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SK그룹은 최 회장 20주기를 맞아 업적과 경영철학을 기리는 다양한 행사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우선 구성원의 기부금을 모아 숲 조성 사회적기업인 트리플래닛에 전달, 5만평 규모의 숲을 조성키로 했다. 14일부터는 고인의 업적과 그룹의 성장사를 살펴볼 수 있는 20주기 사진전을 주요 사업장에서 개최한다. 24일에는 워커힐호텔 비스타홀에서 갹계 인사 500여명이 참여해 고인의 경영철학을 재조명하는 20주기 추모 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최 회장은 1998년 8월26일 69세의 일기로 생을 마쳤다. 최종현 회장은 화장(火葬)이 드물었던 시절 화장 유언을 남겼고 가족들이 이를 실천해 사후에도 큰 울림을 남겼다.
◆“운(運)만으로 큰 사업을 할 수 없다”
최 회장은 자본, 기술, 인재가 없었던 1973년 당시 선경(현 SK)을 세계 일류 에너지·화학 회사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당시만 해도 섬유회사에 불과한 SK가 원유정제는 물론 석유화학, 필름, 원사, 섬유 등에 이르는 수직계열화를 선언한 것이지만 많은 이들은 불가능한 꿈으로 치부했다.
그러나 최 회장은 장기적 안목과 중동지역 왕실과의 석유 네트워크 구축 등 치밀한 준비 끝에 1980년 대한석유공사(유공)를 인수했다.
그는 1983년부터 해외유전 개발에 나섰다. 성공확률이 5%에 불과해 주변에서 만류했지만 사업을 추진, 이듬해인 1984년 북예멘 유전개발에 성공했다. 이후 1991년 울산에 합성섬유 원료인 파라자일렌(PX) 제조시설을 준공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최 회장은 미래설계가 그룹 총수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산업동향 분석을 위해 1984년 미국에 미주경영실을 세운 이유다. 이후 정보통신 분야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은 최종현 회장은 미국 ICT 기업들에 투자하고 현지법인을 설립해 이동통신사업을 준비했다.
앞선 준비 끝에 1992년 압도적 격차로 제2이동통신사업자에 선정됐지만 특혜시비가 일자 사업권을 자진 반납했다. “준비한 기업에는 언제든 기회가 온다”고 내부를 설득한 그는 실제로 2년 뒤 문민정부 시절인 1994년 한국이동통신 민영화에 참여, 이동통신사업에 진출했다.
당시 주당 8만원 대이던 주식을 주당 33만5000원에 인수하기로 하자 주변에서 재고를 건의했지만 최종현 회장은 “이렇게 해야 나중에 특혜시비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다. 앞으로 회사 가치를 더 키워가면 된다”고 설득했다.
◆한국고등교육재단 등 장학사업에 헌신
최 회장은 SK의 성장조차 불투명했던 1970년대부터 인재양성에 애정을 보였다. 1972년 조림사업으로 장학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서해개발(現 SK임업)을 설립한 그는 1974년 사재를 털어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했다. 재단은 당시 서울 집 한채 값보다 비싼 해외 유학비용은 물론 생활비까지 파격적인 지원을 했다.
재단이 44년간 양성한 인재는 국내외 곳곳에서 거목으로 자랐다. 약 3700명의 장학생을 지원했고 740명에 달하는 해외 명문대 박사를 배출했으며 80% 이상이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동양계 최초 예일대 학장인 천명우(심리학과), 한국인 최초 하버드대 종신교수 박홍근(화학과) 등 세계적 석학이 된 이들은 학술교류와 민간외교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화장’ 유언으로 실천… 장례문화 개선 전기 마련
최 회장은 폐암으로 갑작스레 타계하기 직전 “내가 죽으면 반드시 화장(火葬)하고 훌륭한 화장시설을 지어 사회에 기부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묘지 난립으로 좁은 국토를 효율적으로 활용 못하는 것을 평소 안타까워했던 그는 사회지도층 인사 중 처음으로 화장을 택하면서 장례문화를 선도했다.
그의 유언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최종현 회장 사후 한달만에 ‘한국 장묘문화개혁 범국민협의회’가 결성돼 ‘화장 유언 남기기 운동’이 전개될 정도로 시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