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문명은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디지털 기기로 무장한 현대인들은 ‘손 안에서’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시공간의 구애 없이 대화한다. 디지털은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했지만 프로메테우스의 불과 같다. 인간은 많은 시간을 디지털 기기에 할애했고 점차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며 디지털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뇌는 본연의 기능을 잃고 있고 ‘디지털 치매’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현대인들은 스마트폰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며 급기야 디지털 문명을 독소(毒素)로 규정했다. 디지털은 선일까 악일까. <머니S>는 디지털 문명의 현황과 부작용을 살피고 극복 방안을 찾아봤다.<편집자주>


[신인류 불치병 ‘디지털 치매’] ④기기 없는 삶 ‘디지털 디톡스’

하루 동안 짧은 '디지털 디톡스'를 끝내고 처음 본 메시지는 친구의 짜증 섞인 욕설이었다. 디지털디톡스는 디지털 중독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등장한 처방법이다. 인체에 유해한 물질을 해독한다는 의미의 디톡스(detox)와 디지털을 결합한 말로 컴퓨터, 스마트폰, 인터넷 등 디지털 기기와 멀어지는 운동을 의미한다. 다음 날 친구에게 ‘상대방이 전화를 안 받으니 기분이 어떠냐’고 묻자 다시 한번 시원한 대답이 날아왔다.


지난해 6월 시장조사업체 엠브레인이 만19~59세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54.7%가 평소 디지털 기기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71.9%는 여유 시간에 스마트폰을 주로 한다고 답했다. 의존도가 높을수록 디지털중독일 가능성이 높다. 54.7%, 71.9% 양쪽 모두에 속하는 기자가 불안감을 안고 디지털디톡스에 도전했다.


/사진=심혁주 기자
/사진=심혁주 기자

◆지리한 귀향길 4시간30분
지난 6일 알람소리를 마지막으로 스마트폰을 가방에 넣었다. 주말을 맞아 고향에 내려가던 이날, 군 제대 이후 처음으로 스마트폰 없이 버스를 탔다. 하염없이 창밖만 바라봐서였을까. 평소엔 금방 닿는 것 같던 버스터미널 가는 길도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다행히 집에서 남부터미널까지는 수십번 가본 경험이 있어 스마트폰 없이도 무사히 도착은 했다. 문제는 고향 내려가는 버스였다. 서울에서 고향까지는 4시간30분이 걸린다.

평소 같았으면 스포츠 영상이나 웹툰을 봤겠지만 이날은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두시간쯤 지나니 괜한 불안함이 생겼다. ‘중요한 연락을 못 받으면 어쩌지’하는 걱정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작년에도 이런 적이 있었다.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로 하루 종일 스마트폰이 마비돼 강제 '디지털 디톡스'를 당했다. 다음 날 오전쯤 인터넷을 연결했지만 간밤의 우려가 무색하게 평온한 스마트폰을 바라보며 민망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를 생각하니 마음은 오히려 편안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시간이 지나고 고향에 도착했다. 전화기가 없어 친구 집을 직접 찾아갔다. 예고 없이 문을 두드리는 모습에 당황한 친구와 밥을 먹으러 갔다. 음식 나오기를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눴다. 식사 자리에 스마트폰이 없으니 대화가 늘었다.


고속도로 표지판. /사진=심혁주 기자
고속도로 표지판. /사진=심혁주 기자

내비게이션 없이 운전하는 모습. /사진=심혁주 기자
내비게이션 없이 운전하는 모습. /사진=심혁주 기자


◆자연의 소리가 들린다
가만히 있는 시간이 가장 힘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운전대를 잡으니 깜깜했다. 아는 길도 내비게이션을 켜고 이동하는 기자가 스마트폰 없이 운전대를 잡으니 자신이 없었다. 안내 음성과 화면에만 의존하다 처음으로 ‘초록색 표지판’을 보고 방향을 정했다.


그나마 길이 단순해 목적지에 도착은 했지만 두번이나 길을 잘못 들어 이동시간이 배로 걸렸다. 서울에서 내비게이션 없이 운전한다고 상상하니 아찔했다. 우여곡절 끝에 집에 도착해 '내비 없인 운전 말아야지' 혼자 되뇌였다.

평소 같았으면 소파에 누워 TV를 봤겠지만 이날은 책을 집었다. 간만에 겪는 고요함이다. 디지털디톡스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안정감을 느꼈다.

가공된 소리가 아닌 집 앞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길을 가다가도 무의식 중에 스마트폰을 꺼내 어플리케이션(앱)을 켰다 끄는 습관적이고 무의미한 행동 대신 생각이 많아졌다. 해야 할 일을 적는 스마트폰이 없으니 ‘기억을 해야 한다’는 신호를 보내며 뇌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밥을 먹을 때도 TV를 안 켰다. 평소 같았으면 TV소리에 묻혀 침묵을 지켰을텐데 우리집 강아지에게라도 한마디 더 했다.

◆ 그래도 세상은 돌아간다

스마트폰이 일상이 돼버린 현대인에게 ‘디지털 피로도’는 상당한 수준까지 쌓였다. 그로 인해 시력저하와 불면증, 목 디스크는 물론 디지털 중독 ‘금단 현상’에 시달릴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현대인이 디지털디톡스를 실천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단계적인 디톡스 방법을 추천한다. ▲사용시간이 많은 앱 확인하기 ▲‘방해금지모드’ 활용 ▲스마트폰 중독 방지 앱 활용 ▲퇴근 후, 주말 스마트폰 꺼두기 등이다.

체험이 끝나고 다음 날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그동안 세상은 나 없이도 잘 돌아가고 있었다. 스마트폰, 인터넷, TV 없이 하루를 살아보니 우리가 얼마나 디지털 기기에 의존하는지 알게 됐다. 스마트폰 없는 세상은 낯설었고 혼자 멈춰버린 기분이었고 여유시간에 뭘 해야 할 지 모르는 본인을 발견하고는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오랜만에 놀이터에 나가 벤치에 앉았다. 전자기기에서 벗어나자 여유시간이 생겼다. 아무런 연결수단 없이 앉아 있는 그 시간이 온전히 나의 것이라고 느껴졌다. 약간의 불편함은 있었지만 앞으로 가끔 디지털디톡스를 할 계획이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88호(2019년 4월16~22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