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도읍지 한양은 철저히 풍수사상에 따라 조성된 계획도시다. 북쪽의 북악산(342m)은 현무인 주산이고, 동쪽의 낙산(111m)은 좌청룡, 서쪽의 인왕산(338m)은 우백호, 남쪽의 남산(목멱산, 262m)은 주작인 안산이다. 이성계는 한양의 내사산(內四山)이라고도 하는 네개의 산을 연결해 성벽을 쌓았고, 그 안쪽에 조선왕조의 궁궐·종묘·사직단·관아·문묘 등 국가를 상징하는 주요 건물들을 세웠다.
이렇게 한양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서울성곽(사적 제10호)의 총 길이는 18.2km에 이른다. 서울성곽 일주 산책 코스는 총 4개의 구간으로 나뉜다. 숭례문~장충체육관 코스(남산 구간), 장충체육관~혜화문 코스(낙산 구간), 혜화문~자하문 코스(북악산 구간), 자하문~숭례문 코스(인왕산 구간)다.
이 중 인왕산 구간은 자하문에서 숭례문에 이르는 약 6km. 서울 도심을 막힘없이 조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사당, 선바위, 서대문형무소, 사직단, 경교장, 서대문터 등 사연 깊은 역사와도 만날 수 있어 인기 있다. 4시간 정도 걸린다.
시인묵객과 권세가의 사랑을 받던 인왕산
한눈에도 강골의 기상이 느껴지는 민족혼의 상징, 인왕산. 원래 '임금 왕(王)'이라 썼던 이름을 일제가 일본을 뜻하는 일(日)자를 붙여 '왕성할 왕(旺)'자의 인왕산(仁旺山)으로 바꾸었으나 1995년 다시 옛 이름을 되찾았다. 조선시대 인왕산은 시인묵객과 권세가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안평대군은 인왕산 동쪽 수성동계곡에 살았고, 문장가 성임은 산기슭에 저택을 짓고 시를 지으며 노닐었으며, 백사 이항복도 인왕산 남서쪽 필운대에 집을 꾸몄다. 또 조선 후기엔 득세한 외척들이 청운동 일대에 머물면서 인왕산은 권문세가들의 주거공간이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청운동에서 나고 자란 겸재 정선에게 인왕산은 예술적 영감의 산실이었다. 지금도 정선의 화폭이 그대로 느껴지는 수성동계곡은 현재 옥인동아파트를 철거하고 내년 6월까지 녹지조성 공사를 완료할 계획이라 한다. 또 겸재가 76세에 비가 온 뒤의 인왕산 경관을 표현한 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는 우리 산의 매력을 독창적인 화법으로 표현한 조선 후기 실경산수화를 대표하는 최고 걸작으로 평가된다.
이렇게 오랜 세월 사랑을 받던 인왕산이건만 1968년 1·21무장공비 침투사건 이후 출입이 전면 금지됐다가 1993년 재개방되면서 다시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렇지만 인왕산 생태 보호를 위해 매주 월요일과 공휴일 다음날엔 인왕산 출입을 막고 있으니 염두에 둬야겠다.
인왕산은 동서남북 사방으로 산행코스가 잘 나있어 서울 도심 곳곳에서 대중교통으로도 손쉽게 접근이 가능하다. 보통은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경복궁역·홍제역, 그리고 옥인동, 자하문고개 등이 기점이 된다. 어느 코스든 기점에서 정상까지 보통 50분~1시간 정도 걸리는데, 서울성곽을 따르는 자하문(창의문)~정상~사직동 코스는 3시간 정도 잡으면 된다. 산길은 전체적으로 초등학교 고학년이라면 무리 없을 정도다.
서울성곽 따르는 자하문고개~정상~사직동 코스
여기서는 자하문고개~정상~사직동 코스를 간략히 소개한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 100m 전방에서 자하문 방면 버스(1020·7212·7022번)를 이용해 자하문고개 정류장에서 하차한다. 정류장 앞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인왕산 호랑이' 조형물과 '인왕산에서 굴러온 돌'이라 쓰인 설치미술 작품이 반긴다.
여기서 오른쪽 길로 오르면 곧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다. '서시'가 새겨진 시비 너머로는 우뚝 솟은 북악산과 아랫마을 청운동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윤동주 시인은 연희전문학교에 다닐 때 인왕산 아래 누상동에서 자취를 했는데, 그때 이 언덕길을 걸으며 대표작인 '서시'와 '별 헤는 밤' 등을 구상했다고 한다.
이어 아스팔트도로(인왕산길)를 잠시 따르면 오른쪽으로 산길로 들어서는 입구가 보인다. 철문을 통과하면 성벽을 따라가는 본격 산길이 이어진다. 성벽 너머로는 부암동 풍광이 펼쳐진다. 성벽에서 아래쪽의 계곡은 안평대군이 별장을 두었던 무계동계곡이다.
무계동계곡은 안평대군이 꿈에서 봤던 무릉도원의 실현 공간.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은 결혼을 하게 되자 인왕산 기슭 수성동 계곡에 '비해당'을 짓고 살았다. 어느 날 무릉도원에서 노닐던 꿈을 꾼 안평대군은 안견에게 그림을 그리게 하는데, 이게 바로 저 유명한 안견의 몽유도원도다. 그리고 나중에 자하문고개 너머 지금의 부암동에서 무릉도원 같은 아름다운 경관을 발견하곤 그곳에 무계정사라는 별장을 짓고 즐겼던 것이다.
성벽 안쪽으론 전망이 빼어난 바위가 잠시 쉬어가게 한다. 서울성곽 안쪽의 도심과 그 너머로 남산 위에 세워진 뾰족한 서울타워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이 좋다. 잠시 땀을 식힌 뒤 계속 발품을 팔면 한눈에도 성벽을 쌓은 시대를 확연히 구분할 수 있는 구간이 나온다. 작고 퇴색한 돌들이 맨 처음 쌓을 때 이용된 재료다. 조선시대 서울성곽 조성공사는 크게 세차례였다. 태조 때인 1396년 처음으로 성곽을 쌓았고, 1422년 세종 때 성곽에 대한 전면적인 보수 정비 작업을 시행했다. 3차는 숙종 때인 1704년부터 6년 동안 대대적으로 정비했다.
이렇게 오르다보면 오른쪽으로 기차바위가 있는 봉우리가 보인다. 저 봉우리를 통해 홍지문으로 이어지는 탕춘대성은 서울성곽과 북한산성을 연결해주는 중요한 통로 역할을 했다. 탕춘대성 능선은 지금은 홍은동과 부암동 주민들에게 훌륭한 산책로가 된다.
서울 도심 풍광이 한눈에 들어오는 정상
정상 동쪽 사면은 치마바위다. 중종반정으로 폐비가 된 왕비 신씨가 궁궐에서 쫓겨나 자신이 살던 인왕산 기슭으로 돌아온 뒤 자신을 그리워하는 중종을 위해, 궁에서 입었던 다홍치마를 매일 내다걸었다는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떠올리며 올라선 인왕산 정상. 펑퍼짐한 정상 한가운데엔 어른 서너 명이 올라설 수 있는 크기의 바위가 있다.
이곳에선 서울 풍광을 한꺼번에 담을 수 있다. 우선은 주산인 백악산과 좌청룡인 낙산, 안산인 남산, 특히 동쪽의 청와대와 경복궁 일대 조망은 바로 코앞이다. 북쪽 멀리로는 북한산 비봉능선이 하늘금을 이루며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과연 인왕산이다.
정상에서 남쪽 능선을 따라 사직동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조금 가파른 바위 능선을 10분쯤 내려서면 범바위를 바로 앞에 두고 출입금지를 알리는 안내판이 길을 막는다. 서울성곽길 정비공사 중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쉽게도 성벽길에 우뚝 버티고 있는 범바위, 정도전과 무학대사의 의견이 엇갈렸던 선바위, 조선의 수호신사로서 남산에 있었으나 일제 때 강제로 옮겨온 국사당(중요민속자료 제28호) 등을 가까이서 볼 수 없다.
출입금지 안내판 앞에서 서울성곽길을 벗어나 왼쪽의 산길로 내려서면 20분 만에 옥인동 아스팔트길(인왕산길)을 만난다. 여기서 아스팔트길을 따라 300m 정도 걸으면 삼거리. 사직단으로 가려면 왼쪽 길을, 다시 서울성곽을 만나 사직터널 방향으로 가려면 오른쪽 길을 따르면 된다.
산행 마지막에 만나는 사직단(社稷壇, 사적 제121호)은 조선의 임금이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서 사직신에게 제사를 올리던 신성한 장소다. 동쪽에 있는 사(社)는 토지신에게, 서쪽의 직(稷)은 곡물신에게 제사지내는 곳이다. 주변에 단군성전, 이이돚신사임당의 동상, 그리고 활터인 황학정 등이 있다.
여행정보
●교통 ▷창의문(자하문)=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로 나와 지선버스 정류장에서 1020, 7212, 7022번 버스 타고 자하문고개에서 하차. 요금 1000원, 20분 소요. ▷사직단=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1번 출구로 나와 도보 5분.
●별미 인왕산 들머리인 자하문에서 부암동 쪽으로 50m 떨어진 곳에 있는 자하손만두(02-379-2648)는 부암동의 별미. 마을 주민들뿐만 아니라 서울 시민들이 만둣국을 맛보기 위해 찾아온다. 만둣국 1만원, 만두전골(2~3인분) 3만5000원.
●참조 인왕산을 포함한 서울성곽 자료와 지도는 종로구청 홈페이지(www.jongno.go.kr) 참조. 다산콜센터 전화 02-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