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은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해다. 1919년 3월1일 <독립선언서> 낭독으로 촉발된 3·1운동은 전국으로 확산했다. 4월3일, 경기 화성(옛 수원군)에도 대규모 무력항쟁이 일어났다. 당시 우정면과 장안면 일대에서 펼쳐진 만세운동은 일본 순사를 격살하고 주재소를 불태웠다. 화성지역 투쟁은 비조직적 비폭력 기조의 다른 지역 3·1운동과는 대조를 이뤘다. 30명에서 50명, 다시 100명…. 급기야 2000여명까지 눈덩이처럼 불어난 투쟁의 대오가 화성지역을 소용돌이쳤다. 성난 대오는 일제 폭압의 상징인 면사무소와 주재소로 향했으니 그 길은 공교롭게도 31㎞에 이른다. 화성시가 3·1운동 100주년 기념 차원에서 오는 4월3일 개통 예정인 ‘화성 3·1운동만세길’을 미리 걸어봤다. <편집자주>
| 고지도에 얹힌 만세운동 이동경로와 시간. 0번 화수리 주재소터와 1번 차희식 선생 집터를 연결하면 왼쪽 하단에서 오른쪽 상단으로 횃불 모양의 경로가 완성된다. /사진=화성시 |
답사 이틀째인 11일, 만세길 완보를 했다. 답사 전 들은 대로 지나온 족적은 횃불 모양을 띠었다. 만세운동의 종점과 시작점인 화수리 주재소와 주곡리 차희식 선생의 집을 연결하니 온전한 횃불 루트가 완성된 것. 31㎞와 횃불, 만세길의 상징이다.
| GPS 맵에 얹힌 만세길. 경로가 왼쪽 하단에서 오른쪽 상단으로 횃불 모양을 이룬다. /사진=화성시 |
마을을 지날수록 지역민이 합류를 거듭한 만세운동. 자료에 따라 당시 상황을 시간순으로 되짚어봤다. 먼저 차희식 선생과 백낙렬 선생 등은 목적지로 조암장이 서는 조암리를 떠올렸을 것이다. 시장은 사람들을 많이 모아 세를 과시하는 한편 만세운동 소식을 널리 전파할 ‘광장’으로서 제격이기 때문이다.
| 쌍봉산 정상에서 바라본 우정읍과 장안면. /사진=박정웅 기자 |
점심을 훌쩍 넘긴 오후, 분기탱천한 이들이 향한 곳은 우정면사무소와 화수리 주재소였다. 앞서 장안면사무소를 파괴했으니 다음 목적지는 분명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답사 코스 또한 조암리를 떠나 사기말 김연방 선생 집터-우정면사무소터-각리-죽리-한각리-화수리 주재소다.
| 김연방 선생이 기거했다는 사기말. /사진=박정웅 기자 |
조암리에서 사기말로 향한 대오는 김연방 선생의 주도하에 1200여명으로 불어났다. 우정면사무소를 파괴했을 때는 1500여명. 이어 각리와 죽리, 한각리를 거치면서 2000여명이 됐고 일본 순사를 처단함으로써 만세운동의 마침표를 찍었다.
| 인적 드문 죽리마을. 죽리마을은 77번국도 건너 각리와 육교로 연결된다. /사진=박정웅 기자 |
주재소를 불태우고 순사를 격살한 사실은 이 운동이 매우 조직적이었음을 암시한다. 세를 불리면서 주재소와 면사무소를 파괴한 것 역시 백낙렬·차희식 선생, 수촌교인 등 만세꾼들의 계획된 전술로 볼 수 있다. 장안과 우정면 만세운동이 매우 이례적으로 전개됐다는 평가도 이 때문이다.
화성 3·1운동 만세길이 개통되면 국내 걷기여행의 새 지평을 열 전망이다. 기존 걷기여행길이 자연경관에 초점을 맞춘 데 반해 만세길은 항쟁의 역사 하나에만 집중해서다. 국내 유일의 3·1운동 테마길을 강조하는 것 또한 그렇다. 화성시는 만세길을 역사해설, 스탬프투어, 체험활동 등 교육, 문화, 관광 자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 한각리 인근의 멱우지. 태양광 패널이 빼곡하다. /사진=박정웅 기자 |
주지했듯 개통 전이어서 이정표, 안내 팸플릿, 편의시설은 전무하다. 31㎞에 이르는 만세길 전 구간을 하루 만에 완보하는 건 무리다. 코스 모두 자동차 진출입이 가능하나 코스명이 검색되지 않는 점은 주의하자. 가능하면 4월3일 공식 개통 뒤 찾는 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