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23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제389회 국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가 열리고 있다. / 사진=뉴스1 이동해 기자
정부가 대기업을 상대로 상생을 압박하면서 재계의 불만이 커진다. 중소기업을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대기업의 책임과 처벌 수위를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이 잇따라 국회의 문턱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일감을 외부에 적극적으로 개방하라는 정부의 상생정책도 논란이다. 표면적으로는 자율적인 일감 개방을 유도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강제나 다름없어 사실상 상생을 규제화하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중기 기술유용 입증 책임, 대기업에 있다?

국회는 지난 7월23일 본회의를 열고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기술 유용 금지 행위를 구체화하고 기술자료를 제공할 때 비밀유지 계약을 서면으로 체결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구체적으로 위탁기업(대기업)이 수탁기업(중소기업)의 기술자료를 취득해 부당하게 사용하거나 제3자에 제공하는 경우 피해금액의 3배 이내에서 손해를 배상하도록 징벌적 손해배상책임을 도입했다. 기술유용 의심을 받는 위탁대기업이 이를 부인할 경우 위탁대기업이 직접 기술유용을 하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조항도 신설했다. 그동안 수탁기업에 주어졌던 기술유용 입증 책임을 대기업에 전환한 것이다.

이외에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법원이 당사자의 신청에 따라 자료제출을 요구할 경우 이에 불응하면 신청자의 주장을 진실로 인정할 수 있도록 했으며 자료를 제출하지 않거나 거짓자료를 제출할 경우 과태료를 1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상향했다.


하도급법 개정안도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기술자료로 인정되는 요건을 완화하고 기술자료를 제공할 경우 비밀유지 협약을 의무적으로 체결하는 내용을 담았다.

대기업들은 반발하고 있다. 중소기업 보호를 명목으로 대기업에 대한 규제와 처벌만 강화하면 오히려 위·수탁 기업 간 분쟁이 늘어나 경영의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 때문에 대기업 단체들은 개정안 입법이 논의될 당시부터 꾸준히 반대 의견을 표출해왔다. 박재근 대한상의 산업조사본부장은 지난 3월 상생협력법 개정안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를 통과하자 “상생협력법 개정안에 포함된 입증책임 전환,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은 위탁기업의 부담을 키워 오히려 대·중소기업 간 협력을 저해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유환익 전경련 기업정책실장도 “손해배상 입증 책임이 원고에 있는 기존 법체계와 배치될 뿐 아니라 위·수탁 기업 분쟁이 늘어날 우려가 크다”고 밝혔다.


전문가도 개정안에 의문를 제기한 바 있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전경련 주관 토론에서 “기술유용 입증책임을 위탁대기업에 일방적으로 전환하는 것은 입증책임의 일반 법리에 맞지 않다”며 “특히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호협력이 목적인 상생법에서 입증책임을 전환하는 것은 헌법상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된다”고 꼬집었다.

‘자율적’ 일감개방, 실상은 강제 논란

정부의 일감개방 요구도 대기업들의 부담감을 높이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올들어 대기업 내 급식 업종에 이어 SI(정보시스템 통합)사업, IT 서비스 등에 잇따라 일감개방을 추진하고 있다. 일감을 외부 업체에 맡기도록 유도해 내부거래 비중을 줄이고 공정거래 질서를 확립하겠다는 의도다. 대기업의 일감을 나눔으로써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생태계도 강화한다는 복안이다.
정부는 이 같은 일감개방에 대기업의 자율적 참여를 원칙으로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육성권 공정위 기업집단국장은 지난달 초 일감개방과 관련한 브리핑 자리에서 “자율준수기준을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도, 지키지 않는다고 불이익을 받지는 것도 아니다”며 강제성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기업들의 반응은 다르다. 앞서 지난 4월 정부가 대기업의 구내식당 일감개방을 발표한 직후 급식 업체 삼성웰스토리에 일감을 몰아준 삼성그룹에 2300억원대 과징금을 부과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공정위가 삼성 급식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 것은 3년 전이지만 삼성이 지난 5월 사내급식 전면 개방과 중소급식업체 지원 확대를 약속했음에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채 역대 최대 규모의 과징금 부과를 강행한 것에 대한 재계의 반발이 높다. 특히 공정위가 지난 5월 SK그룹 계열사의 사내 급식과 관련한 현장조사를 실시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공정위의 일감 개방 요구가 사실상 강제적인 게 아니냐는 불만이 커진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관계자는 “표면적으로는 자율적인 참여를 강조하고 이를 따르지 않아도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말하지만 과징금과 조사 소식이 전해지는 상황에서 과연 부담감을 느끼지 않을 기업이 어디 있겠냐”며 “일감개방에 참여하지 않다가 미운털이 박히진 않을까 울며 겨자 먹기로 참여하는 기업들도 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다른 관계자도 “정부가 일감개방의 주요 목적 중 하나로 상생 생태계 강화를 내세우는 상황에서 개방에 참여하지 않으면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외면하는 부도덕한 기업으로 낙인찍힐 것”이라며 “일감 개방 요구를 받는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부담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