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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이 인공지능(AI) 규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초의 'AI 규제법'으로 불리는 유럽연합(EU)의 'AI 법'은 지난 3월13일 유럽의회를 통과했다. 미국백악관 예산관리국(OMB)은 3월28일(현지시각) 연방 정부 기관들이 AI 부작용 방지를 위한 안전장치를 의무화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이들이 적극적인 AI 대응에 나선 이유는 최근 들어 AI를 활용한 가짜뉴스와 허위정보가 여론을 왜곡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한단 우려가 나오면서다. 특히 올해가 세계 70여개 국가에서 선거가 치뤄지는 '슈퍼 선거의 해'인 만큼 딥페이크와 AI에 대한 경각심과 위험성을 일깨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내 상황은 다르다. 국내 'AI 기본법'(인공지능 산업 육성 및 신뢰 기반 조성에 관한 법률안) 관련 국회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해당 법안은 지난해 2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법안2소위를 통과했지만 1년 넘게 상임위 전체회의에 계류 중이다.
AI 콘텐츠 표시 의무를 규정한 정보통신망법 일부개정안, 콘텐츠산업진흥법 일부개정안 등도 국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이들 법안은 AI 산업의 발전에 따른 윤리적 문제와 개인정보 보호 등을 다루고 있다.
과방위는 지난1월8일 이후 회의도 중단했다. AI 주도권을 두고 과기정통부와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등 세 부처가 경쟁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AI 프라이버시 가이드라인', 방통위는 'AI 이용자보호법' 등을 각각 추진하고 있다. 강도현 과기정통부 제2차관은 "부처에서 여러 정책을 펼치면서 각자가 가진 가치가 다른 것 같다"고 논란을 일축했다.
국내도 AI와 딥페이크 악용에서 자유롭지 않다. 딥페이크 '윤석열 대통령 양심고백 영상'이라는 가짜 영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확산하며 혼란을 주기도 했다. 지난 3월25일까지 중앙선관위가 모니터링 활동을 통해 삭제 요청을 한 선거 관련 딥페이크 게시물은 207건에 달한다. 유튜브 등 영상 플랫폼에는 유명인들의 목소리와 얼굴 등을 합성한 콘텐츠들이 무분별하게 확산하고 있다. AI 관련 규제는 더 이상 법적 가이드라인 밖에서 논할 일이 아니다.
성급한 규제가 능사는 아니지만 여러 산업에서 이미 제도 공백으로 인한 피해가 잇따른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AI 기본법 제정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면 'AI 창작물에 워터마크를 표기하자'는 등의 대안을 통해서라도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AI가 저작권 침해 등 인류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는 점에선 규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져야 할 시점이다. 일을 그르친 후에 바로잡는 것은 소용없다는 망양보뢰의 교훈을 되새길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