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진 작가. /사진=작가 본인

'어, 부재중 전화?' 친한 언니의 이름이 찍혀 있었다. '무슨 일이지?' 따로 남겨진 문자 메시지도 없었다. 몇 년째 우리가 꽤 친한 사이인 건 분명하지만 서로의 안부나 가벼운 수다는 보통 문자로 오갔기에 다소 새로웠다.

"언니, 전화했었네? 무슨 일 있어?" 요 근래 들은 말 중 손꼽히게 달콤한 멘트가 날아왔다. "광화문 교보문고에 왔다가 문득 네 생각이 나서 그냥 걸었어." 내가 자주 들르는 시내 서점을 알고 있고 그 곳에서 잠시 나를 떠올리면서 문자 대신 바로 통화 버튼을 누를 정도로 충분히 가까운 사람. 우린 전화로 30분쯤 목적 없는 수다를 떨었다. 햇살이 유난히 따사로웠다.


20년쯤 전까지만 해도 '전화'는 내게 '친구'와 거의 동의어였다. 중·고교 학창시절엔 시험기간이면 마음 맞는 친구와 시간 맞춰 전화를 걸어주자는 야무진 결의를 했다. 밤늦도록 친구 전화를 기다리는 재미에 조금이라도 더 공부했던 것 같다. 대학 이후 취업준비 시절까지도 대부분의 통화는 큰 용건 없는 즐거움이었다. 전화하기 위해 시간을 냈던 건지 시간이 많아서 전화를 했던 건지 아련하지만 그 시절엔 몇몇 전화번호를 당연하게 외우고 있었는데. 이젠 기억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문득 허전하다.

내게 전화의 의미가 바뀌기 시작한 전환점은 직접 돈을 벌면서였다. 2005년 말, 언론사에 입사하면서 기자가 됐다. 본격적인 사회생활에 돌입하면서 '전화=일'이란 등식이 성립됐다. 십수년간 수많은 통화를 했다. 사실관계를 따지고 보고를 하고 보고를 받는 통화량이 하루에도 수십번, 수십분에 달했던 날들이 무수히 많았다. 출입처에서 일상적으로 통화하던 몇몇 취재원들의 음성은 아직도 가끔씩 귓가에 맴돈다. 그저 안부가 궁금해지기도 하지만……일이 끝났으므로 전화할 명분도 사라졌다는 숫기 없는 생각에 그친다. 전화가 곧 일이었던 날들을 지나면서 일과 상관없는 통화는 차츰 줄어갔다. 더욱이 지금은 통화보다 문자가 당연한 시대다. 친구와의 전화 수다는 내게도 어느새 낯선 일이 됐다.

'전화 공포증'을 뜻하는 '콜 포비아'(Call phobia)라는 말이 회자되는 걸 보면서 문득 옛 생각이 났다. 나 역시 개인적으로는 문자 소통에 더 길들여진 상태지만 적어도 통화가 두렵진 않다. 기자로 일했던 내게 전화 걸기와 받기는 오랫동안 의무였기 때문이다. 그 의무를 꽤 성실히 수행했다. 그래서 '업무용 전화'를 위한 작은 조언을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전화를 걸 때는 사전에 용건을 분명히 정리하면 통화가 깔끔해진다. 나는 취재를 위해 필요한 질문을 늘 미리 정리했다. 일을 위한 전화라면 준비가 기본이다. 전화를 받았을 땐 상대의 예상 밖 요구나 질문에 휩쓸려 당황하지 말자. 확신이 없다면 즉답을 피하고 추후 다시 통화하는 것으로 주도권을 찾을 수 있다.


조민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