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철강 3위 기업이었던 동부제철을 적자기업으로 몰아붙인 1조2000억원의 철강 제조설비 ‘당진 전기로’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올 9월 동부제철을 인수한 곽재선 KG그룹 회장은 경영정상화를 위한 첫 단추로 ‘전기로 매각’을 선택했다. 철강업계는 곽 회장이 전기로 매각에 심혈을 기울이는 배경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KG동부제철 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 7월 전기로 매각 절차를 개시한 가운데 예비 입찰제안서를 제출한 4개 업체가 10월 말까지 현장실사를 진행한다”며 전기로 매각이 진행 중임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물밑협상으로 진행하는 탓에 관련 절차에 대해 언급하는 걸 꺼려했던 KG동부제철이다.
KG동부제철 측은 “해외 4개 업체를 적격 매수자로 선정해 11월 초 최종 입찰제안서를 제출 받은 뒤 11월 중순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계획”이라면서 구체적인 일정까지 밝혔다.
| 곽재선 KG동부제철 회장. /사진=뉴스1 DB |
◆김준기 전 회장 야심작 ‘전기로’
KG동부제철 전기로는 김준기 전 동부그룹 회장의 야심작이다. 김 전 회장은 독자적인 쇳물 공급을 확보해 경쟁력을 향상시키겠다는 목적으로 1조2000억원을 투자해 2009년부터 당진공장에 연간생산능력 300만톤 규모의 전기로를 도입했다. 전기로는 고철(철스크랩)을 전기열로 녹여 쇳물을 생산하는 설비다. 석탄을 원료로 열을 가해 조강을 생산하는 고로와 다르다.
KG동부제철은 전기로를 도입해 포스코와 현대제철에 맞먹는 철강기업으로 거듭날 것을 기대했다. 전기로 준공식 당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 전 회장은 “그동안 숙원이었던 제철사업을 이루게 돼 크게 기쁘다”는 소감을 밝혔다. 그는 “어릴 때 자랐던 삼척에서 일본인이 세운 철강공장과 비료공장을 보며 앞으로 사업을 하게 되면 기간산업을 해보겠다는 꿈을 가졌다”며 “결국 40년 만에 어린 시절 꿈을 모두 이뤘다”고 말했다.
그는 “2009년 7월 250만톤 생산체제가 구축되면 곧바로 증설에 들어가 2010년 중반에는 350만톤 생산체제를 완성하게 될 것”이라며 “증설하는 100만톤의 투자비는 1000억원 정도로 예상하고 있는데 이정도 금액은 자체조달이 가능해 자금조달에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며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김 전 회장은 고로가 아닌 전기로방식을 선택한 것과 관련해 “2000년대 중반 준공한 미국의 철강공장은 모두 전기로다. 이들은 설비검증을 거쳤고 전기로 제철이 기술적으로나 가격적으로 경쟁력을 갖췄다고 판단했다”며 “철스크랩 자급도도 크게 향상됐고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자동차강판을 생산할 정도로 전기로 제철기술의 도약도 이뤄졌기 때문”이라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수포로 돌아간 김 전 회장의 꿈
김 전 회장의 이런 계획과 달리 투자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KG동부제철 전기로에서 생산하는 열연강판 가격이 예상보다 빠르게 하락한 것이다. 제품 판매가격이 원료가격보다 떨어지면서 KG동부제철의 수익성도 악화됐다. KG동부제철은 전기로를 도입한 지 5년 만인 2014년 가동 중단했다. 2014년 7월 김 전 회장은 산업·농협·수출입·신한·KEB하나은행 등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맺으며 KG동부제철 경영권을 포기했다. 2015년 10월 KG동부제철은 기업회생절차(워크아웃)에 들어갔다.
2015년부터 2년 넘게 채권단 관리를 받아온 KG동부제철은 인력 감축, 부실사업 정리 등 혹독한 구조조정으로 경영 정상화 작업에 들어갔다. 그 사이 전기로 매각 절차도 진행됐다. 2016년 3월 KG동부제철 채권단은 전기로 매각을 결정하고 이란 및 태국 철강업체에 매각을 추진했다. 2017년 8월 이란 중견 철강업체인 카베스틸은 KG동부제철 전기로를 인수하기로 하고 KG동부제철 채권단과 막바지 협상을 벌였다.
카베스틸은 KG동부제철 전기로 설비를 해체한 뒤 대형 선박에 실어 현지로 가져가기로 했다. 카베스틸은 전기로 열연의 원재료인 직접환원철(DRI)을 대량 생산하는 업체다. 이란 현지 전기료가 한국보다 낮다는 점이 카베스틸의 전기로 인수결정에 한몫했다.
이란 전기료는 한국보다 40% 이상 저렴하다. 카베스틸은 전기로 설치에 따른 사업성이 높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KG동부제철은 전기로 매각가격으로 1200억원을 제시했고 카베스틸은 600억원을 제시했다. 카베스틸이 막바지 협상에서 400억원을 낮추면서 KG동부제철과 카베스틸의 협상은 결렬됐다.
◆전기로 매각은 이제 시작
이번 매각을 계기로 KG동부제철 경영정상화가 앞당겨질지 이목이 집중된다. 곽재선 KG그룹 회장은 KG동부제철 흑자전환에 주력하고 있다. 곽 회장은 부실자산 정리로 이를 구현할 방침이다. KG동부제철의 재무건전성은 크게 낙후돼 있다. 2018년 KG동부제철 연결기준 영업손실은 656억원으로 전년대비 457% 악화돼 2년 연속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당기순손실은 1183억원이었다. 2019년 6월 말에는 자본총액이 마이너스 188억원을 기록해 자본잠식 기업이 됐다.
2019년 8월 KG그룹은 동부제철 인수를 위해 사모투자펀드 캑터스PE와 컨소시엄을 맺어 3600억원을 납입했다. 적지 않은 돈을 쓴 상황이지만 차입금과 투자금 등 들어갈 비용은 아직 적지 않게 남았다. 경영정상화 단계에 이르기까지 체력이 관건인 셈이다.
이번 전기로 매각과 관련해 KG동부제철 관계자는 “KG그룹의 인수가 확정된 이후 동부제철의 정상화 및 사업재편 등의 논의 과정에서 추진된 것이어서 의미가 있다”며 “2017년 이란 카베스틸로의 인수가 성사 마지막 단계에서 불발되는 등 수차례의 매각이 번번이 실패했지만 매각을 추진하면서 가능성을 타진했던 회사 및 관계자들과의 물밑 접촉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매각에 대해서 자신하는 모습이다.
관계사인 동부인천스틸 매각도 관심사다. 2019년 9월 KG동부제철은 동부인천스틸 인천공장 부지 용도변경을 인천시에 신청했다. 인천공장은 인천 서구 가좌동 571-3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부지면적은 약 30만평에 이른다. 2019년 5월 말 기준 공시지가는 118만5000원으로 토지가치만 3555억원이다. 공장부지가 상업용도 등으로 최종 변경된 이후에는 2배 규모로 뛸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KG동부제철 관계자는 “인천공장 컬러강판 및 도금 설비를 매각해 자금을 확보할 예정”이라며 “매각을 통해 확보한 자금은 정상화에 쓰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KG그룹은 KG동부제철을 국내 가전 및 건설용 철강제품 2위 기업으로 올릴 계획이다. KG그룹은 자산매각 등으로 확보한 자금을 설비에도 투자해 컬러강판(가전 및 건설 철강제품) 생산능력을 현재 50만톤에서 60만톤으로 늘린다. 경쟁업체인 동국제강의 컬러강판 연간생산능력은 75만톤이다. 당진공장에는 연구개발 전문연구소도 건설해 2020년까지 연구 인력을 현재보다 2배 이상 늘릴 방침이다. KG동부제철 관계자는 “자산매각은 예정대로 진행하겠지만 시장환경을 감안했을 때 시간은 다소 소요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17호(2019년 11월5~1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