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총선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이끄는 집권 자민당이 창당 이후 최다 의석을 차지했다. 중의원(하원) 465석 중 316석을 확보해 단독으로 개헌안 발의선 3분의 2를 넘었다. 다카이치의 정치적 스승인 아베 신조 전 총리나 자민당 최전성기를 이끈 나카소네 야스히로 정권도 못해 본 전후 첫 기록이다. 연정 상대인 일본유신회 의석을 더하면 중의원 수의 4분의 3에 달한다. 일본 정치가 장기간 다카이치 1극 체제로 갈 거란 분석이 나올 만큼 역대급 성적표다.
자민당의 압승에는 대중 지지도가 높은 다카이치 총리의 개인적 인기가 한몫했지만 결정적 배경은 안보 불안이라는 평가다. 최근 일본 내에선 중국의 군사적 팽창, 대만 문제를 둘러싼 중일 갈등, 북러 군사 공조 등으로 위기감이 커졌다. 거래를 앞세우는 미국에만 의존할 수 있느냐는 우려도 있었다. 힘의 논리가 부상한 국제 질서 속에서 다카이치가 내세운 '강한 일본' 주장이 먹혔다.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들은 "중국의 위협이 자민당의 승리를 도왔다"고 분석했다.
이번 선거로 '강한 일본'으로의 변화는 탄력을 받을 게 확실시된다. 당장 3대 안보문서 개정, 무기수출 규제 완화, 국가정보국 창설, 스파이 방지법 제정 등이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보통 국가'로 만드는 '헌법 9조' 개정도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여소야대인 참의원(상원)의 3분의 2 이상 찬성도 얻어야 해 속도조절은 불가피하다.
일본의 군사력 강화는 그 자체로 동아시아 평화를 위태롭게 하는 사안으로 인식돼 왔다. 일본 제국주의 침략을 경험한 국가들로선 당연한 반응이다. 그러나 안보 환경이 바뀌면서 과거 일변도의 접근만으로는 해법 찾기가 어려워졌다. 우선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발언으로 촉발된 중일 관계는 더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동맹과의 우호적 관계를 강조하면서도 "역내 문제는 당사국이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도 내세우고 있다. 미국·중국·일본과의 관계를 다 고려해야 하는 우리로선 불확실성이 극대화된 고차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현재 한일 관계는 셔틀 외교가 재개되는 등 훈풍을 맞고 있다. 반일·혐한 시위가 극심했던 양국 분위기도 달라졌다.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총리 모두 정치인 시절 상대국을 신랄하게 비판했지만 지도자가 된 이후는 철저하게 국익을 앞세우고 있다. 이런 전략적 유연성은 유지될 필요가 있다. 과거사 문제는 별도로 다루되 그 사안이 양국 관계를 멈춰세우지 않도록 세심히 접근해야 한다. 다카이치 총리는 어제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는 주변 국가들의 이해를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오는 22일엔 '다케시마(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의 날' 행사도 열린다. 다카이치 정권의 절제와 진정성 있는 모습을 기대한다. 우리는 원칙은 분명히 하되 실용의 폭을 넒히는 고도의 외교 역량을 보여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