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에 집 보러 가자. 한 집은 미담이 가득한 운조루이고 다른 곳은 절벽 위 전각인 사성암이다. 건물은 스스로 풍경이 됐고 우리에게 해 줄 이야기가 많다고 한다. 운동화 끈 단단히 매고 구례로 떠나보자.


 

운조루.
운조루 앞길.

◆배려가 보이는 집, 운조루

배산임수, 이런 명당이 없다. 운조루가 자리잡은 곳은 노고단의 옥녀가 형제봉에서 놀다가 금가락지를 떨어뜨린 곳이라는데 이곳에 집을 지으면 자손대대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한다. 남한의 3대 길지 중 하나로 알려져 있고, 일본의 풍수지리학자 무라야마 지준의 <조선의 풍수>에도 소개됐다. 멀리서 봐도 집의 모습에 기품이 있고 집 앞에는 잘 꾸며놓은 연지가 있다. 연못 가운데 있는 인공섬에는 소나무와 꽃나무가 어우러져 있고 작은 다리를 건너 이 섬에 오를 수도 있다.

집을 품고 있는 산은 지리산 자락이다. 그러니까 뒷산에는 화엄사가 있고, 앞으로는 섬진강이 흐르고, 그 건너에 사성암이 있는 오산이 있다. 이 집은 조선 영조때 류이주가 낙안군수로 있을 때 지은 99칸짜리다. 대청 위 상량문에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1776년(영조 52년)에 세웠다고 돼 있다. ‘운조루’(雲鳥樓)의 뜻은 ‘구름 속에 새처럼 숨어있는 집’으로 이름에도 운치와 풍류가 느껴진다. 집 앞부터 봄꽃이 화려하게 피어났고 산과 물이 어울려 존재 자체가 한폭의 그림이다. 고택에는 후손이 기거하며 집을 돌보고 있으며 중요민속자료 제 8호이기도 하다.

풍수 덕인지 이들은 복을 많이 받았다. 큰 부자였고 베푸는 일에도 인색하지 않았다. 사랑채와 안채로 통하는 헛간에는 아이들 키를 넘는 큰 뒤주가 있다. 200년이 넘은 이 쌀독에는 쌀이 두가마(한가마=80kg) 이상 들어갔다고 하는데, 여기에는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글씨가 써 있다. 요즘 말로 하자면 ‘아무나 가져갈 수 있음’ 이라는 뜻이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은 이 뒤주에 와서 자유롭게 쌀을 퍼 가도록 했다고 한다. 그리고 혹시 곡식을 가져 가는 사람이 부끄럽게 여길까바 이 집 사람들이 뒤주 쪽으로는 잘 오지 않았다고 한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휼할 수 없다’고 하는데, 아마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을 것이다. 이 집에서는 쌀 수확량의 5분의 1정도를 나눠줬다고 하니 이들이 받은 풍수적 ‘혜택’이 아깝지가 않다. 이 뒤주는 지금까지도 운조루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유산이다.

안채의 앞과 뒤, 사당 앞의 작은 정원도 인상적이다. 이곳은 여자들을 위한 마당이다. 사실 옛날에는 ‘양반 마님’이라고 다 좋은 건 아니었다. 마음대로 밖으로 다니지도 못하니 꽃이 핀다고 꽃을 볼 수 있나, 바람이 좋다고 바람을 쐴 수 있나…. 요즘처럼 ‘여행 다니는 여자’는 꿈도 못 꿀 일이다. 집 안에서 시 읽고 수 놓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역마살 있는 여자가 집안 내력이었다면 집단 우울증에 걸리고도 남았을 것이다. 다행히 안채 마당에도 꽃나무가 있고 사당 앞에 꽃과 나무가 많아 조금은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솟을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날렵하고 당당한 사랑채도 멋있지만 안채와 작은 마당에서 여인네들이 느꼈을 작은 행복이 전해지는 것 같아 정이 가는 장소다.


사성암 약사전.
사성암 소원바위.

◆절벽 사찰, 사성암

이제 운조루에서 본 오산으로 간다. 이곳에는 절벽사찰, 사성암이 있다. 원래는 오산에 있어서 오산암이었지만 의상대사, 원효대사, 도선국사, 진각선사 등 4명의 승려가 수도를 했던 곳으로 전해져 사성암으로 부르게 됐다. 백제 성왕 22년(544년)에 연기조사가 건립했다고 전해지고 지난해에는 국가지정문화재 제111호로 지정됐다.

절벽사찰이라 가는 길이 간단하지가 않다. 차를 몰고 간다면 죽마리 섬진강가에 주차를 해야 한다. 여기서부터 걸어서 오른다면 1시간 정도 트래킹을 해야 하고 조금 편하게 가자면 셔틀버스를 타고 입구까지 간다. 4㎞ 정도 되는 길은 걷기에도, 차를 타고 가기에도 험한 편이어서 ‘도대체 뭐가 있길래?’ 하고 오히려 기대감도 높아진다. 마침내 전각이 보이는데 저게 다가 아니다. 약사전 지나 도선굴 거쳐 오산 정상까지 천천히 탐방하며 볼거리가 많다.

우선 약사전이다. 20m 절벽 위에 세워진 약사전은 사성암을 대표하는 전각이다. 내려오는 사람과 비껴 서기를 반복하며 조심조심 오르는 기분이 마치 요새에 들어온 것 같다. 마침내 약사전에 도착하면 절을 올리는 사람들로 약간의 정체가 생긴다. 전각 안에는 약사여래입상이 있다. 이것은 절벽에 음각으로 새겨진 부조로 원효대사가 선정에 들어 손톱으로 그렸다는 전설이 있다. 과연 기운이 신비롭다. 여기서 등을 돌리면 절벽 경치가 아름다워 감탄이 터진다. 기다리는 줄도 있고 보살님이 지켜 서서 엄격하게 촬영을 통제하기 때문에 사진은커녕 마음이 바쁘다. 꼭 직접 가봐야 볼 수 있는 귀한 곳으로 약사여래입상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 220호다. 암자 뒤쪽으로는 풍월대, 망풍대, 신선대 등 12비경이 펼쳐진다.

약사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소원바위가 있다. 이곳에 소원을 적어 달고 바위에 돈을 붙여 놓기도 한다. 길을 따라 조금 더 오르다 배례석을 지나면 산왕전이 나오고, 그 옆에 도선국사가 수행했다고 하는 도선굴이 있다. 사람들은 산왕전 뒷편과 옆에 보이는 바위에서 부처 형상을 찾는다. 어떤 사람은 선명하게 부처님 얼굴이 보인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도저히 모르겠다고 하면서 ‘착한 사람’ 운운하느라 즐겁다. 도선굴 안은 어둡고 좁지만 위쪽 바위틈으로 자연광이 들어오고 딱 한사람 절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돌길을 따라 더 오르면 평평한 바위가 나오는데 이곳이 좌선대다. 여기서 발을 멈추고 섬진강을 보면서 시원하게 숨을 고른다. 산 길을 더 오르면 마침내 오산 전망대가 나온다. 사실 오산은 해발 530m의 높지 않은 산이다. 그렇지만 조망이 넓고 좋다. 운조루는 물론 구례읍을 비롯해 문척면 마산면 등 섬진강 주변의 마을들이 보이고 눈을 들어 멀리 보면 지리산 노고단까지 보인다.

마지막으로 오산에서 내려와 섬진강의 봄을 만끽한다. 부드럽고 푸른 강물 빛과 모래사장 위로 봄꽃이 만발한 섬진강변은 화려하지만 우아함도 잃지 않았다. 수면 위로 짧은 봄빛이 반짝반짝 바쁘게 흘러가고 있다.

● 여행 정보

☞ 운조루 가는 법
경부고속도로 - 천안논산고속도로 - 호남고속도로 - 익산포항고속도로 - 순천완주고속도로 - 용방교차로에서 ‘구례, 지리산국립공원’ 방면으로 우측방향 - 산업로 - ‘하동, 화엄사, 마산, 토지’ 방면으로 우측 - 구례로 - ‘오미리’ 방면으로 좌회전 - 곡전재길 - 우회전 - 운조루길

[대중교통]
구례공영버스터미널 – (구례-피아골) 노선버스 승차 – 원내 버스정류장 하차

[주요 스팟 내비게이션 정보]
운조루: 검색어 ‘운조루’ /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103
사성암: 검색어 ‘사성암 마을버스 매표소’ / 전라남도 구례군 문척면 죽마리

운조루
http://www.unjoru.net
문의: 010-8904-2644
체험 프로그램: 누마루에서 구례명차 마시기, 운조루 뒷산 걷기, 숲체험, 국궁체험, 고택에서 하룻밤 등(홈페이지 참고)
운조루 산림욕장: 운조루 뒷편으로 짧게는 300m에서 길게는 1.4㎞까지 산책길이 있다.

사성암
문의: 061-781-4544
셔틀버스: 일반 왕복 3000원 / 소인 왕복 2400원
셔틀버스 시간(20분 간격): 상행 첫차 오전 8시 / 하행 막차 오후 6시

< 음식 >
밥도둑: 구례읍에 있는 식당으로 전체적으로 음식맛이 좋고 특히 닭볶음탕을 찾는 손님이 많다.
제육볶음 1만원 / 부대찌개 7000원 / 닭볶음탕 3만원
전라남도 구례군 구례읍 봉동리 201-19 / 061-783-1188

< 숙소 >
운조루 막둥이집 민박: 이름처럼 운조루 막둥이가 운영하는 민박집이다. 방 3개, 거실과 화장실이 있는 독채 민박으로 취사가 가능하고 내부는 현대식으로 꾸며져 있다.
http://www.unjoru.net/tourist_home
문의 010-9305-7705 /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115-1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7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