맛은 이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독특한 즐거움이었다. 철교 위에서 바라보는 낙조가 아름다워 저녁 무렵엔 노을을 감상하려는 가족과 연인들도 많이 몰렸다. 비록 수인선 열차와 그 철길은 사라졌어도 소래철교가 남아 그 추억을 대신했던 것이다.
하지만 수도권의 걷기 명소로 사랑 받던 소래철교는 올 2월 통행이 중단됐다. 소방방재청이 다리가 낡았다며 안전사고 위험을 경고하자 관계 기관에서 철거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소래포구를 찾던 손님도 30%가량 줄어들었다. 이 허름한 철교가 소래포구의 명성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던 게 밝혀진 셈이다.
이렇게 소래포구의 경기가 위축되자 소래포구 어민과 상인들은 소래철교 철거 반대와 재개통 의견을 꾸준히 제기했고, 결국 지난 9월 관계기관들은 협의 끝에 소래철교를 보존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현재 인천 남동구청은 소래철교 재개통을 위해 주변의 위험시설물을 제거하는 보강공사를 하고 있다.
여행정보
●교통 ▶자가운전 = 서울→경인고속도로→서운 분기점→서울외곽순화고속도로→장수 나들목→장승백이 사거리(남동구청 방면 우회전)→남동구청 사거리(소래 방면으로 좌회전)→소래포구 어시장 <서울 시청 기준 1시간20분 소요>
▶대중교통 = 전철 1호선 개봉역 버스정류장에서 510번 버스 이용 <1시간20분 소요>. 전철 1호선 제물포역 버스정류장(동양빌딩)에서 790번 버스 이용 <1시간 소요>. 종로1가 버스정류장에서 2400번 버스 이용 올리브백화점 버스정류장에서 하차→구월2동주민센터 버스정류장으로 약 600m 도보→구월2동주민센터 버스정류장에서 790번 버스 이용 소래포구 입구 버스정류장 하차 <1시간50분 소요>. 전철 4호선 오이도역 버스정류장에서 1번이나 790번 버스 이용 <30분 소요>.
●참조 인천남동구청 문화홍보실 032-453-2140, 소래포구어시장 032-446-4124, 어촌계 032-442-68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