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청와대의 공식 브리핑에서 나온 발언이다. 당시 한국을 방문한 벨기에 국왕과의 만찬에 허창수 전경련 회장이 초청되면서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지속된 전경련 배제 기조가 변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자 단칼에 선을 그은 것이다.
전경련에 대한 현 정부의 냉랭한 시선은 지금까지 크게 변함이 없다. 최근 들어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재계와 소통을 확대하고 나섰지만 전경련은 여전히 외면받고 있다. 한때 재계 단체의 ‘맏형’으로 인정받던 전경련이 어쩌다 이런 상황을 맞았을까.
뼈아픈 ‘국정농단’ 연루… ‘적폐’ 주홍글씨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5월 초 취임 직후부터 재계와의 소통을 확대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민간 활력 제고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기업과 적극적으로 소통을 확대하라고 주문한 데 따른 행보다.문 장관은 지난 12일 대한상공회의소를 방문해 최태원 회장과 회동한 것을 시작으로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구자열 한국무역협회 회장을 연이어 만나 경제현안을 논의하고 기업의 애로사항을 들었다. 6월2일에는 한국중견기업연합회도 방문한다.
전경련은 문 장관의 소통 대상에서 빠졌다. 전경련 관계자는 “현재로선 (문 장관 방문 관련) 특별한 일정 조율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앞서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도 지난 4월 재계단체와 연속 회동을 가지면서 전경련만 만나지 않았다.
정부의 잇단 ‘전경련 패싱’은 ‘국정농단’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재계 관계자는 “현 정권은 국정농단 사태에 분노한 촛불 민심으로 탄생한 정부”라며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된 전경련을 외면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전경련은 2016년 불거진 국정농단 사태에서 K스포츠와 미르재단을 위한 기업 후원금 모금을 주도한 사실이 드러나며 정경유착의 고리로 낙인찍혔다. 이후 위상이 급속도로 추락했고 삼성·현대차·SK·LG 등 4대 그룹이 잇따라 전경련을 탈퇴하면서 감원·임금 삭감·복지 축소 등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겪어야 했다.
전경련의 쇄신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7년 전경련은 사회에 도움이 되는 단체가 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민간경제외교 역할에만 집중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정경유착 이미지를 벗기 위해 부당한 요청에 따른 협찬이나 모금활동에도 일절 관여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내놨다.
쇄신 노력에도 홀대 여전… 다음 대선이 분수령
하지만 현 정부는 전경련에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았다. 대통령 해외순방을 비롯한 공식행사에서도 전경련은 줄줄이 배제돼 ‘전경련 패싱’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코로나19 이전에도 고용불안과 일본의 수출규제 등 위기상황이 닥쳐 정부가 경제계와 소통을 확대할 때도 전경련에는 거리를 뒀다. 대신 대한상의를 정부의 공식 경제정책 파트너로 인정하면서 재계 ‘맏형’으로 치켜세웠다. 정권이 끝날 때까지는 이 같은 기조에 변함이 없을 것이란 우려가 커진다.전경련 입지 축소는 다른 경제단체와의 관계에서도 감지된다. 1970년 전경련에서 떨어져 나와 설립된 경총이 올 들어 전경련을 통합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동생 단체’로 인식됐던 경총이 통합을 주장하고 나선 것은 전경련의 위상이 크게 위축됐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기업들은 안타깝다는 분위기다. 익명을 요청한 한 기업 관계자는 “전경련이 1970~80년대 경제 고도성장기에 맏형 노릇을 하면서 국가 발전에 기여해 온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여전히 주요 경제현안에 재계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며 “정부가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재계와 소통을 약속한 만큼 전경련에 다시 한번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기업 관계자 역시 “전경련은 미국과 일본 등에 촘촘한 해외 네트워크를 보유한 단체”라며 “미·중 무역갈등과 한·일 관계 경색 등으로 대내·외 경영 환경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전경련 네트워크를 활용한다면 민간 교류 활성화와 경제 협력 확대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재계에서는 내년 대선이 전경련 입지 변화에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새로운 정부와 관계 형성을 통해 분위기 반전을 모색할 수 있어서다.
이를 위해 전경련은 올해 쇄신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허 회장은 지난 2월 연임을 결정한 자리에서 “새로운 경제성장의 신화를 쓰는 데 전력을 다하고 전경련의 변화와 혁신을 적극 추진하겠다”며 “재창립의 마음으로 모든 것을 쇄신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