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금융지주사가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지배구조를 재정비했지만 지주회장 자리는 여전히 흔들리고 있다. 채용비리와 관련된 금융당국의 조사와 검찰의 수사가 아직 진행되고 있어서다.
금융감독원 특별검사반은 오는 4월3일까지 하나금융지주와 KEB하나은행 채용비리 관련 현장조사를 벌인다. 금감원은 지난해 12월과 올 1월 2차례에 걸쳐 금융권 전반에 대한 채용업무 적정성 조사를 벌인데 이어 이번에는 하나금융만을 타깃으로 특별검사를 진행 중이다. 최흥식 전 금감원장이 하나금융 사장 시절 친구 아들의 채용에 특혜를 제공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시점에 당국의 검사가 시작됐다. 최 전 원장의 자진 사퇴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금감원의 강공 드라이브가 예상되고 있다.
채용비리에 연루된 KB금융도 검찰의 고강도 수사망을 피하지 못했다. 검찰은 지난 2월 초 윤종규 회장의 사무실과 채용담당부서 등 6곳을 압수수색한 데 이어 지난 3월14∼15일 윤 회장과 HR담당임원, 인사팀장 등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총 3차례에 걸쳐 확보한 자료를 분석해 구체적인 청탁 지시가 있었는지, 청탁을 대가로 금품이 오갔는지 등을 두루 살피고 있다.
이런 금융당국과 검찰의 고강도 대응에 대해 업계에서는 지주회장 스스로 알아서 물러나라는 ‘시그널’을 주고 있다는 분석과 문재인 정부의 신관치 행태가 지나치다는 비판이 공존하고 있다.
◆KB금융∙우리은행 등, 정권교체기마다 ‘외풍’에 시달려
역대 정권마다 은행권 CEO자리는 집권세력의 전리품이었다. 새 정부 출범 후 기존 금융사 CEO에 대한 고강도 검사가 진행되고 CEO가 자리에서 물러나면 정부 ‘낙하산’이 내려오는 식이다. 정치권과 금융권 등에 따르면 정부는 외환위기 이후 민간 은행 CEO 인사에 전방위로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대 피해자는 KB국민은행이다. 김정태∙강정원 전 행장, 황영기∙어윤대∙임영록 전 KB금융 회장, 이건호 전 행장 등이 모두 불명예 퇴진했다. 이들 모두 금융당국의 징계를 받았다.
특히 2001년 국민은행과 주택은행 간 통합 후 초대 통합은행장이던 김정태 전 행장은 임기 만료를 앞둔 2004년 9월 금융당국으로부터 중징계인 문책경고를 받았다. 2003년 국민카드 합병 당시 회계결산과정에서 5500억원 규모의 회계기준을 위반했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징계 과정에서 재무담당 부행장이던 윤종규 현 KB금융 회장도 회계처리에 중대과실을 범했다는 이유로 감봉 조치를 받고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문제는 당국간 견해가 엇갈렸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에서는 ‘고의성 없는 회계과실’이라고 판단했지만 금융감독원 제재심의회와 금감위에선 ‘중대 한 분식회계’로 결론냈다. 전 정권 인사를 솎아내기 위한 무리한 징계였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2008년 9월 지주사 설립 후 첫 KB금융지주 수장에 올랐던 황영기 회장도 1년만인 다음해 9월 직무정지 상당의 중징계를 받고 중도 사퇴했다. 우리금융지주회장 시절 1조원대 파생상품 투자를 결정해 손실을 입혔다는 점이 문제였다.
우리금융지주와 우리은행의 경우 2001년 지주 출범 후 현재까지 총 5명 회장과 6명(황영기 전 회장 겸임)의 은행장 중 3명이 검찰조사를 받았다.
2010년 3월 라응찬 당시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4연임에 성공했지만 그해 10월 금감원이 금융실명법 위반 혐의로 중징계 방침을 통보하자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금감원 고강도 검사, 주요 지주회장 ‘자진사퇴’ 유도?
문재인정부에서도 금융권 CEO 수난사는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금융권을 적폐대상으로 규정하면서 지배구조를 문제삼고 있고, 지주사들이 그러한 문제를 개선하자 다시 채용비리 의혹을 캐며 전방위 압박을 가하는 모양새다.
금감원은 지난해 12월 KB금융과 하나금융에 회장과 사외이사 후보를 관리하고 추천하는 과정에 회장이 참여하는 게 문제라며 ‘경영유의사항’을 통보했다. 이에 이들 지주사는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와 사외이사추천위원회(사추위)에서 회장을 배제했다. 민간 지주사가 자율 개선조치를 한 것이다.
그럼에도 금감원은 재차 지주사를 압박하고 나섰다. 지난 12일 금감원은 KB금융 지배구조 검사에 착수했다. 이어 4월에는 하나금융에 대한 경영실태와 지배구조 검사를 함께 진행할 예정이다.
여기에 정부의 ‘대리인’ 격인 연기금은 금융지주사 노조와 함께 ‘노동이사제’ 추진 등 경영참여를 작년 11월부터 시도하고 있다. 특히 KB금융 노조는 윤 회장 퇴진 등을 내걸고 6개월 넘게 컨테이너 점거 농성을 이어갔다. 하나금융 노조도 김정태 회장 연임 반대, 함영주 KEB하나은행장 사퇴를 촉구하며 사측과 칼끝 대치했다.
금융권은 이 같은 상황을 일부 지주회장을 압박하기 위한 당국의 조치로 해석하고 있다. 개인은 물론 조직을 흔들어 CEO의 자진 사퇴를 유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의 과도한 인사 개입이 금융지주사들의 성장판을 훼손했고 지금도 그런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권이 바뀔 때마다 CEO가 교체되면서 그 여파는 부사장∙행장 이하 임원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지며 인사가 꼬여버린다”며 “차기 회장 후보로 유력하던 임원이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고 ‘줄만 잘 서면 출세한다’는 인식이 생겨나는 것이 문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