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태의 읽는 인간 ⑬]배관공이 된 경제학자-래포 시장과 오만의 비용
지난 연말 IRP 포트폴리오를 바꾸며 은행 종목 ETF를 조금 추가했다. 요즘처럼 살벌한 투자판이라면 차라리 '은행 같은 악당'들이 낫겠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몇 년 전부터 생각하던 일이었는데, 불장에 데이고 난 뒤에야 겨우 실행에 옮겼다.물론 나는 또렷하게 기억해 냈다. 10년간 불입했던 퇴직연금이 DB형에 묶여 고작 세전 연 1% 안팎의 수익을 냈던 사실을.그 정도면 은행은 내게 한 번쯤은 물었어야 했다."이대로 괜찮으시겠습니까."물론 묻지 않았다. 은행은 친절했지만 친절의 방향은 언제나 은행 쪽이었다. 창구 직원은 웃었고, 앱은 반짝였고, 상품 설명서는 길었다. 그러나 정작 내 노후가 1% 안팎의 수익률로 천천히 마르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크게 말해주지 않았다.전문가 추천대로 여러 펀드를 섞었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말도 들었다. 그래서 바구니를 여러 개 샀다. 문제는 계란이 아니라 바구니값이었다. 이번엔 아예 마이너스였다. 더 이상 '눈탱이'를 맞아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제대로 공부해 보기로 했다.그런데 경제학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이상한 일이 생겼다. 세상이 더 잘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이 더 또렷해졌다. 경제학은 나를 똑똑하게 만들기보다,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더 정교하게 알려주었다. 나는 경제학을 배운 것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배관의 목록을 조금 늘렸을 뿐인지도 모른다.최근 미국 금융시장에서 래포, 곧 환매조건부채권 시장이 다시 조용히 주목받고 있다. 터졌기 때문이 아니다. 터질 때마다 가장 먼저 의심받는 배관이기 때문이다.래포 시장은 금융의 실핏줄이자 지하 배관이다. 은행과 증권사, 헤지펀드가 국채를 담보로 맡기고 짧은 기간 돈을 빌렸다가 다시 갚는 시장이다. 말하자면 거대한 전당포다. 맡기는 물건이 금반지가 아니라 미국 국채이고, 돈을 빌리는 사람이 동네 상인이 아니라 세계 금융기관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주식시장의 화려한 전광판, 인공지능 기업의 시가총액, 중앙은행 총재의 한마디가 금융의 거실이라면, 래포 시장은 그 아래 묻힌 배관이다. 막히는 순간 가장 높은 곳부터 흔들린다.문제는 이 조용한 배관 속에서 레버리지가 자라난다는 점이다. 헤지펀드들은 국채를 담보로 자금을 빌려 현물을 사고, 선물을 팔아 그 사이의 작은 가격 차이로 수익을 만든다. 베이시스 트레이드다. 최근에는 스와프 스프레드 거래 같은 다른 상대가치 거래도 같은 압력을 보탠다. 이름은 달라도 구조는 같다. 작은 차이를 크게 빌려 먹는 일이다.평온할 때라면 전략이라 불러도 될 거다. 시장의 작은 틈을 찾아내고, 가격 차이를 줄이며, 유동성을 공급하는 일처럼 보인다. 금융은 늘 자신에게 좋은 이름을 붙이는 데 능숙하다.그러나 유동성이 마르는 순간 전략이 아니라 의존이 된다. 자기 돈으로 들고 있는 국채와 빌린 돈으로 들고 있는 국채는 같은 국채가 아니다. 전자는 자산이고, 후자는 약속이다. 약속은 때로 자산보다 더 빨리 흔들린다.배관은 평소에는 물을 흘려보낸다. 위기 때는 공포를 흘려보낸다. 1998년의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 LTCM은 역사상 가장 똑똑한 바보들의 모임처럼 기억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과 수학 천재들이 모인 그 펀드는 절대 지지 않는 수식을 가졌다고 믿었다. 파산 확률은 우주의 나이 동안 단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시장은 우주의 나이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하자 담보는 담보를 불렀고, 매도는 매도를 불렀고, 공포는 더 큰 공포를 불렀다.그들이 놓친 것은 수학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가격 차이가 언젠가 정상으로 돌아올 수는 있었다. 그러나 자신들이 그 순간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지는 계산하지 못했다. 투자에서 맞는다는 것과 버틴다는 것은 다르다.시장은 묻는다. 당신 말이 맞을 수 있다. 그런데 그때까지 버틸 수 있는가.수식은 진화했지만 오만은 오래 산다.톰 울프의 『허영의 불꽃』에는 스스로를 우주의 지배자라 불렀던 채권 트레이더가 등장한다. 어느 날 밤 작은 길 하나를 잘못 든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울프는 그것을 허영이라고 불렀다. 나는 그것을 배관이라고 부른다.LTCM이 무너지던 해, 나는 배관을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았다. 금융시장의 지하실은커녕 내 퇴직연금의 수도계량기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것이 눈탱이의 본질이다. 사기를 당한 것이 아니다.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몰라도 괜찮다고 믿었던 것이다.모르는 것과 모른 채 맡기는 것은 다르다. 모르는 것과 모른다는 사실을 잊는 것은 더 다르다.우리는 모두 자기 삶의 거실에는 관심이 많다. 그러나 그 삶을 실제로 버티게 하는 배관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현금흐름, 부채, 건강, 관계, 시간. 그리고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능력. 이런 것들은 빛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늦게 본다. 늦게 본다는 것은 대개 비싸게 본다는 뜻이다.공부를 조금 했지만 나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것을 보지 못한다. 그래도 달라진 게 있다면,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는 점이다.진짜 배관공은 물이 멈춘 뒤에야 드러난다. 그리고 그때는 이미 허영의 불꽃이 한 번 꺼진 다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