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행동주의가 활성화되면서 기업들의 주주 눈치 보기가 시작됐다. 논란을 피하기 위해 일부 계획을 수정할 뿐 기업들의 꼼수는 여전하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을 외치는 기업들은 보여주기식이 아닌 진정성 있는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마련해 코리아 디스카운드 해소에 힘써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금융당국은 물적분할로부터 소액주주를 보호하겠다며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 시행령을 개정했다. 물적분할을 추진하는 기업은 ▲공시 강화 ▲주식매수청구권 도입 ▲분할 법인에 대한 상장 심사 강화가 적용된다.


물적분할이 막힌 기업들은 현물출자와 인적분할로 노선을 전환하고 있다. 현물출자와 물적분할은 모회사가 자회사를 100% 소유한다는 점에서 같다. 이사회 의결을 마친 후 주주총회를 통해 주주들의 찬성을 받아야 하는 물적분할과 달리 현물출자 방식은 이사회 의결만으로 진행할 수 있다. 인적분할은 기존 주주가 신설 회사 주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물적분할보다 주주 친화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지분교환을 통해 대주주의 경영권 확대에 이용된다.

정량적인 규제도 꼼수가 가능하다. 현대자동차는 과거 자회사 지분율을 낮춰 사익 편취 규제 대상에서 벗어났다. 공정거래법이 총수 일가 지분율 30% 이상인 기업을 규제 대상으로 정하자 현대글로비스의 지분율을 43.39%에서 29.99%로 낮췄다. 이후 정부가 규제 대상을 30%에서 20%로 낮추자 현대자동차는 보유 지분 10%를 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 칼라일 그룹에 매각하면서 규제 대상에서 빠져나갔다.

같은 시기 삼성그룹도 20%로 낮아진 규제 기준에 맞춰 지분을 매각했다. 2021년 5월 기준 삼성생명보험의 총수 일가 지분은 20.82%였지만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 보유한 지분 3.46%의 절반인 1.73%를 처분했다. 이에 삼성생명의 총수 일가의 지분율이 19.09%로 줄어 규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기업들은 규제에 맞춰 법망을 피할 방법을 찾아내기 때문에 법만으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회사가 소액주주를 존중하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하고 주주들의 힘도 커져야 한다. 미국은 주주가치 훼손에 대한 민사 소송이 활성화돼 대주주가 소액주주의 눈치를 봐야 한다.

최근 한국서도 소액주주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건 다행이다. DB하이텍, 풍산, 한국조선해양 소액주주들은 물적분할한 자회사의 이중상장을 막아냈다. 그중 한국조선해양의 현대삼호중공업 상장 철회는 소액주주들의 압박에 굴복한 게 아니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국조선해양은 지분 대결에서 이길 수 있었음에도 소액주주 연대의 대화 요청에 IR담당 임원이 직접 나섰다. 한국조선해양과 소액주주들은 회사의 발전을 위해서 앞으로도 협력 관계를 유지키로 했다.

이상목 기업지배구조 혁신 주주연합 대표는 "연합이 담당하고 있는 회사 11곳 가운데 주주의 대화 요청에 응한 곳은 한국조선해양이 유일하다"며 "결과만 보면 상장을 철회했다는 것은 같지만 한국조선해양의 계획 변경은 대화의 결과물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고 했다.

ESG 경영 유행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지만 정작 G(지배구조)를 신경 쓰는 기업은 손에 꼽는다. ESG를 외치는 기업들도 총수 일가의 승계자금 마련을 위해 배당을 조절하고, 대주주의 지배력 강화를 위해 회사를 분리한 뒤 중복 상장시켜 주주가치를 훼손한다. 말로만 ESG를 외칠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