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동안 동결해온 대학등록금의 인상 가능성을 놓고 대학가에선 갑론을박이 일고 있다. 서울 시내 한 대학교의 학자금 상환 전단을 바라보는 학생의 모습. /사진=뉴스1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말이 나올 만큼 물가가 연일 고공행진 중이다. 지난 2월 서울 택시 기본요금이 3800원에서 4800원으로 20% 이상 오른 데 이어 5월에는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이, 이번달엔 서울 지하철 기본요금이 인상됐다. 지난 9월 소비자물가지수는 3.7%로 5개월 만에 최대폭을 기록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15년 동안 동결을 유지해온 대학등록금마저 들썩인다는 소식이 전해져 대학가가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지난 9일 교육부 출입기자단이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하계 대학 총장 세미나에 참석한 전국 4년제 대학 총장 8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70.3%(59명)가 2년 이내에 등록금을 인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0개 대학 중 7곳이 등록금 인상을 계획 중인 셈이다.

이미 등록금 인상을 결정한 곳도 있다. 동아대학교는 올초 13년 만에 등록금을 인상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약 22억5000만원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재정난이 지속되자 등록금을 3.95% 올리기로 한 것. 경인교대·광주교대·대구교대·부산교대·전주교대·진주교대·청주교대·춘천교대 등 국립교육대학들도 등록금 인상 대열에 합류했다. 이들 대학은 등록금을 3.9~4.04% 올릴 예정이다.

현행 고등교육법상 대학은 직전 3개년 물가상승률 평균의 1.5배까지 등록금 인상이 가능하다. 정부는 그동안 학부 등록금을 동결하거나 인하한 대학에만 국가장학금 Ⅱ유형을 지원하면서 등록금 인상을 억제해 왔다. 이 가운데 최근 고물가, 학령인구 저하 등으로 재정난에 허덕이는 대학들이 정부 지원을 포기하고 등록금 인상을 선언한 것이다.


대학 "10년 넘게 동결…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

현재 대학 총장들의 주된 관심사는 대학의 재정위기 및 충원율이다. 사진은 지난해 교육부 대학구조개혁 평가 하위 E등급을 받은 경기도의 한 대학교 내 텅 빈 강의실 모습. /사진=뉴스1

지난 7월 대교협이 138개교 총장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재정에 대한 대학 측의 위기의식을 명확히 느낄 수 있다. '총장이 가장 관심 갖는 영역'을 묻는 질문에 '정부 재정지원사업', '신입생 모집 및 충원', '등록금 인상'이 1~3위를 차지했다.

이에 대교협은 "총장들이 대학의 재정위기와 충원율에 관심이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며 "이는 정부가 오랜기간 유지해온 등록금 인하·동결 정책 기조와 최근 학령인구 감소의 사회현상이 맞물려 초래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울 H대학교 관계자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몇 년간 물가가 계속 올랐지만 등록금은 동결됐다"며 "배분된 강사료가 현저히 낮아 강좌개설이 어려울 정도"라고 밝혔다. 또한 "각종 공공요금과 시설물 관리비 등 부대비용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재정이 악화했다"고 덧붙였다.

경기도 소재 A대학교 관계자는 "10년 넘게 등록금을 동결하다 보니 재정적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다른 대학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등록금 인상 가능성을 묻는 말에 "올리고 싶어도 올릴 수 없다"며 "매년 열리는 등록금심의위원회(등심위)에서 인상이 논의되지만 학생 위원, 정부 등 압박이 들어와 매번 무산되는 게 현실"이라고 답했다.

A대학교는 2023년 등심위에서 등록금 조건부 인상을 결정했지만 이사회 등 추후 절차를 걸친 끝에 동결을 유지했다. 지난 2월 교육부가 "정책 기조에 동참하지 않고 등록금을 인상한 대학에는 유감을 표한다"며 등록금 동결을 압박한 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학생 "대학 재정난, 등록금 인상으로 해결?… 안일하다"

등록금 인상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은 대학 측과 상당히 상충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진은 지난 5월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활동가들이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 인근에서 대학생 문제 해결을 위한 행진을 벌이며 '등록금 인상 반대' 피켓을 들어 보이는 모습. /사진=뉴스1

학생들은 등록금 인상을 반대하고 있다.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전대넷)가 7000여명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95%가 등록금 인상을 반대했다. 그중 80%는 현재 등록금도 부담스럽다고 답했으며 84%는 '납부한 등록금에 비해 열약한 교육, 시설, 복지를 경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민정 전대넷 집행위원장은 본지와 단독 인터뷰를 통해 "대학생들은 등록금뿐 아니라 계절학기 등 추가 학기 수강으로 인한 비용, 월세·생활비·취업준비비용 등으로 경제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재정난이라는 이유로 등록금 인상을 강행하는 건 학생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학교마다 등심위가 있음에도 학생 의견이 반영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는 "등심위 구조상 학생위원을 제외한 교직원, 관련 전문가, 재단 인사 등은 모두 학교 편인 상황"이라며 "안건 가결을 위해 참석위원 절반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데 학생위원은 전체 정수의 10분의3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학교가 인상을 강행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재정 위기 극복을 위해 대학교가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약 10년 전 안정적인 학교생활 영위에 대한 학생들의 강한 열망에서 등록금 동결이 시작됐다"며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재정 건전성 회복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고 비판했다.

최근 OECD가 발표한 2020년 한국의 대학생 1인당 공교육비 지출액은 1만2225달러(약 1654만원)로 OECD 평균인 1만8105달러(약 2450만원)를 한참 밑돌았다. 공교육비는 학부모가 사교육에 쓴 비용을 제외하고 정부나 민간이 교육에 사용한 비용이다.

학부모 "노후 준비해야 하는데… 이미 사면초가"

한국 4인 가족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두 자녀가 대학에 갈 경우 대학 교육에 지출하는 비용은 소득의 절반 이상이다. 지난 2021년 서울 종로구 혜화 공공그라운드에서 열린 '2021 코로나 대학생 피해 사례 증언 대회'에서 정부와 대학의 등록금 반환 논의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는 모습. /사진=뉴스1

두 자녀를 서울에 있는 대학교로 진학시킨 최은우씨(50·여)는 등록금이 오를 수도 있다는 소식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월세, 용돈, 등록금 등 고정비용만 4500만원 이상 나간다"며 "일반적인 직장인 연봉을 오롯이 (자녀에) 투입하는데 물가가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 등록금마저 인상된다면 많이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슬슬 노후 준비를 해야 하는데 지금 지출하는 비용만으로도 사면초가인 상황"이라며 "나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학부모가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등록금 인상은 대학 재정의 책임을 학부모에게 전가하는 행위"라며 "학부모 입장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의사결정 구조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현재 중위소득층(4인 가족)을 기준으로 두 자녀가 대학에 다닐 경우 지출하는 비용은 소득의 절반 이상이다. 일반고 학생의 대학 진학률이 80%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교육비 부담은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다. 그 결과 20대의 늦은 사회진출, 불평등, 양극화, 저출생 등 여러 사회 문제가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지난 2월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내년에는 적어도 대학등록금 논의를 다시할 생각이 없다"며 '등록금 인상설'을 일축했다. 다만 해당 지침은 권고 수준에 머무르기 때문에 대학 측이 인상을 강행하면 학생과 학부모는 막을 방법이 없다.

인구·산업구조가 급변하며 대학은 전례 없는 재정난에 직면했다. 등록금 인상을 차일피일 미룰 수도 없는 상황이다. 대학 교육의 '세 축'이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서 재정 건전성을 회복하기 위한 실질적인 치료법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