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은 가격, 선택, 배송에서 이미 승부를 냈다. 비식료품은 빠르게 흡수됐다. 대형마트가 이 경쟁을 이기지 못한 이유는 의지 부족이 아니다. 구조의 문제다. 회전율은 떨어졌고 재고 부담은 커졌다. 2025년 업태 결산에서도 대형마트는 연간 역성장을 기록했다. 비식료품 부진이 실적을 끌어내렸다. 경기 탓으로 돌리기엔 설명이 부족하다. 판이 바뀌었다는 신호다.
그 판에서 식료품은 다르다. 오늘 먹을 것을 오늘 사는 즉시성. 눈으로 확인해야 안심하는 신선도. 매장에서 조리되는 델리의 체험성. 이 세 가지는 아직 화면 너머로 완전히 이전되지 않았다.
냉장·냉동 인프라도 마찬가지다. 물류 난도가 가장 높은 그로서리(식료품)에서만큼은 대형마트가 여전히 '현장성'이라는 무기를 쥐고 있다. 그래서 식료품은 대형마트의 마지막이자 유일한 방어선이 됐다.
올해 초 유통 체감지표(RBSI)에서도 대형마트 전망은 가장 낮았다. 그럼에도 기업들은 식료품 특화와 점포 리뉴얼로 방어선을 다시 긋고 있다. 경쟁의 기준도 바뀌고 있다. '누가 더 싸게 파느냐'에서 '누가 더 신선하고 믿을 만하냐'로 이동 중이다.
다만 시간은 마트 편이 아니다. 온라인 그로서리는 새벽배송과 퀵커머스로 근거리 즉시성을 잠식하고 있다. 플랫폼은 데이터와 멤버십으로 고객을 묶는다. 2025년 주요 유통사 통계에서도 온라인은 두 자릿수 성장세를 이어갔다.
식료품이 방어선인 것은 맞다. 하지만 안전지대는 아니다. 대형마트의 '식료품 올인'이 막다른 골목이 되지 않으려면 조건이 있다. 먼저 식료품 운영의 산업화다. 매장별 감각에 맡기던 신선·델리를 네트워크 단위로 표준화해야 한다. 폐기율과 회전율은 AI(인공지능) 수요예측과 연동돼야 한다. '잘 파는 식료품'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식료품'의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점포의 물류화와 콘텐츠도 중요하다. 점포는 더 이상 진열 공간에 머물 수 없다. 피킹 동선을 전제로 설계하고 마감 시간을 다층화해야 한다. 예약 픽업과 단시간 배송은 기본값이 돼야 한다. 매장은 팔기만 하는 곳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물류 거점이어야 한다. 가격과 물량만으로는 오래 버티기 어렵다. 건강·친환경 기준의 결합이나 조리와 레시피, 영양 정보가 연결된 식문화 경험 등 '이 마트에서 사야 할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체류 시간을 만들고 신뢰를 쌓는다.
소비가 양극화될수록 '합리적 프리미엄'과 '생활형 초저가' 두 레일이 함께 달린다. 정부 통계가 보여주는 큰 흐름은 온라인 고성장, 오프라인 정체다. 그 안에서도 식료품은 여전히 고객 발길을 끌어당기는 자성을 갖는다.
유통에서도 보약은 밥이 아니라 트래픽이다. 대형마트는 물건을 파는 공간에서 생활을 지탱하는 인프라로 변신 중이다. 식료품 올인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먹는 것을 장악하는 자가 결국 일상을 거머쥔다. 그 일상은 더 신선하고, 더 투명하며, 더 똑똑한 운영을 요구한다. 남은 질문은 하나다. 누가 식료품을 가장 데이터 친화적으로 운영해 신뢰를 증명하느냐다. 그 답을 먼저 내놓는 곳이 다음 유통의 주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