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하이마트 부지에 역세권 청년주택(기업형 임대주택)이 건립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인근 H아파트에는 ‘5평형 빈민아파트 신축 건’이라는 안내문이 내걸렸다. 아파트가격 폭락, 안전문제, 빈민지역 슬럼화 등의 이유를 들며 주민들의 반대를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이들은 며칠 뒤 서울시청에 민원을 제기했다.
#2015년 기준 서울에 사는 1인 청년가구(만 19~34세)의 주거빈곤율은 37.2%에 달한다. 이는 전국 전체가구 주거빈곤율(11.6%)의 3배가 넘는 수치다. 나아가 서울 거주 청년들의 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RIR)은 40%에 이른다. ‘주거빈곤’이란 ▲최저 주거기준 미달 주택 ▲지하와 옥탑방 ▲고시원 등 주택 이외 거처에 거주하는 가구를 말한다. 소득의 4할을 임대료로 내는 청년 중에는 지·옥·고(지하, 옥탑방, 고시원)에 사는 이도 있을 것이다.
청년주택 반대주민이 청년층을 빈민이라 부른 것은 이 같은 통계에 기초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심각한 상황을 알고 있음에도 반대했다면 전직 대통령의 말을 빌려 ‘나쁜 사람’일 터다. 또 이처럼 모욕을 당하고도 ‘나쁜 사람’의 양보를 기다려야 하는 문제가 청년주택사업에 내재돼 있다. 특히 정책의 당사자인 청년층은 사업지에 살지 않는다는 이유로 논의 테이블에서도 빠져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한다.
서울시의 역세권 2030청년주택사업은 곳곳에서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청년주택 사업지역 중 민원이 들어오지 않은 곳은 한군데도 없다고 말했다.
동네마다 대응의 강도는 다르지만 당산동·성내동의 반발이 가장 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보도에 가장 많이 등장한 지역도 두곳이다. 이와 관련 성내동 청년임대주택 반대위원회는 억울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당산동처럼 모욕적인 표현을 쓰지도 않았고 처한 사정이 전혀 다른데 과한 비난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달팽이 유니온 관계자는 당산동과 성내동의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결국 집값이 문제인데 알짜배기 땅에 중요시설이 들어오지 않는 게 반대 이유라는 것이다. 그는 상업시설이 들어올 경우 개발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그게 아니어서 반대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반대는 명분일 뿐 본인들의 재산에 이익을 줄 수 있는 혜택을 달라는 게 진짜 속내라면서 “집이 보금자리가 아니라 투기수단으로만 치부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최근의 갈등은 집값을 올리지 못하는 시설을 혐오·기피시설로 받아들이는 세태를 명확히 보여준 사례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임한결 청년정당 우리미래 정책국장은 “언제나 공공주택이 들어선다고 하면 과도하게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민원을 넣으면 이득을 보는 걸 알기 때문에 그렇다”며 “논란이 컸던 당산동의 경우 어쨌든 합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임 정책국장은 성내동 반대주민도 입장이 바뀐 건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처음에는 집값 등의 이유를 대다 여론의 비판이 강해지자 갑자기 청년주택 임대료 문제를 꺼냈다는 것이다. 그는 이 같은 태도변화가 ‘반대를 위한 반대’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강동구청 관계자에게 성내동 청년임대주택 상황을 묻자 "청년주택 건립을 반대하며 용도지역을 상향해달라고 요구하는데 용도지역 상향은 공공성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민원해결 때문에 용도상향을 해줄 수는 없다"고 밝혔다.
다만 필요한 시설을 말하면 시와 협의해 설치해줄 수 있다고 전했다. 강동구는 인허가권이 없으므로 서울시와 자리를 마련해주려고 하는데 반대주민이 거부해 중간에서 난처한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김승수 서울시 역세권사업팀장은 동네마다 사정이 다르겠지만 성내동의 경우 반대주민 대다수가 임대사업자여서 더욱 격렬히 반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대주민이 제기하는 노후주택의 붕괴 위험성은 시에서도 조심하는 일이라고 밝혔다. 그는 “주민이 반대하는 이유 중 타당한 부분은 조치를 취한다. 집 짓다 남의 집 부수면 형사사건이지 않나. 안전검사를 실시하고 공사피해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청년주택사업은 청년과 주민 모두를 위한 상생의 정책이라고 역설했다. 청년주택 안에 사업시설을 마련하면 일자리가 생기고, 지역주민 우선 채용 등의 방침을 세우면 상생이 가능하다면서 긍정적 효과를 강조했다.
공영주차장 얘기도 꺼냈다. 김 팀장은 “성내동에 가보면 알겠지만 골목마다 이면주차를 해 소방차가 들어갈 수 없다. 청년주택에는 의무적으로 공영주차장을 건설하니 지역거주자 우선주차로 하면 소방도로가 확보되고 공영주차장에서 나오는 비용으로 청년입주자의 관리비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청년주택 입주조건 중 하나가 '자동차가 없는 것이어서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나아가 저렴한 임대료 덕에 여유자금이 생긴 청년층의 소비가 늘어 지역경제도 활성화되지 않겠느냐고 얘기했다. 그러나 저렴한 임대료와 관련해 청년단체는 다른 입장을 보였다.
◆청년주택 논의테이블에서 제외된 청년세대
임 정책국장은 삼각지에 지어지는 청년주택1호의 임대료를 예로 들며 청년층에게 부담스러운 액수라고 밝혔다. 삼각지 청년주택의 ▲1인 단독 전용면적 19㎡(약 6평)는 보증금·월세가 3950만원/38만원 또는 9485만원/16만원 ▲신혼부부 전용면적 49㎡(약 15평)는 8500만원/84만원 또는 2억805만원/35만원이다.
그는 “청년세대의 현실에도, 청년임대주택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 금액”이라며 "서울시가 좀 더 의지를 갖고 공공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이런 임대료 책정은 협상테이블에서 청년세대가 제외된 결과라고 강조했다. 실효성 있는 정책을 만들려면 청년세대가 포함된 논의테이블이 필요한데 청년세대는 사업지에 살지 않는다는 이유로 협상테이블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공공주택 갈등이 세대갈등으로 변질되는 양상을 보이는데, 이 역시 갈등해결 테이블에 청년세대가 필요한 이유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와 관련해 7~8월 중 청년임대주택 인식변화를 위한 공론화 테이블을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임 정책국장은 서울시 관계자에게 “이 정도의 혜택을 주지 않으면 민간사업자가 안 뛰어든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분양 전까지 협상한다고 하지만 수익을 보장해준다는 서울시의 원칙 아래서 얼마나 더 양보를 얻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여전히 주거시장을 위한 논리만이 존재하고 주거여건을 정상화시키는 정책은 얼마나 부족한지를 보여주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역세권 청년주택은 과도한 임대료 때문에 정책이 처음 추진되던 2016년부터 ‘부자만 사는 청년주택’, ‘고액 월세 변질 우려’ 등의 비판을 받았다. 이제는 여기에 '혐오'와 '빈민'이란 단어까지 달라붙기 시작했다. 서울시는 언론기고, 기자설명회, 지하철광고, 민원답변 등을 통해 인식개선에 힘쓰고 있다는 입장이다.
임대주택의 필요성은 주택보급률 102%에도 해결되지 않는 주택부족과 그로 인한 과도한 임대료에서 기인하는 것이지 청년층이 지나치게 가난해서는 아니다. 청년층은 그 나이 때 벌 수 있는 만큼의 돈을 번다. 다만 주거비가 지나치게 많이 들 뿐이다.
한 시민은 청년임대주택의 임대료도 비싸다고 지적하며 “도시 외곽의 싼 땅에 집 지어서 장기임대를 주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그로 인한 교통비와 시간을 감내할 만큼 여유로운 청년층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③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