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 시험 100일을 앞두고 학원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학생들. /머니투데이 김창현 기자
대학수학능력 시험 100일을 앞두고 학원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학생들. /머니투데이 김창현 기자

한국에 때아닌 정시 확대 회오리가 일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교육개혁관계장관회의’를 소집한 자리에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을 줄이고 정시를 확대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유은혜 교육부장관은 이를 받아 “학종과 논술전형 비율이 높은 서울 소재 대학에 대해 정시비율을 상향 조정하겠다. 얼마나 높일지 등 구체적인 방안은 11월 중에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지난달 25일 성인 501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정시 확대를 찬성하는 비율이 63.3%, 반대하는 응답은 22.3%”라고 발표했다. 또 하나의 ‘여론몰이식 정책추진’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낳는다.

◆교육 평등·공정·정의 실현이 정시확대?


정부의 ‘정시확대방침’에 대해 교육 현장에서는 반발의 목소리가 크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정시전형 확대가 학교 교육과정 파행을 불러올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도 “정시 확대는 교육현장을 10년 전으로 퇴행하게 할 것”이라고 반대했다.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도 “정시비중을 늘린다고 교육 불평등이 해소된다고 보지 않는다”고 했다. 정시확대에 부분적으로 공감한다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도 “특정 대학에 정시 30% 이상을 강제하는 것이라면 정치적 요구와 예단에 떠밀려 11월 중에 섣불리 결정하고 발표할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교육현장의 반발과 함께 ‘정시확대정책’의 ‘유체이탈식 화법’도 지적된다. 문제의 핵심은 사회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를 훨씬 뛰어넘어 법을 어기면서까지 학종에서 유리하게 ‘스펙’을 조작한 것이다. 따라서 평등하지 못하고 공정하지 않으며 정의롭지 못한 일을 한 당사자와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방치한 관련자들을 처벌하고 그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게 대책의 중심이 돼야 한다. 그런데도 마치 정시를 줄이고 학종을 확대한 것이 문제인 양 정시를 희생양으로 삼는 것은 ‘잘못된 진단’과 ‘정당하지 않은 처방’이라는 이중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교육부와 청와대 교육수석실에서 거론하고 있는 ‘정시비율 30% 이상’이 적용될 학교가 서울대(현 21.5%), 고려대(서울, 17.4%), 이화여대(25.8%), 중앙대(서울, 22.4%) 등이다. 서울대, 고려대, 이화여대가 이번 조국 전 장관 자녀들의 입시와 관련됐다는 사실은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뭔가 오묘하다.


◆“언론자유는 보호받을 자격 있는 언론에만”

박원순 서울시장은 10월25일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출연해 “언론의 자유는 보호를 받을 자격이 있는 언론에만 해당된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에 대한 언론보도 행태와 관련 “언론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스스로 판단해서 기사를 써야 한다. 누구나 자유롭게 운동장에서 돌게 하고 대신 게임의 규칙을 위반하면 핀셋으로 잡아서 운동장 밖으로 던져 버리는 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미국에는 징벌적 배상제도가 있다. 왜곡해서 쓰면 완전히 패가망신하는 그런 제도들이 도입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박 시장의 발언을 보고 제퍼슨 대통령과 더글러스 판사의 말을 떠올렸다. 미국 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3, 4대 대통령을 지낸 토머스 제퍼슨(1743~1826)은 ‘자유로운 언론의 필요성에 대해’(1787)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우리 정부의 기초는 사람들의 의견에 있기 때문에 첫번째 목표는 그 의견을 올바르게 유지하는 일이어야 한다. 누가 나에게 신문이 없는 정부와 정부가 없는 신문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정부가 없는 신문을 택할 것이다.”

미국 대법원의 윌리엄 더글러스 판사는 1971년 뉴욕타임스가 국가기밀을 유출했다며 미국 정부가 제소한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판결했다. “신문사가 폭로한 사실이 심각한 영향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가능성이 언론에 대한 사전 제재를 가할 근거는 될 수 없습니다. (중략) 수정헌법 제1조의 주요 목적은 널리 퍼져 있는 당혹스러운 정보에 대한 정부의 억압 관행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중략) 공적인 사안에 대해 열려 있는 논쟁과 토론은 우리 국가의 건강에 아주 중요합니다.”

제퍼슨과 더글러스의 말에 비춰 볼 때 박 시장 발언은 ‘위험하다’고 지적할 수 있다. 피의사실의 공표가 금지돼 있고 정부가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가급적 많이 알리려고 노력하는 언론에 재갈을 물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한국 헌법은 21조에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서울시장이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언론의 자유에 대해 ‘언론의 자격’을 얘기하는 것은 헌법을 경시하는 태도다.

◆유체이탈화법과 겸청편청(謙聽偏聽)

문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하면서 공정(27번), 혁신(20번), 포용(14번), 평화(11번)를 강조했다. 하지만 공정을 심하게 훼손시킨 조국 전 장관 문제에 대해선 사과는 물론 이렇게 할 언급을 하지 않았다. 과연 누구를 위한 공정이고 누구에게 주는 포용이며 누구와 함께하는 혁신과 평화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대목이다.

문 대통령은 시정연설을 하기 직전 국회의장과 여야 대표들과 환담하는 자리에서 보는 사람들이 민망해할 장면을 연출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조국 장관을 임명한 그 일로 인해서 국민의 마음이 굉장히 분노하고, 그럴까 화가 많이 나셨던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대통령께서도 직접 국민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시는 그런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문 대통령은 이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은 채 옆에 앉은 김명수 대법원장을 향해 “대법원에서도 법원 개혁하는 법들이 좀 계류가 돼 있죠?”라며 화제를 돌렸다.

내년 예산안과 정부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여러 법안들의 국회 통과를 위해 야당의 협력이 필요한 때, 그것도 그런 협조를 구하기 위해 국회에 와서 제1야당 대표의 발언을 무시하는 것은 개인적 도덕은 물론 한 나라를 이끌어나가는 대통령으로서 보여줄 태도라고 하기는 힘들다.

문 대통령은 탄핵으로 물러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쏟아졌던 ‘유체이탈 화법’이란 비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남의 말을 겸허히 들어야(謙聽) 그 사람의 협력을 끌어낼 수 있다. 유체이탈 화법으로 화(조국 전 장관의 사퇴)를 다른 사람에게 옮기는 식으로 희생양(정시확대)을 찾고 듣고 싶은 말만 들으면(偏聽) 하고자 하는 정책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고 전혀 뜻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것은 역사의 법칙이며 그 어느 누구도 예외인 적은 없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17호(2019년 11월5~1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