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묵은 ‘주세법’, 개정 어떡해-④·끝] 전문가가 따라주는 ‘개편’ 방향
기획재정부가 이달초 예정했던 주세개편안 발표를 잠정 보류했다. 제조원가를 기준으로 매겼던 ‘종가세’를 50여년이나 유지했던 만큼 산업별 이해관계와 세수 확보 등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산업·세무 전문가들은 주세개편을 어떻게 바라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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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경쟁력 확보에 초점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푸드비즈랩 교수는 산업적 특성을 고려한 주세개편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행 주세법에 따르면 주세, 교육세, 부가가치세 등으로 구성된 세금에 출고원가가 붙여져 술의 값이 매겨진다. 1968년부터 시행된 종가세 체계에서 소주는 상대적으로 원가가 저렴하다보니 꾸준하게 낮은 가격을 유지했지만 맥주 등 고급주류로 분류된 술은 가격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다. 반면 최근 크게 성장한 수입맥주는 해당업체가 임의로 정한 신고가를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기 때문에 국내맥주와 수제맥주보다 저렴한 가격에 유통된다.
|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푸드비즈랩 교수. /사진제공=문정훈 교수 |
문 교수는 용량 및 알코올 농도를 기준으로 한 ‘종량세’로 주세를 개편해 다양한 주종이 경쟁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종가세 체계에서 소주 가격만 저렴하게 유지되다보니 다른 주종들은 발전할 기회가 없었다”며 “좋은 원료와 장인 정신으로 만든 술일수록 세금을 많이 내는 구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최근에는 술의 품질을 중요시하는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수제맥주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국세청과 한국수제맥주협회에 따르면 수제맥주시장은 2015년 227억원에서 지난해 633억원으로 매년 40% 가까운 성장세를 기록했다. 그러나 수제맥주도 원료가격이 비싼 탓에 높은 세금을 부과받는 주종이다.
문 교수는 “종량세로 개편되면 같은 알코올 도수에서 동일한 세금이 부과되니 가격이나 품질 면에서 고급원료를 쓴 주류가 우대받게 될 것”이라며 “수제맥주의 경우 대량생산 체계를 갖춘 국내맥주나 신고가 기준의 수입맥주보다 비싸게 유통됐지만 종량세로 전환될 경우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수제맥주야말로 한국적 색채를 유지하면서도 글로벌시장에서 가장 큰 경쟁력이 있는 주류”라며 “주세가 개편돼 해외에 있던 수제맥주 양조장이 국내로 들어올 경우 고용 개선효과와 세계시장 진출,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기 때문에 거시적 관점의 개편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김우철 서울시립대학교 세무학과 교수. /사진제공=김우철 교수 |
◆이해관계 지양, 점진개편 필요
김우철 서울시립대학교 세무학과 교수는 주세개편의 필요성에 대해 동의하면서도 주종 간 이해관계가 엇갈려 정부가 조정하는 형태의 개정은 의미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종가세 체제를 종량세로 전환해 음주의 사회적 비용을 절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이미 주세개편에 대한 논의는 수년 전부터 시작됐고 기재부도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관련 개정을 준비했을 것”이라며 “큰 흐름은 기재부 세제실에서 준비했겠지만 실제 개편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업계의 의견을 청취하다보니 타협안을 찾기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운을 뗐다.
이어 “종량세 개편이 국민 건강증진과 음주의 사회적 비용 절감을 위해 논의중인 것인데 업계 간 이해관계를 듣다보니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며 “정부가 업계 간 이익의 조정자로 나서는 것은 주세개편 취지에 어긋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현재 주류업계에서는 주종 간 다른 이해관계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상황이다. 국내맥주는 수입맥주와의 세금 역차별 문제를 제기하며 종량세 개편을 환영하는 반면 ‘국민 술’로 굳어진 소주의 가격인상에 반대하는 여론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김 교수는 수십년간 유지해온 주세법을 단기간에 개정할 경우 업계 이해관계와 소비자 후생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만큼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종가세를 유지하는 대신 종량세 요소를 매년 10%씩 늘려 5~10년 안에 개정안으로 전환하는 장기 계획이 합리적 대안”이라며 “현 상황에서 주세법을 개편할 경우 이익과 손해가 극명하게 갈리기 때문에 쉽게 답을 찾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차등 적용? 세수확보 ‘곤란’
주세개편으로 인한 논란이 확대되자 주종별로 주세법 개정안을 차등 적용하는 방안도 거론됐다. 이에 산업·세무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세수 확보가 곤란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문 교수는 “우리나라 세수에서 술에 붙은 주세, 교육세 등의 비율이 높다”며 “만약 소주를 무작정 유예할 경우 맥주를 통해 거두는 주세나 세금으로는 세수 충당이 어렵다. 주류산업계에서 절충안이 나오고 있지만 국가 재정과 연결된 사안인 만큼 쉽지 않은 문제”라고 조언했다.
김 교수 역시 세수중립적 개편에 방점을 찍고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종량세 개편 원칙하에 세수중립적 개편을 더한다면 상승요인에 반해 다른 한쪽이 내려가는 식으로 상쇄돼야 한다”며 “소주 가격 인상에 따른 부정적 여론을 감안해 맥주에 국한한 개편만 진행된다면 세수 부족분을 채우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맥주에 종량세를 적용할 경우 세금이 낮아지기 때문에 과실주 등 기타 주종에서 높은 세금을 받아야 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맥주의 세금만 낮추는 주세개편이 되는 것이지 우리가 원하는 균형적 세제개편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주종을 차등 적용하는 방안은 바람직하지 못한 방법”이라고 일갈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94호(2019년 5월28~6월3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