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이나 엘리베이터를 지나다 보면 종종 금연구역 스티커를 보게 된다. 얼핏 봐서는 다 같은 모양이지만 자세히 보면 부착된 각도가 살짝씩 다르다.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이곳은 금연구역입니다’란 글자를 눕힌 방식(사진1)이고 다른 하나는 글자를 45도 각도로 비스듬히 세운 방식(사진2)이다.
독자가 보기엔 어느 금연스티커가 제대로 부착된 것 같은가? 대부분의 금연스티커가 ‘사진1’처럼 붙어 있긴 하지만 제대로 부착된 것은 ‘사진2’다. 어떤 각도로 붙이든 금연구역임을 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그 원인을 따져보면 그리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디자이너와 사용자 : 시각중심사고와 문자중심사고
디자인에는 디자인만의 문법이 있다. ‘사진3’은 일반적으로 ‘~하지 마라’는 의미의 금지 기호이고 ‘사진4’는 앞의 금지 기호에 연기 나는 담배 그림을 합쳐 ‘담배를 피지 마시오’라는 메시지를 만든 금연 기호다. 이는 모던디자인, 특히 시각디자인에서 서로 다른 이미지(상징 기호)를 더해 ‘~은 ~이다’ ‘~하지 마라’ 등의 서술적 메시지를 만들 때 쓰는 기초적인 방법이다.
디자이너는 금연 기호를 바탕으로 금연구역 스티커를 제작했다. ‘No Smoking!’ ‘흡연 시 1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보건복지부’ ‘금연상담전화 1544-9030’ ‘전국보건소 금연클리닉 운영’ 등의 문구는 모두 금연 기호를 기준으로 정렬되어 있다. 디자이너는 금연 기호를 바탕으로 금연스티커를 제작했기에 당연히 자신의 금연스티커가 ‘사진2’처럼 부착될 것이라 예상했을 것이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면 대부분의 금연스티커가 ‘사진1’처럼 부착되어 있다. 왜 그럴까? 왜 대부분의 사람들이 디자이너의 의도와 다르게 스티커를 부착한 것일까?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이 금지 기호를 알아보지 못했을 가능성과 이로 인해 자신이 알아 볼 수 있는 ‘이곳은 금연구역입니다’란 문구를 기준으로 글자를 편히 읽을 수 있게 45도 각도로 눕혀서 부착했을 가능성이다. 특히 스티커의 외형마저 원형이다보니 더더욱 자신이 보기 편한 각도로 부착한 것이다.
문제의 발단은 디자이너에게 있다. 금지 기호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빨간 원 안의 사선인데, 하필 이 부분에 ‘이곳은 금연구역입니다’라는 문구를 넣으니 금지 기호가 금지 기호답지 않게 되었고 대신 여기 들어간 문구가 금지기호보다 눈에 띠게 된 것이다. 게다가 바깥 형태를 원형으로 만들어 금연스티커를 부착하는 사람이 마음대로 각도를 틀 수 있게 만든 것은 분명 디자이너의 실수다. 만약 ‘사진5’처럼 금연구역 스티커의 외형만이라도 사각형으로 만들었다면 이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보건복지부의 금연구역 스티커가 기능적 측면에서 혼란을 주긴 하지만 조형적 측면에서 볼 때는 그리 나쁜 디자인이 아니다. 금연 기호의 색과 크기는 적당했고 문구들은 중요도에 따라 적절한 위치에 적당한 크기로 배치되었다. 부착 각도에 있어 사용자를 혼란스럽게 만든 것은 분명 문제지만 이를 디자이너만의 문제로 치부할 수도 없다. 만약 ‘이곳은 금연구역입니다’라는 문구보다 금연 기호가 눈에 먼저 들어오는 사람들, 시각적 기호에 익숙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면 이 스티커도 별 문제없이 디자이너의 의도대로 부착되었을 것이다.
금연구역 스티커 대부분이 ‘이곳은 금연구역입니다’라는 문구를 기준으로 부착된 것은 사실 이를 부착하는 사람들 대다수, 즉 건물주나 건물관리인이 교과서로 글자를 배우고 신문·잡지를 읽으며 살아온 세대, 그림보다 글자에 더 익숙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스마트폰에 익숙한 요즘 세대가 이 스티커를 부착했다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던 것이다.
금연구역 스티커의 각도가 틀어진 것을 단순히 디자이너의 실수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되면 각 세대간 사고체계에 차이가 있다는 점, 소통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간과하게 된다. 나아가 국내 디자이너 대부분이 시각중심적인 서구식 디자인문법과 방법론으로 교육을 받았기에 금연구역 스티커처럼 같은 문제조차 다르게 이해하고 다른 해법을 제시한다는 점을 돌아보지 못하게 된다.
디자인이 디자인해야 할 것은 ‘겉모습’ 아닌 ‘소통’
오해와 오용의 여지를 줄이는 것 또한 디자이너의 역할이라는 점에서 디자이너의 잘못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를 관리하고 감독해야 하는 보건복지부와 금연구역 스티커를 잘못 부착한 사용자 또한 책임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각 세대와 집단 간에 소통이 원활 했다면 금연구역 스티커에 문제가 있다해도 이를 기획하고 관리하는 과정에서 또는 이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굳이 잘잘못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금연구역 스티커의 기울기와 상관없이 사람들은 저곳이 금연구역임을 알아본다. 주목할 것은 같은 지역, 같은 공간 안에서도 각 세대, 각 집단 별 사고방식이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곳은 금연구역입니다’라는 문구를 빼는 방식(디자이너의 개선), 금지표지를 학습하고 이해하는 방식(사용자의 개선), 잘못 부착된 표지를 떼고 다시 붙이는 방식(관리자의 개선) 같은 단편적인 해법을 넘어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을 디자인해야 하는 것이다.
디자인이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이라 할 때, 중요한 것은 무엇을 문제 삼을지 선택하는 것이다. 디자인의 모양을 문제 삼을 것인지 디자인을 만드는 사회를 돌아볼 것인지에 따라 디자인의 수준이 달라지고 일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