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이 촉발한 액화천연가스(LNG) 공급 리스크가 국내 철강업계의 원가 구조를 직접 압박하고 있다. 단기 수급 차질을 넘어 전기로 전환을 추진 중인 철강사들의 에너지 비용 체계를 흔들며 수익성과 투자 여력을 동시에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0일 외신에 따르면 카타르 국영 에너지 기업 카타르에너지(QE)는 이스라엘-이란 간 군사 충돌로 인한 액화천연가스(LNG) 생산 시설 피격을 사유로 주요 수입국에 '불가항력' 선언을 검토 중이다.
불가항력은 전쟁이나 자연재해 등 예측 불가능한 사태가 발생할 경우 계약 이행이 어려워져도 법적 책임을 면제받을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이다. 사드 알카비 카타르에너지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9일(현지시각)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중국, 이탈리아 등으로 향하는 장기 공급 계약에 대해 최장 5년간 공급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피격으로 카타르 전체 LNG 수출 용량의 약 17%를 담당하는 생산 라인이 손상됐으며 완전 복구까지는 최소 3~5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이 카타르로부터 수입하는 LNG는 전체 도입 물량의 약 14%를 차지한다. 해당 물량이 차질을 빚을 경우 국내 수요처는 장기 계약 대비 가격이 높은 현물(스팟) 시장 의존도를 높일 수밖에 없다.
국내 철강업계는 글로벌 탄소 규제 대응을 위해 고로(용광로) 중심 생산 구조를 전기로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 있다. 전기로는 철광석 대신 고철을 원료로 사용해 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지만 전력 소비가 큰 구조다. 포스코를 포함한 주요 철강사들은 전력 조달 안정성과 비용 통제를 위해 LNG 기반 자가발전 설비를 확대해왔다.
카타르발 공급 차질은 이 같은 자가발전 체계의 원가를 직접 자극한다. 장기 계약 물량 공백을 고가 현물로 대체할 경우 발전 단가 상승은 곧바로 제품 제조원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고금리 기조와 중동 리스크에 따른 원/달러 환율 상승이 겹치면서 달러 결제 기반인 LNG 도입 비용 부담은 더욱 확대되는 흐름이다. 에너지 비용이 철강사 수익성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재부상하고 있다.
철강업계 내부에서는 수익성 훼손에 대한 경고음이 커진다. 포스코는 과거 연간 7~8조원 수준이던 영업이익이 최근 1조원대로 축소되며 기초 체력이 약화된 상태다. 포항제철소 일부 공장은 수요 부진과 고정비 부담이 겹치며 사실상 적자 운영이 이어지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장에서는 에너지 비용 상승이 통제 가능한 범위를 넘어섰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특히 LNG 가격 상승이 한국전력의 전력 구입비 증가로 이어질 경우 추가적인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압력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높다. 전기로 전환을 추진 중인 철강사 입장에서는 연료비와 전기료가 동시에 상승하는 이중 부담 구조에 직면하는 셈이다.
철강사들은 이미 누적된 전기요금 인상으로 수익성 방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전력은 2022년 이후 산업용 전기요금을 총 7차례 인상했다. 최근 요금 체계 개편으로 일부 시간대 요금이 조정됐지만, 야간 요금 인상으로 심야 조업 비중이 높은 전기로 업체들의 부담은 오히려 확대됐다는 평가다.
문제는 원가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충분히 전가하기 어려운 수요 환경이다. 국내 건설 경기 둔화로 철강 수요가 위축되면서 가격 협상력이 약화된 상태다. 원재료와 에너지 비용은 상승하는 반면 제품 가격은 정체되거나 하락하는 '스프레드 축소'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카타르발 LNG 공급 차질이 예고한 3~5년의 공백은 철강업계의 저탄소 전환 시기와 겹친다. 에너지 비용 불확실성이 장기화될 경우 설비 투자 집행이 지연되고 글로벌 탄소 규제 대응 경쟁에서 구조적인 열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업계 관계자는 "K스틸법이 통과됐지만 아직 시행령이 확정되지 않아 철강업계의 부담이 여전한 상황"이라며 "미국 정부의 관세 인상과 글로벌 수요 둔화로 어려움을 겪는 철강사들은 생존 여력을 걱정해야 할 판"이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