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가 자녀의 가방에 몰래 녹음기를 넣어 등교시킨 뒤 녹음한 자료를 아동학대 신고 증거로 제출한 것에 대해 대법원이 증거능력이 부정된다고 봤다. /사진=이미지투데이
학부모가 자녀의 가방에 몰래 녹음기를 넣어 등교시킨 뒤 녹음한 자료를 아동학대 신고 증거로 제출한 것에 대해 대법원이 증거능력이 부정된다고 봤다. /사진=이미지투데이

학부모가 교사의 아동학대를 의심해 자녀의 가방에 몰래 녹음기를 넣어 등교시킨 뒤 녹음한 자료를 아동학대 신고 증거로 제출한 것에 대해 대법원이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봤다.

11일 머니투데이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이날 오전 아동학대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초등학교 교사 A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동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피해아동의 부모가 몰래 녹음한 수업시간 중 교사의 발언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 대화'에 해당해 증거능력이 부정된다고 봤다.


A씨는 서울 광진구의 한 초등학교 3학년 담임교사로 지난 2018년 3월2일자로 자신이 담당하는 반에 전학 온 학생 B군에게 같은해 3월부터 5월까지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행위를 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B에게 총 16차례에 걸쳐 학대행위를 한 혐의를 받는다. B군의 부모가 제출한 증거에 따르면 "학교 안 다니다 온 애 같아. 저쪽에서 학교 다닌거 맞아? 1, 2학년 다녔어? 공부시간에 책 넘기는 것도 안 배웠어? 학습 훈련이 전혀 안돼 있어. 1, 2학년 때 공부 안하고 왔다갔다만 했나봐"(3월14일) "인간은 인간인데 짐승같은 인간이지. 니네(B와 다른 학생 지칭)들은 정말 구제불능이야"(3월23일) "머리 뚜껑을 한 번 열어보고 싶어. 뇌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지 않냐. 뇌세포가 어떻게 생겼는지 한 번 구경해보고 싶어"(4월3일) "빨리 읽어 인간아. 어 쟤가 맛이 갔어. 쟤는 항상 맛이 가있어"(4월18일) "절대 관심주지마. 똥에다 밥을 비벼먹어도 관심주지마"(4월20일) 등의 발언을 했다.

A씨의 이 같은 발언은 B군의 부모가 아이의 가방에 녹음기를 몰래 넣어 등교시키면서 드러났다. B군의 모친은 B군으로부터 "선생님이 저에게 1, 2학년 제대로 나온 것 맞냐는 등의 말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동학대를 의심해 B군의 가방에 몰래 녹음기를 넣어 등교시켰다. B군의 부모는 수사기관에 A씨를 아동학대로 신고하며 이 녹음파일과 녹취록을 제출했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아동학대범죄의 증거가 된 녹음파일과 녹취록의 증거능력을 인정하고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A씨가 수업시간 중 한 발언은 통상적으로 교실 내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교실 내 학생들에게만 공개된 것일 뿐 일반공중이나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된 것이 아니라고 판단해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 재판부는 "수업시간 중인 초등학교 교실에 학생이 아닌 제3자가 별다른 절차 없이 참석해 담임교사의 발언 내용을 청취하는 것은 상정하기 어렵다"며 "A씨의 발언은 특정된 30명의 학생들에게만 공개됐을 뿐이다. 대화자 내지 청취자가 다수였다는 사정만으로 '공개된 대화'로 평가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B군의 부모는 A씨가 수업시간 중 발언의 상대방, 즉 대화에 원래부터 참여한 당사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부모가 몰래 녹음한 A씨의 수업시간 중 발언은 '타인 간의 대화'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해당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에 관한 법리오해를 이유로 원심판결을 파기한 것"이라며 "유무죄에 관해 종국적으로 판단한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