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더불어민주당의 사법개혁 3법(법왜곡죄·재판소원제·대법관 증원) 강행에 반발, 7박8일 간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벌이면서 과거 필리버스터 관련 기록들에 관심이 쏠린다.
국민의힘은 26일에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사흘째 필리버스터를 이어갔다. 이날 더불어민주당은 오후 5시쯤 표결로 필리버스터를 종결한 뒤 '법왜곡죄'를 담은 형법 개정안을 처리할 방침이다. 법왜곡죄는 판사나 검사가 의도적으로 법리를 왜곡하거나 사실을 조작할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과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국민의힘은 지난 24일부터 필리버스터를 이어가고 있지만 법안 처리를 지연시키는 것 외에는 실질적인 저지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지난 25일 오후 더불어민주당은 표결을 통해 필리버스터를 종결하고 상장사의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3차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필리버스터는 본래 법안 처리 지연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토론의 장을 마련하기 위한 제도다. 1958년 8월 국회는 일방적인 다수당의 법안 처리를 견제하고 반대 의사를 충분히 피력해 정책 논의를 확대하기 위해 이를 도입했다. 첫 활용 사례는 1958년 12월 김선태 민주당 의원이다. 당시 여당인 자유당이 '신 국가보안법'을 통과시키려 하자 김 의원은 야당 정치인과 언론인 탄압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며 약 2시간 동안 발언을 이어갔다. 그러나 결국 무력에 의해 연단에서 끌려 내려왔다.
이 제도는 이후 1964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민주당 의원 시절 성공적으로 활용하면서 상징성을 갖게 됐다. 김준연 의원이 박정희 정부의 한일 회담을 비판하다 구속 위기에 처하자 김 전 대통령은 필리버스터에 나서 5시간 19분간 대본 없이 연설을 이어갔다. 그 결과 해당 회기(제42회 임시국회 제21차 본회의) 내 구속동의안 표결 시한이 지나 김준연 의원의 구속을 막을 수 있었다.
필리버스터 제도가 계속 유지된 것은 아니다. 1973년 박정희 정부의 '유신 국회'에서 전격 폐지됐다가 2012년 국회선진화법 통과로 부활했다. 이후 소수당의 저항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필리버스터 관련 기록들은 최근 잇따라 경신되고 있다. 지난 24일부터 진행 중인 필리버스터가 국민의힘의 계획대로 7박8일 간 진행된다면 역대 최장기간 연속 기록을 갈아치울 전망이다. 2024년 7월 '방송 4법' 본회의 상정 당시 국민의힘이 기록한 5박6일의 기존 기록을 넘어선다.
개인 최장 시간 연설 기록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세웠다. 지난해 12월 23일 장 대표는 민주당이 주도한 '내란·외환·반란 범죄 등의 형사 절차에 관한 특례법안'(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이 본회의에 상정되자 24시간 동안 필리버스터를 이어갔다. 다만 1957년 스트롬 서먼드 미국 상원의원의 24시간 18분 기록을 넘지는 못했다.
한국과 미국 모두 필리버스터 종결 요건은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같다. 그러나 운영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미국은 필리버스터 연설에서 해당 법안과 무관한 내용을 발언하는 것이 허용된다. 반면 한국은 발언의 주제가 법안과 관련돼야 한다. 국회법 제106조 제10항에 따라 '의제와 관련 없는 발언'은 할 수 없으며 이를 판단하는 권한은 국회의장에게 있다. 의장이 의제와 무관하다고 판단할 경우 경고하거나 발언을 중단시킬 수 있다.
한편 미국의 경우 연단을 떠나는 순간 발언시간이 종료되기 때문에 중간에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한국도 과거에는 연단을 벗어나면 발언권이 종결됐지만 2019년 문희상 국회의장이 3분 간 화장실 이용을 허용한 이후 제한적 이용이 가능해졌다. 2024년 채상병 특검법 필리버스터에서 곽규택 의원이 우원식 국회의장의 허가를 받아 화장실을 이용한 뒤 현재는 비교적 자유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