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공이 촉을 치러 삼협에 이르렀을 때, 부하 중에 한 명이 새끼 원숭이를 잡았는데 그 어미가 강안을 따라 울며 따라오더니 백여 리를 가는 동안 도망가지 않고 오히려 배에 뛰어올라 죽어버렸다. 그 배를 갈라보니 장이 모두 마디마디 끊어져 있었다.(‘桓公入蜀, 至三峽中, 部伍中有得猿子者. 其母緣岸哀號, 行百餘里不去遂跳上船, 至便卽絕, 破視其腹中, 腸皆寸寸斷)" 세설신어(世說新語)에 나오는 이야기다.
자식 잃은 슬픔이 얼마나 슬프고 비통했으면 애간장이 다 녹아 마디마디가 끊어져 버렸을까. 한갓 동물도 이러할진대 어찌 인간의 탈을 쓰고 이리도 잔악할 수 있단 말인가. 16개월된 입양아 정인이를 학대하여 죽인 양부모를 두고 하는 말이다.
아이의 뼈가 다 골절이었고 찢어진 장기에서 발생한 출혈로 복부 전체가 피로 가득 차 있었다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프다. 해맑게 웃고 있는 아이의 옛 사진을 보면 가슴이 에고 피가 거꾸로 솟을 지경이다. 어린 생명을 보호할 기회가 수차례나 있었다는데 구원의 손길마저 철저히 봉쇄당한 채 말도 못하는 어린 천사는 끝내 극한의 고통 속에서 숨져갔다.
사랑만 받아도 부족할 이 어린 천사를 잔인하게 학대하고 죽인 사람들, 인간이기를 포기한 반인륜적 살인범인 입양부모에겐 학대치사가 아니라 살인, 그것도 비속살인의 죄를 물어 단죄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러면 끝인가. 아니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이를 방기한 국가와 사회, 공동체에게도 준엄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정인이의 학대를 은폐하는데 사용된 허위 진단서를 작성한 의사와 병원, 세 차례나 학대 혐의를 신고 받고도 이를 미연에 막지 못한 경찰 그리고 이를 방기한 입양단체, 마땅히 아이를 보호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 행정당국, 민생은 팽개치고 정쟁에만 몰두하는 정치권, 타인에겐 무관심한 이기적 사회 이 모두가 정인이를 죽게 만든 공범이고 방조범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정인이의 죽음이 3개월만에 방송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고 국민적 공분이 일어나자 정치권에서도 이제서야 너도나도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 올리듯 사과를 하니 대책을 마련하니 부산한 모습이다. 국회는 또 여야 할 것 없이 ‘정인이법’이란 걸 앞다퉈 쏟아내고 있다. 정치권이 충격적인 사건에 안타까움을 표하며 희생자의 이름을 딴 ‘네이밍 법안’을 잇따라 발의한 것은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었다.
이미 국회는 나영이법, 민식이법, 태호·유찬이법, 구하라법 등등 셀 수 없을만큼 국민적 공분을 산 사건의 재발방지를 위한 법들을 만들어왔다. 하지만 늘 누군가 억울한 죽음이 있고서야 요란하게 뒷북만 친다. 더욱이 사건의 원인에 대한 신중한 분석과 제도 보완에 대한 충분한 고민 없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 “처벌 강화”만을 부르짖다 시간이 흐르면 유명무실해지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행태만 반복해 왔다.
정인이의 억울한 희생이 헛되지 않으려면 법안이 여론이 들끓을 때만 ‘홍보용’으로 쓰이다 여론이 잦아들면 뒤로 밀리거나 유명무실해지는 보여주기식 입법으로 이루어져서는 안된다. 언제까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만 반복할텐가. 전태일 열사처럼 정인이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으려면 차제에 아동학대를 완전히 근절할 수 있도록 완벽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기왕에 발의하는 아동학대치사의 재발을 막는 ‘정인이법’도 단순히 처벌 강화에만 집중하기보단 다시는 이러한 비극적인 아동학대사건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예산부터 인력까지 구조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 마련에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한 아이를 키우는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한 아이를 학대하는 데에도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한 아이를 키워내는데 공동체의 노력이 있듯이 한 아이를 학대하는데 역시 공동체의 무관심이 있음을 명심하자.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그 사회를 말해준다. 더 이상 제 2의 정인이, 학대 받는 아동이 단 한 명도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것이 말도 못하고 학대로 숨져간 어린 천사 정인이가 우리에게 던진 무언의 메시지일 것이다.
#정인아미안해
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전 동의대 철학과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