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정부는 2008년 시행된 후 사실상 유명무실했던 반독점법 칼날을 5년 만에 마음껏 휘두르고 있다. 갑작스런 반독점법 규제 홍수에 기업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고, 배경을 둘러싼 해석도 분분하다. 뉴욕타임스와 파이낸셜타임스 등 서방을 대표하는 언론은 반독점법이 사실상 외국계 기업을 겨냥하고 있다며 의혹을 제기했지만 중국정부는 정당한 법집행이라며 미동조차 않고 있다. 한국기업 역시 삼성전자와 LG전자가 LCD 담합혐의로 과징금을 부과 받는 등 반독점 칼날에서 예외가 아닌 만큼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다.
◆中 반독점법, 한번 걸리면 기업 '휘청'
반독점법이란 기업인수 및 합병(M&A) 등 독점을 강화하는 행위나 소비자 및 다른 기업의 이익을 침해하는 각종 불공정 행위를 금지하는 법을 말한다. 미국에서는 동종업종의 기업연합(Cartel)과 기업합동(Trust)을 처벌하는 셔먼법(Sherman Act)이 1890년에 제정되는 등 일찌감치 독점행위를 법으로 규제해왔다.
중국은 뒤늦게 총 8장, 57조로 구성된 반독점법을 2008년 8월1일자로 확정, 시행했다. 상무부 산하에 반독점판공실을 설립해 외국기업의 중국기업 인수합병을 심사하는 한편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와 국가공상행정관리총국(공상총국)을 집행기관으로 정해 반독점 단속권을 행사하고 있다.
특히 반독점 단속의 핵심인 발개위 산하 가격감독·반독점국은 반독점법 제14조를 적용해 관련기업을 처벌하고 있다. 이 조항은 '상품의 가격을 고정하는 행위', '상품의 최저가격을 한정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이다. 즉 제조업자가 판매업자에게 상품의 판매가격을 지시하고, 이를 판매업자 임의로 인하하지 못하도록 제한할 경우 반독점법 14조를 위반한 행위로 처벌받게 된다.
중국 반독점법은 독점행위가 인정될 경우 해당기업에 연매출액의 1~10%에 해당하는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1200억원대의 벌금을 맞은 분유업체뿐만 아니라 삼성·LG·치메이 등 6개 LCD업체들과 마오타이·우량예 등 양대 백주생산업체가 가격담합 혐의로 각각 3억5300만위안(635억원), 4억4900만위안(808억원)의 벌금을 부과 받는 등 한번 걸리면 기업운영이 휘청거릴 정도의 처벌을 받게 된다.
◆대기업 때려 물가 끌어내리기 성공
중국 당국이 독점 등 시장교란 행위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는 배경과 관련 여러 가정이 제기되고 있지만, 물가안정이 첫손에 꼽힌다. 경기둔화와 실업률 상승 등으로 중국 서민의 불만이 고조되는 가운데, 시장지배력이 큰 대기업 혹은 외국계 기업을 반독점 행위로 처벌해 팽배한 불만을 잠재우고 물가안정도 도모하는 일거양득 효과를 노리고 있다는 것.
독점규제의 대표적 사례로 평가받는 분유업체 담합사건 처리과정을 보면 중국 당국의 이 같은 속내를 파악할 수 있다. 지난 2008년 멜라민 분유 파동 이후 중국인들은 철저히 자국산 분유를 외면했고, 그 결과 외국산 분유가격이 급등했다. 이 틈을 이용해 다국적 분유기업들이 가격담합을 통해 원가 100위안(1만8000원)짜리 분유 1통을 최고 800위안(14만4000원)에 판매하는 등 폭리를 취한 사실이 드러났다. 조사 착수사실이 알려지자 다농이 분유가격을 최대 20% 내리는 등 콧대 높은 다국적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가격을 인하해 반독점법을 이용한 중국 당국의 물가인하 시도가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를 받았다.
경제구조 개편도 반독점 규제 강화의 배경으로 꼽힌다. 시진핑 국가주석-리커창 총리로 대표되는 중국의 5세대 지도부는 개방과 경쟁을 경제정책 과제로 천명하고 사실상 묵인해왔던 반시장적 행위를 바로잡겠다고 나섰다. 특히 독과점을 통해 시장을 장악하고 각종 비리를 저질러 왔던 국영기업과 외국계 기업에 화살이 집중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영국, 프랑스계 다국적 제약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과 사노피는 중국 관료나 의사들에게 뇌물을 제공하고 약값을 마음대로 인상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외국계 제약사는 대형종합병원 등 중국 고급 의약시장의 65%, 의료기기 분야의 80%를 장악하고 있는데, 시장지배력을 남용해 중국산 약품보다 많게는 10배나 비싸게 판매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반독점법 강화, 외국계 기업 겨냥?
서방 언론은 반독점법 칼날이 궁극적으로 외국계 기업을 겨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가격담합 등 반독점 행위 규제는 명분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자국산업의 보호·활성화 차원에서 중국 당국이 치밀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 이와 관련 "중국정부가 다국적기업 전체에 경고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뉴욕타임스), "분유, 제약 등 외국계 기업이 중국 규제당국의 주목을 받고 있다"(파이낸셜타임스)는 보도가 잇따랐다.
중국 정부는 펄쩍 뛰며 해명했다. 선단양 상무부 대변인은 "중국 당국의 조사가 외국기업에 초점을 맞췄다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면서 "위법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다국적기업의 투자환경을 개선하고 공평한 기회를 보장하는 조치"라고 말했다. 쉬쿤린 발개위 가격감독·반독점 국장도 "반독점법을 시행한지 5년이 지나 많은 노하우가 축적됐다"며 "국적·업종을 불문하고 독점행위를 조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 4월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사과성명을 발표할 정도로 거셌던 애프터서비스 비판 등 올해 유독 집중됐던 외국계 기업에 대한 공세를 고려하면 이 같은 해명을 전적으로 신뢰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내수시장 점유율이 높은 분야에 대한 중국정부의 견제가 강화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한국기업들도 반독점법을 고려한 합법적 경영을 강화하고 중국사회에 공헌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9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