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어떻게 식민지배와 6·25전쟁으로 인한 자산파괴를 단기간에 극복하고 세계 10대 경제대국과 민주화를 달성했을까. 삼성전자는 어떻게 반도체와 휴대폰에서 세계 1위가 됐고 방탄소년단은 어떻게 빌보드차트 1위에 올라 K-Pop 열풍을 전 세계로 확산시켰을까. 불과 50년 전까지만 해도 불가능한 것으로 당연시됐던 일이 기적처럼 현실이 되는 배경엔 무엇이 있을까. ‘홍찬선의 패치워크 인문학’에선 그런 기적을 일으킬 수 있었던 우리의 인문학적 바탕을 찾아본다. -편집자-
“국가를 경영하는 사람은 적음을 걱정하지 않고 고르지 못함을 걱정하고 가난보다 편안하지 않음을 더 근심한다. 무릇 고르면 가난하지 않고 고르게 나눠 화목하면 가난이 없으며 가난이 없어 편안해지면 기울어지지 않는다.”
<논어> ‘계씨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은 만성적 유효수요 부족에 시달리는 현대 경제문제의 해법으로 삼을 만한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재화를 고르게 나누는 ‘균’(均)은 문재인정부가 제시하는 ‘소득주도성장’과 일맥상통한다. 재화는 특정 계층에 집중되면 소비성향이 떨어져 수요가 줄어들고 시장이 축소되면서 생산이 감소한다. 결국 성장이 둔화되면서 고용도 감소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반면 재화가 고르게 분배되면 수요가 늘고 시장이 활성화돼 생산이 늘고 취업이 증가하며 성장률도 높아지는 선순환이 일어난다.
◆경제정책의 핵심, 분배(均)·불만해소(和)·안정(安)
공자는 고른 분배로 국민들의 불평불만이 해소되면서 공동체의 화합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그는 “낚시질하되 그물질은 하지 않았고 주살을 쏘되 잠자는 새는 쏘지 않았다”(釣而不網 弋不射宿, <논어> 술이편)고 설파한다.
나의 삶과 행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물고기나 새를 잡는 경제활동을 했지만 나만 잘살기위해 남이 잡을 물고기까지 잡지 않았다는 것. 혼자 독식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먹고 살 터전을 없애지 않도록 스스로의 한계를 정했다는 뜻이다. 한 발 나아가 잠자기 위해 둥지에 든 새는 절대 잡지 않음으로써 약한 처지에 빠진 이를 핍박하지 않는 사랑을 동물에게까지 확대하고 있다.
이를 현 세태에 비춰보면 국가가 강제적으로 ‘대형마트 일요일 휴무’를 정하기 전에 대기업이 먼저 골목상권이 살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사랑하던 제자 염구를 파문하는 공자의 단호함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염구는 내 무리가 아니다. 얘들아 북을 치면서 공격해도 된다(非吾徒也 小子鳴鼓而功之可也. <논어> 선진편)”.
“이단을 공격하는 것은 해로울 뿐(功乎異端 斯害也已)”이라며 무한한 포용을 강조한 공자가 이처럼 화를 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노나라 실력자인 계씨의 가신으로 있던 염구가 세금을 더 걷어 계씨를 부유하게 하자 “계씨는 주공보다 더 부자인데 이런 일을 한다”며 공자가 쌍심지를 켠 것이다.
“군자는 급한 사정에 있는 사람을 도와주되 부를 잇게 하지는 않는다(君子 周急不繼富, <논어> 옹야편)”는 소신에 따라, 가진 자의 부를 더 늘리기 위해 백성의 세금을 올리는 행태에 격하게 분노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 사례다.
◆유학은 경제문제를 도외시했다?
유학이 경제문제를 도외시했다는 오해가 뿌리깊다. 백성들의 먹고사는 문제보다 사리사욕에 정신이 팔렸던 지배층이 조선을 멸망에 이르게 했으니 더 이상 유학을 배울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한발 더 나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주장이 인기를 끌 정도다. 하지만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공리공담에 치중했던 주희(주자라고 숭상하지만 주자성리학의 폐해를 인식하자는 뜻에서 굳이 주희라고 쓴다)가 체계화한 성리학을 숭배한 결과일 뿐이다.
공자와 맹자를 비롯한 본래 유학은 경제문제를 매우 중시했다. 유학 정치경제의 최고 경전이라고 할 수 있는 <서경> ‘홍범’(洪範)에서는 국가가 중시해야 할 8대 정책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제1, 제2 과제로 식(食·먹는 것)과 화(貨·입고 자고 생활하는 것)를 제시한다. 백성들이 먹고 생활하는 것은 옛 체제에서 그토록 중시한 제사(祀, 3번째)와 교육(司徒, 5번째), 외교(賓 , 7번째)는 물론 국가방위(師, 8번째)보다 먼저 해결할 과제였던 것이다.
유학에서 본격적으로 철학문제를 다루는 <중용>(20장)에서도 나라를 다스리는 9가지 큰 원칙 중 “일상생활에 필요한 재화를 만드는 여러 공인들을 오게 하는 것(來百工)”을 7번째 과제로 제시했다.
임금이 반드시 공부해야 하는 제왕학으로 불리는 <대학>에서도 경제문제를 강조한 구절을 발견할 수 있다. “재물이 모이면 백성이 흩어지고 재물이 널리 퍼지면 사람이 모인다”거나 “(맹헌자가 말하기를) 말을 많이 기르는 사람은 닭과 돼지를 키우지 않으며, 여름에 얼음을 사용하는 집은 소와 양을 기르지 않으며, 경대부가에서는 세금 거둬들이는 신하를 두지 않는다. 세금 거둬들이는 신하를 두기보다 도둑을 두는 게 낫다”는 구절 등이 그것이다.
국민들의 생활안정을 최우선 순위로 뒀으며 나만 혼자 살겠다는 이기심보다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잘사는 것을 중시했음을 알 수 있다.
◆‘따듯한 자본주의’ 실현하는 ‘공자 이코노믹스’
공자는 “널리 베풀어 뭇사람을 어려움에서 구하는 일(博施濟衆)을 행하는 사람은 어질 뿐만 아니라 반드시 성인이다. 태평성대를 이룬 것으로 추앙받는 요순 임금도 박시제중을 하지 못함을 항상 병으로 여겼다고 강조했다(<논어> 옹야편).” 또 “군자는 자기 몸을 닦아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논어> 헌문편)”고도 했다.
사람이 공부하는 이유는 군자, 즉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이고 지도자가 해야 할 일은 박시제중으로 국민을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한다는 뜻이다.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에서 비롯된 자본주의는 노동자와 식민지를 끔찍하게 착취해 300년 가까이 이어졌다. 하지만 대공황과 글로벌금융위기 및 자연파괴를 거치면서 21세기에는 성장 제일보다는 성장과 분배가 조화를 이루는 따듯한 자본주의가 필요하다는 반성이 인다. 자본주의를 계속 발전시키려면 근본적 개혁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이다.
공자는 인류가 추구해야 할 이상사회로 ‘대동사회’를 제시했다. “남자는 모두 일자리가 있고 여자는 모두 시집가며 홀아비, 과부, 고아, 독거노인은 물론 고질병을 앓는 사람을 나라가 보살펴 대문을 잠그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사회”(<예기> 예운편)가 그것이다. 21세기를 이끄는 새 경제학의 단서를 공맹철학과 서양에서 발전한 근대경제학을 패치워크(짜깁기·접붙이기)함으로써 찾을 수 있지 않을까.
☞ 본 기사는 <머니S> 제563호(2018년 10월24~30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