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적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긍정적 역할 기대
지난달 29일 예정됐던 ‘현대모비스·글로비스 분할·합병’ 주주총회가 취소됐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의 반대에 이어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마저 줄줄이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안에 부정적 의사를 표명하면서 분위기가 기울었다. 주총에서 부결 가능성이 커지자 현대차그룹은 결국 분할·합병 계획을 자진 철회했다.
과거 대주주의 입김에 휘둘렸던 국내 기업의 주주총회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그룹 지배구조 개편, 최고경영진 연임 여부 등 각 사안마다 주주들이 칼자루를 쥐게 되면서 의결권 자문사들의 목소리가 중요해지는 분위기다. ‘주주의 한 표’를 강조하는 의결권 자문사. 의결권 자문사는 무엇이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달 29일 예정됐던 ‘현대모비스·글로비스 분할·합병’ 주주총회가 취소됐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의 반대에 이어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마저 줄줄이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안에 부정적 의사를 표명하면서 분위기가 기울었다. 주총에서 부결 가능성이 커지자 현대차그룹은 결국 분할·합병 계획을 자진 철회했다.
과거 대주주의 입김에 휘둘렸던 국내 기업의 주주총회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그룹 지배구조 개편, 최고경영진 연임 여부 등 각 사안마다 주주들이 칼자루를 쥐게 되면서 의결권 자문사들의 목소리가 중요해지는 분위기다. ‘주주의 한 표’를 강조하는 의결권 자문사. 의결권 자문사는 무엇이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남긴 교훈
의결권 자문사는 주요 기업의 주총 안건을 분석한 뒤 기관투자가에게 찬성 또는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기존에 ‘거수기’ 역할을 하는 데 그쳤던 기관 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해 기업의 지속 성장을 도모하도록 유도하는 제도다.
다만 이들의 의견은 어디까지나 ‘조언’일 뿐 기관투자자가 이들의 의견을 따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따라서 지난해까지만 해도 국내 자본시장에서는 의결권 자문사에 대한 수요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 올 들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의결권 자문사에 대한 재계와 투자자의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대기업 오너들의 지배구조 강화와 승계 작업에 브레이크를 거는가 하면 최고경영자(CEO) 연임에 찬성 혹은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등 외국인 주주들의 선택을 유도하는 주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찬반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안건에서 의결권 자문사들의 권고가 주총을 뒤흔드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의결권 자문사의 입김이 커지고 있는 데는 2015년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가 홍역을 치른 국민연금의 경험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당시 국민연금은 제일모직보다 삼성물산 주식을 많이 갖고 있으면서도 삼성물산에 불리한 합병비율에 찬성한 데다 합병에 따른 시너지도 크지 않아 손해를 자초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의결권 자문사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은 합병비율 등 여러 조건에서 삼성물산 주주에게 불공정하다”며 반대 입장을 내놓았지만 국민연금은 이 권고마저 무시하면서 논란에 휩싸였다. 의결권 자문사의 역할론이 부각된 것도 이때부터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으로 영향력 커져
기관투자자들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움직임도 영향을 미친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연기금,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가들이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도록 하는 의결권 행사 지침을 말한다. 고객의 돈을 관리하는 대리인으로 자신들이 투자한 기업에 의결권을 적극 행사하고 주주 가치를 높이는 것이 목적이다.
2010년 영국에서 처음 도입된 스튜어드십 코드는 우리나라에서 2014년부터 논의되기 시작했으며 2016년 12월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스튜어드십 코드 7개 원칙을 발표하면서 시행됐다.
시행 초기 참여 기업이 저조해 지지부진했던 스튜어드십 코드는 문재인정부가 재벌개혁과 주주 의결권 확대를 위해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확산되는 분위기다. 우선 국내 증시의 대표적 ‘큰손’인 국민연금이 다음달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앞두고 있다.
자산운용사들도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적극적이다. 기업 경영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는 회사로 알려진 KB자산운용을 비롯해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트러스톤자산운용, 대신자산운용, 미래에셋자산운용, 하이자산운용, 동양자산운용,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메리츠자산운용, 한국투자신탁운용,흥국자산운용, IBK자산운용 등도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다.
이처럼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본격화되며 의결권 자문사의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기관투자자는 의결권 자문사의 의견을 참고해 기업의 인수·합병 등 각 사안에 대한 찬반 의사를 정하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자문을 맡고 있는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을 비롯해 서스틴베스트, 대신지배구조연구소,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등의 의결권 자문사가 있다. 미국에선 세계 양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와 글래스 루이스를 포함해 이건존스, 마르코 컨설팅, 프락시 보트 플러스 등이 대표적인 의결권 자문사로 꼽힌다.
국내 의결권 자문사 관계자는 “예전보다 주총 안건 분석과 의결권 행사에 대한 자문 관련 문의가 훨씬 많아진 것은 사실”이라면서 “주총 시즌에는 모든 인력을 동원해 해당 기업에 대한 정보를 수집, 이를 기반으로 분석·판단하는데 주주권리 훼손 여부를 기준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헤지펀드 공격 빌미 제공한 것은 기업”
기업은 의결권 자문사의 역할에 의구심을 갖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기업의 지배구조를 정상화하려면 이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자꾸 논의가 엘리엇 공격과 자문사 의결권 신뢰성 논란으로 흐르는데 애초에 엘리엇과 같은 헤지펀드 공격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우리나라 재벌 기업들의 후진적 지배구조”라고 꼬집었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 기업들은 대부분 승계과정이나 CEO·사외이사 선임 등 중요한 사안을 주주들에게 상세하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등 충분한 설득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서 “의결권 자문사의 신뢰성을 논하기 전에 우리나라 기업의 변화가 더 시급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렇지 않으면 엘리엇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으로 손해를 봤다며 700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을 정부에 요구한 사례와 같이 더 큰 비용을 치러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43호(2018년 6월6~12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