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 기억도 정확히 나지 않는 어느 날 저녁. 기획재정부(당시 재정경제부) 공무원들은 정부과천청사 인근 술집에서 의기투합했다. “어차피 모이면 늘 술 마시고 똑같은 얘기만 하는데 대신 ‘좋은 일’을 해보자.”

이날 이후 이들은 인근 보육원과 장애인 보호시설, 노인요양원 등을 찾아 한달에 한번 봉사하고 십시일반 모은 돈을 기부했다. 하나둘 동참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어느새 서른명을 넘었다. 당시 이 제안을 한 사람은 송재근 생명보험협회 전무이사(56). 그때 시작한 봉사활동은 지금까지 쭉 이어진다. 직장을 여러번 옮기면서 당시 함께했던 동료들은 떠났지만 그는 한번도 봉사활동을 거른 적이 없다.


송 전무는 2000년대 중반 서울 여의도의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원회)로 근무지를 옮긴 후 영등포 노숙인 보호시설 ‘옹달샘드롭인센터’에서 무료급식 봉사를 했다. 한달에 한두번 주말과 연말이 오면 어김없이 노숙인들을 위해 밥을 짓고 일자리를 찾도록 격려했다.

광화문 금융위원회에서 근무한 2012년부터는 6년째 서울역 앞 ‘가브리엘의 집’을 방문한다. 매달 평일 하루씩 점심시간 동안 장애아동의 식사를 돕는다. 봉사정신의 실천보다 더 어려운 것이 꾸준함인데 20년 가까이 그를 지탱한 힘은 뭘까. 송 전무는 “봉사하는 순간만은 힘이 약한 이들이 나를 의지하고 필요로 하는데 거기서 오히려 위로와 행복을 얻는다”고 말했다.

“봉사를 해본 사람은 알아요. 봉사하는 순간만은 자기위안이 확실하게 되거든요. 회사일이든 자식일이든, 세상일은 마음대로 안 되는 것 투성인데 자기 손으로 밥알 하나 입안에 제대로 못 넣는 장애아동들을 보면 그런 스트레스는 다 하찮게 돼요. 짜장면 하나에도 행복한 아이들을 보면 계속 올 수밖에 없어요.”
/사진제공=생명보험협회

◆"봉사하는 사람 얼마나 많은데…"

오랜 시간 쌓은 봉사경험으로 그는 자기분야를 떠나 소외된 사회에서 더 유명인사가 됐다. 2012년 옹달샘드롭인센터에서 노숙인 자활치료를 받던 한 청년은 “10년 가까이 빠지지 않고 오는 봉사자는 거의 없다”며 “오랫동안 한결같은 모습에 정이 든 데다 금전적인 지원까지 해주니 늘 감사하다”고 말했다.
송 전무의 봉사활동은 주변사람에게도 긍정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금융위 재직 시절 사랑봉사단을 결성해 동료들의 참여를 이끌었고 지금도 생명보험협회 직원 5명 정도가 봉사 때마다 함께한다. 이름 밝히기를 꺼리는 생명보험협회의 직원은 “누구나 치열하게 경쟁하고 부와 명예를 원하는 시대에 많은 직원들의 귀감이 되는 분”이라면서 “다른 사람과는 삶의 지향점이 다르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송 전무는 봉사활동뿐 아니라 삶을 사는 방식이 평범하지 않다. 금융위에서는 축구단 감독과 밴드 리더를 맡아 ‘즐거운 직장생활 만들기’에 열심이었다. 직접 공연을 기획하고 젊은 직원들과 소통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공직생활을 끝내고 민간으로 온 후로는 기부금을 늘렸다. 송 전무는 “실제 복지단체들은 봉사활동보다 금전적 지원이 더 절실하다”며 “공무원 때보다 월급이 늘어(웃음) 매달 10군데씩 기부한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대단치 않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과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 저보다 더 바쁘고 높은 분들도 지금까지 봉사활동과 기부를 지속하고 있어요. 제가 대단한 일을 하는 건 아니에요.”
/사진제공=생명보험협회
/사진제공=생명보험협회

◆생명보험산업의 미래 고민

공직에 있던 지난 28년과 생명보험협회 총책임임원으로서의 지난 2년. 송 전무는 인생의 절반 이상을 대한민국 금융산업을 움직이는 일터에서 보냈다. 은퇴를 몇년 앞둔 지금은 조용히 노후준비에 몰두하면서도 일에 대한 고민이 적지 않다.
생명보험산업은 거의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상품가입은 약 8000만건으로 가구당 하나 이상 보유한 상태고 경제불안으로 해약환급금이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대내외적인 환경도 나쁘다. 2021년 신규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에 따라 보험사의 부채평가를 더 세분화해 많은 자본이 필요해진다. 또 소비자보호가 금융산업의 최대이슈로 떠오른 지금은 예전과 비교하면 보험금 지급이 늘어나고 보험가입으로 인한 피해를 막는 것이 중요해졌다.

송 전무는 “4차 산업혁명시대 인공지능(AI)이나 빅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할지, 어떤 신산업을 찾아 보험과 연결할지 등이 과제”라며 “100세 시대를 대비하는 의료서비스와의 결합이 다양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또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건 소비자보호”라며 “불완전판매 관리를 소홀히 하는 기업은 생존 자체가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62호(2018년 10월17~23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