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일본 중부 나고야시에서 차를 타고 서남쪽으로 1시간쯤 달려 도착한 미에현 구와나시(桑名市). 시 중심부에서 산속을 30분 달리자 자동차 정밀부품 기업 에이벡스(AVEX) 공장이 한 눈에 들어왔다. 직원의 안내를 받고 들어선 공장에는 20~30대 남녀 직원들이 가공된 부품을 확인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완성차 업체에 부품을 납품하기 전 불량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매캐한 윤활유 냄새가 진동하는 환경에서도 돋보기를 들고 부품을 들여다보는 여성부터 기계 앞에서 부품 데이터를 확인하는 남성까지 각 공정마다 젊은 직원들이 눈에 띄었다.
이코마 켄지(生駒健二) 에이벡스 상무는 "직원들의 평균연령은 34세이고 대부분이 일본인"이라며 "최대의 지역공헌은 '고용 창출'이라는 신념 아래 미에현에서만 90%의 인재를 채용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직원 중 여성 비율이 49%에 달하는데 노동시간을 유연하게 적용하고 있다"며 "그 결과 일본 제조업 평균 이직률이 15% 정도지만 에이벡스는 4%에 불과하다"고 했다.
에이벡스는 1949년 6월 설립된 자동차용 금속정밀 부품 기업으로 현재 직원은 약 500명이다. 매출액은 2024년 실적 기준 84억엔(약 780억원)으로, 도요타 등 일본·미국 완성차 업체에 정밀부품을 납품하고 있다. 수십년간 안정적인 매출을 올리면서 인구 13만명 구와나시의 재정 자립과 지역인재 유출 방지 등에 기여하고 있다.
구와나시는 일본 제조업의 심장부인 '토카이 공업지대'의 핵심 요충지다. 이 지역 인근에는 열처리, 도금, 연마 등의 기술을 보유한 강소기업들이 포진해 있다. 지역 내 특화 산업 클러스터가 구축돼 지역인재들이 도쿄 등 수도권으로 향하지 않고 정착하는 비율이 높다.
지역인재들이 구와나시를 떠나지 않는 배경 가운데 하나가 교육이다. 학교에선 지역 역사와 기업들에 대해 교육한다고 한다. 기업들은 기업의 철학을 이해하는 지역인재를 뽑으면서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코마 상무는 "에이벡스의 채용 기준은 학력이나 전공보다는 지역과 기업의 가치관을 이해하는 이들"이라고 했다.
에이벡스 직원들은 지역 내 의료 인프라에 큰 불편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지역에 병원이 충분할 뿐 아니라 나고야 등 인근 대도시 대형병원을 오가는 데에도 불편함이 없다는 취지다. 한 직원은 "직장을 다니면서 아이를 출산했는데 병원 등 지역 의료 인프라로 인한 어려움은 없었다"고 했다.
미에현 부지사 "세금 감면보다 규제 완화"
노로 유키토시(野呂幸利) 일본 미에현 부지사는 지방주도성장의 첫 번째 조건으로 '기업 규제 완화'를 꼽았다. 미에현 타키군 출신인 노로 부지사는 1988년 현청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40년 가까이 산업 진흥, 신산업 육성, 기업 유치, 해외 전개 지원 등 산업·고용 정책 입안에 기여했다. 2024년 4월 부지사 취임 후에는 경제·산업·관광·교통 등의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노로 부지사는 최근 미에현 쓰시(津市)에 위치한 현청에서 동행미디어 시대와의 인터뷰를 통해 "지역 내 기업 유치라고 해서 단순히 없던 기업을 새로 데려오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면서 "지역으로 온 기업이 계속해서 규모를 키워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예컨대 현재 7번째 공장까지 증설하며 성장 중인 기업들이 있는데, 우리는 규제 완화 등을 통해 지원하고 있다"며 "보통은 기업의 법인세를 깎아주는 지원을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미에현은 세금 감면은 크지 않은 편"이라고 했다.
이어 "그보다 더 중요한 부분은 기업이 활동할 때 걸림돌이 되는 다양한 규제를 완화해 주는 것"이라며 "기업이 안전하게 지역에 투자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돕고 국가 보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행정이 함께 움직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에현의 전체 인구는 약 170만명으로, 현청 소재지인 쓰시보다 경제 중심지인 요카이치시(四日市市)에 인구가 조금 더 집중돼 있다. 미에현의 대표 산업은 자동차 부품, 첨단 반도체 산업, 석유화학 공업 등이다. 미에현은 대기업도 따라할 수 없는 특화 기술을 보유한 중소기업을 집중 지원한다고 한다.
노로 부지사는 "단순히 제품만 찍어내는 공장은 제품 수명이 다하면 끝나버리지만 연구개발(R&D) 능력을 갖춘 '마더 공장'을 유치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며 "공장이 지역을 떠나지 않게 될 뿐 아니라 우수한 연구 인력들이 지역으로 모여들기 때문에 가치가 매우 높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기업에는 보조금을 더 많이 주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며 "공장이 들어서도 일할 사람이 없으면 소용이 없기 때문에 지역인재 확보를 위해 현청 직원들이 기업 관계자와 함께 지역 내 고등학교를 일일이 돌아다닌다"고 했다.
노로 부지사는 "'이런 훌륭한 공장이 생기니 학생들을 보내달라'고 직접 발로 뛰며 지원한다"며 "작은 일 같지만 기업에겐 가장 절실한 부분"이라고 했다.
노로 부지사는 "미에현에선 청년들을 지역에 남게 하기 위해 중·고등학생 때부터 '향토애' 교육을 한다"며 "결국 지방이 살아남으려면 대규모 기업 유치를 통해 일자리를 만드는 것과 동시에 어릴 때부터 '우리 고향은 정말 좋은 곳이다'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방은 도시보다 생활비가 저렴하고 자연이 풍부하다"며 "자녀들이 대학을 위해 도쿄로 가더라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려면 부모님이 계신 고향이 살기 좋은 곳이라는 점을 계속해서 알려야 한다. 기업 유치와 교육, 이 두 가지 방법 외에 다른 왕도는 없다고 본다"고도 말했다.
지역 거점대학 활용하고, 대학병원에 고성능 의료기기 지원 필요성
전문가들은 '일자리(Job)·교육(Education)·의료(Medical)' 등 이른바 JEM이 하나의 패키지로 맞물려 돌아가야 지역이 자생력을 가질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일자리의 경우 단순한 공공기관 이전만으로는 부족하고 고연봉의 민간 기업들을 유치할 수 있도록 지역별 '특화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비수도권에도 메가시티처럼 일-삶-놀이-배움이 융복합된 공간이 필요하고 이 속에서 거점국립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며 "과거처럼 단순히 공장을 짓고 보조금을 주는 방식으로는 안 된다"고 했다.
이어 "청년들이 선호하는 IT(정보기술), 콘텐츠, 소프트웨어 등 고부가가치 산업이 지방으로 내려올 수 있는 파격적인 인센티브와 환경이 조성돼야 산업 생태계가 살아난다"고 강조했다.
가족 단위의 정주를 끌어내기 위해선 일자리 뿐 아니라 의료, 교육 인프라의 확충까지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방의 의료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지역거점 대학병원에 중입자치료기 등 고성능 의료기기를 지원하는 방안 등을 전문가들은 제안했다.
지방의 교육 경쟁력 향상을 위해 지역거점 국립대에 최고급 연구장비를 제공하는 등 집중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를 통해 지역 특화산업에 맞는 고급인재들이 양성되면 민간 기업들 입장에서 지방 이전의 유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KAIST(한국과학기술원) 의과학대학원 관계자는 "각 지역에 있는 이공계 특성화대의 의과학 연구와 연구 인프라 등을 지원하면 지역의 자생력이 커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