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사들은 중금리대출 공급과 소비자 보호 강화, 데이터 기반 금융 서비스 등을 통해 생산적·포용금융 정책을 현장에서 구현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생산적금융과 포용금융이 금융정책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으면서 카드업계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산업과 기업으로 자금을 공급하는 생산적금융이 경제 성장의 기반을 넓히는 역할이라면, 포용금융은 저소득층과 중·저신용자, 소상공인 등 금융 취약계층을 제도권 금융 안으로 끌어들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소비와 결제, 대출, 데이터가 동시에 모이는 카드업은 이러한 정책이 실제 생활 금융에서 작동하는 접점에 가까운 업권으로 꼽힌다. 최근 카드사들은 중금리대출 공급과 소비자 보호 강화, 데이터 기반 금융 서비스 등을 통해 생산적·포용금융 정책을 현장에서 구현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1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카드사들은 포용금융을 단순 사회공헌이나 기부 활동이 아닌 상품과 서비스, 소비자 보호 체계, 데이터 활용 등 사업 구조 전반과 연결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은행이 정책자금의 공급 창구라면 카드는 정책금융이 실제 소비와 금융 이용 과정에서 체감되는 생활 접점에 가깝다.

중금리대출·대환 프로그램…카드업이 만나는 '현장 금융'

카드업계에서 포용금융이 가장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영역은 중금리대출과 서민금융이다. 중금리대출은 신용점수 하위 50% 차주를 대상으로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로 자금을 공급하는 상품이다. 금융소비자들이 불법 사금융으로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정책 금융 수단으로 활용된다.

신한카드는 카드론과 중금리대출, 결제 데이터를 활용한 정책 연계 금융을 통해 그룹 차원의 포용금융 전략 실행에 참여하고 있다. 신한금융그룹(신한지주)은 향후 5년간 15조원 규모의 포용금융 계획을 제시했다. 카드 부문은 중·저신용자 금융 수요가 가장 먼저 드러나는 접점이라는 점에서 실행 채널 역할을 맡는다.

실제 사회환원 규모도 카드업계에서 가장 큰 편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신한카드의 누적 기부금은 99억원으로 전업 카드사 가운데 가장 많다.


우리카드는 우리금융지주의 포용금융 전략과 연결해 중금리 대출 확대와 금리 부담 완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개인신용대출 이용 고객을 대상으로 금리 상한제 적용과 대환 프로그램을 통해 고금리 대출 이용 고객의 금융비용 부담을 낮추는 방식이다.

롯데카드는 포용금융 재원을 조달 구조와 연결한 사례로 꼽힌다. 최근 약 3억달러 규모의 해외 ABS(자산유동화증권)를 발행해 조달한 자금을 저소득층 금융 서비스 지원에 활용하고 있다. 롯데카드는 2021년 이후 약 2조3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해외에서 조달하며 관련 재원을 확보해 왔다.

금융사기 대응·접근성 개선…소비자 보호도 포용금융

최근 카드업계에서는 소비자 보호도 포용금융의 핵심 영역으로 인식되는 분위기다. 금융 사기와 정보 격차가 취약계층에 더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KB국민카드는 AI(인공지능) 기반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을 고도화하며 금융사기 대응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재학습 AI 기반 시스템을 도입해 피싱 등 신종 금융사기까지 탐지 범위를 넓혔고, 이상 거래 발생 시 자동 알림과 거래 정지 기능을 통해 사전 대응 체계를 구축했다.

삼성카드는 소비자 보호 체계를 조직 구조로 확대했다. 최근 소비자보호위원회의 영문 명칭을 '컨슈머 듀티 보드(Consumer Duty Board, 소비자 보호원칙 위원회)'로 변경하고 외부 전문가와 소비자 패널을 참여시키는 방식으로 상품 설계와 판매 과정에서 소비자 관점을 반영하고 있다. 채무조정 제도와 금융약자 접근성 개선도 함께 운영 중이다.

현대카드는 금융 접근성 개선에 초점을 맞췄다. 청소년 대상 가족 카드 '현대카드 틴즈'를 통해 계획적 소비 경험을 제공하고, 시니어 고객을 위한 앱 '라이트 모드'와 음성 안내 서비스 등을 도입했다. 금융 이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진입 장벽을 낮추는 방식이다.

데이터·상권 분석…포용금융의 또 다른 축

카드사가 보유한 결제 데이터도 포용금융 실행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가맹점 결제 데이터를 기반으로 매출 흐름이나 상권 변화를 분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BC카드는 결제 데이터를 활용한 기업 정보 서비스 '비즈크레딧'을 통해 소상공인의 매출 추정과 상권 분석, 사업 가치 평가 정보를 제공한다. 금융 이력이 부족한 개인사업자라도 매출 데이터를 기반으로 금융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데이터 기반 포용금융 사례로 언급된다.

NH농협카드는 지역 기반 포용금융을 강조한다. 카드 이용액의 일정 비율을 적립해 농촌과 취약계층 지원에 활용하는 카드 공익기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소상공인 대상 우대금리 쿠폰과 소비 데이터 공개 등을 통해 정책 금융과 카드 서비스를 연결한다.

하나카드는 소상공인 지원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방식이다. 약 200만 영세 가맹점을 대상으로 결제대금을 기존 'D+1일'에서 'D+0일'로 앞당겨 지급하는 조치를 시행해 자금 회전이 어려운 사업자의 유동성 부담을 줄이도록 했다.

카드업계의 포용금융 방식은 회사마다 다르지만 흐름은 공통적이다. 예전처럼 기부 규모나 일회성 상생 프로그램에 머물지 않고 대출과 소비자 보호, 데이터 활용, 금융 접근성 개선 등 사업 구조 전반으로 확대되는 모습이다.

금융권에서는 카드사가 포용금융의 실행 채널로 자리 잡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카드사는 소비와 결제 과정에서 고객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고 대출과 결제, 금융 서비스가 동시에 이뤄지는 접점에 있기 때문이다.

생산적금융이 산업과 기업의 성장 동력을 키우는 역할이라면 포용금융은 금융 시스템 밖으로 밀려나는 이들을 줄이는 장치에 가깝다. 카드업계가 이러한 변화의 접점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