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장기업 창업자와 대주주의 핵심 자산인 지분을 활용한 '비상장주식 담보대출' 시장이 국내에서는 좀처럼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제도적으로는 비상장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해주는 게 가능하다고 하지만 금융사들은 환금성 부족과 가치평가의 어려움, 금융권의 건전성 부담 등을 이유로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비상장주식 담보대출은 증시에 상장되지 않은 기업의 지분을 담보로 금융기관에서 자금을 빌리는 금융 거래다. 창업자나 대주주의 자산이 대부분 회사 지분에 묶여 있는 경우가 많아 해외에서는 이를 활용한 자금 조달이 비교적 익숙한 금융기법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담보 처분 시장과 가치평가 인프라가 충분히 뒷받침되지 못해 관련 대출이 제한적으로만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히는 건 가치 산정의 어려움이다. 비상장주식은 상장주식처럼 실시간 시세가 형성되는 구조가 아닌 데다 장외 거래도 제한적인 플랫폼 중심으로 이뤄져 금융기관이 신뢰할 만한 기준 가격을 도출하기 쉽지 않다. 비상장주식은 거래 빈도가 낮고 가격 투명성이 떨어져 금융사 입장에서는 담보 회수 가능성을 보수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비상장주식 담보대출은 현재 재무상태만 보는 게 아니라 해당 기업의 성장성, 상장 가능성, 향후 기업가치까지 사실상 전부 들여다봐야 하는 영역이라 심사 난도가 높다"며 "결국 기업인이 자금을 조달하려면 공장 부지 등 부동산 담보를 제공하거나 담보인정비율(LTV)이 낮고 금리가 높은 설비 담보대출을 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업권 전반에 걸쳐 건전성 관리 기조가 강화되면서 비상장주식을 담보 자산으로 적극 취급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짙어지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익스포저 부담이 큰 데다 연체율 관리 압박까지 겹쳐 새로운 리스크 자산을 늘릴 여력이 크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승건 대표의 미국행, 국내 금융의 '동맥경화' 보여줘
국내 여건의 경직성은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 사례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2024년 이 대표는 미국 금융권에서 보유 중인 비상장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표는 국내보다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조달 여건 등을 고려해 해외 조달을 택했고 현재 해당 대출을 전액 상환한 것으로 전해진다.국내에서는 저금리 기조가 이어질 때나 IPO(기업공개)가 활황세일 때 대형 증권사 자산관리(WM) 부문을 중심으로 관련 서비스가 제한적으로 운영되기도 했지만 최근 관련 시장 위축과 함께 비상장주식 담보대출도 크게 축소된 분위기다. 이 대표의 해외 조달은 국내 금융 시스템이 혁신기업의 성장 속도와 자금 수요를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로 풀이된다.
금융권에서는 환금성과 회수 가능성 문제를 가장 큰 걸림돌로 꼽는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비상장주식 담보대출은 결국 기업이 IPO를 하거나 지분 매각을 통해 상환되는 구조"라며 "최근 비상장 지분 거래도 활발하지 않고 IPO 시장도 예전보다 까다로워졌다. 담보를 처분해 회수하기가 더 어려워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과거 비상장주식 담보대출의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금융위는 2017년 금융회사들이 건의한 관행·제도 개선 과제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비상장주식 담보대출이 유망 중소·벤처기업 창업자들의 자금 조달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당시 금융위는 증권사의 비상장주식 담보대출 기능을 활용하면 창업자들이 최소한의 생활 자금을 확보하면서 기업 활동에 집중할 수 있고, 증권사의 투자은행(IB) 기능 강화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후 관련 시장은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환금성과 가치평가의 불확실성이 여전히 해소되지 못하면서 금융회사들이 관련 대출 취급에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비상장주, 세금매길 때와 담보가치 산정 땐 값이 다르다?
현재 금융당국은 비상장주식 담보대출과 관련한 별도 제도 개선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 당국은 활성화 부진의 원인을 규제보다는 자산 자체의 담보 적격성 한계에서 보고 있다. 환금성과 가격 투명성이 낮아 금융회사 건전성 관리 차원에서 담보로 폭넓게 인정하기 어렵고, 거래시장 활성화를 통해 객관적인 시세가 형성돼야 관련 대출도 본격화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일각에서는 비상장주식 가치 평가를 둘러싼 제도적 불균형도 지적한다. 지분을 증여하거나 상속할 때는 국세청이 일정한 산식에 따라 비상장주식 가치를 산정해 과세하면서도, 금융시장에서는 환금성과 회수 가능성 등을 이유로 담보 활용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다.
금융당국은 국세청이 산정한 평가액이 곧바로 시장에서 통용되는 가격으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시장에서 그 가치로 매각이 돼야 담보가치가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비상장주식을 담보로 인정하려면 즉시 매각이 가능하고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며 "바젤 기준상 바로 처분이 어려운 자산은 자기자본비율(BIS) 산정 시 담보로 인정받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비상장주식 거래시장이 활성화되면 가격 형성과 환금성이 개선되면서 담보 활용 제약도 상당 부분 완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