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 속에 라면 가격 인상에 제약이 이어지면서 농심의 성장 전략에도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주력인 라면 부문 대신 비라면 및 신사업에서 돌파구를 찾는 방향으로 무게가 실리는 가운데 2024년 1월부터 미래사업실을 총괄하며 신사업 다각화를 이끌고 있는 오너 3세 신상열 부사장(32)의 경영 성과가 시험대에 올랐다.
농심은 지난 23일 서울 동작구 본사에서 화장품 제조 기업 에프아이씨씨(FICC)의 바이오 뷰티 브랜드 '아로셀'과 콜라겐 화장품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라이필의 핵심 원료인 173달톤(Da) '저분자콜라겐펩타이드NS'를 농심이 아로셀에 제공하면 아로셀이 이를 활용한 화장품을 선보이고 공동 마케팅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아로셀은 규모는 작지만 콜라겐에 특화된 바이오 뷰티 브랜드다. 농심 입장에서는 '라면 회사'라는 소비자 인식 장벽을 아로셀의 프리미엄 뷰티 전문 이미지로 상쇄할 수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농심이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 시장 점유율 확대에 한계를 겪자 기업 간 거래(B2B)로 사업 방향을 전환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25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국내 건강기능식품 시장은 농심이 신사업을 준비하던 2019년 2조9500억원에서 2025년 5조9600억원으로 2배 가까이 성장했다. 농심은 커지는 시장을 겨냥해 2020년 3월 건기식 브랜드 라이필을 론칭하며 시장에 진출했다.
론칭 6년이 지난 현재 시장 성장세와 비교해 라이필의 실적은 다소 정체된 모습이다. 출시 2년만인 2022년 3월 누적 매출 550억원을 돌파했으나 2024년 하반기 기준 누적 1200억원에 머물렀다. 연평균으로 환산하면 200억~250억원 수준이다. 연 매출 3조4000억원이 넘는 농심의 전사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출시 7년차인 현재까지도 1% 미만이다.
신 부사장이 미래사업실장을 맡은 2024년 이후 라이필은 배우 신민아로 모델을 교체하는 등 마케팅 강화를 시도했지만 굳어진 대중 인지도와 시장 점유율을 단기간에 끌어올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다.
기존 브랜드 이미지 및 마케팅 전략 한계 지적
전문가들은 농심의 기술력 대비 기존 마케팅 방식과 라면 기업이라는 굳어진 브랜드 이미지를 B2C 실적 정체 요인으로 분석한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농심 라이필은 173달톤이라는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하고도 제품 개발 과정의 혁신이나 탄생 스토리 등 감성적인 내러티브를 더하지 못했다"며 "기능적인 성과에만 매몰된 올드한 방식으로는 최근 마케팅 유행 공식을 따라갈 수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 역시 기존 브랜드 이미지의 한계를 지적했다. 이 교수는 "소비자는 건강기능식품에서 약에 버금가는 효과와 혁신성을 기대하는데 농심 라이필의 마케팅은 이를 충족시키기 어려웠다"며 "농심은 라면 이미지가 강한 회사라 초기부터 모기업의 꼬리표를 떼고 근원이 다른 브랜드로 접근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화장품 원료 B2B 시장 안착을 위해 넘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우선 먹는 제품 기준의 기존 임상 지표만으로는 부족하다. 피부 장벽을 통과해 진피층에 작용한다는 도포용 임상 데이터를 별도로 쌓아야 한다. 피쉬 콜라겐 특유의 냄새를 잡고 크림 제형에 맞게 배합하는 기술도 기존 뷰티 원료사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173달톤 미세 분해 공정 특성상 원가가 높을 수밖에 없어 화장품 제조사를 상대로 납품 단가 경쟁력을 입증하는 것도 풀어야 할 숙제다.
주력 사업의 가격 통제 환경 속에서 농심의 비라면 신사업 안착은 중요한 과제다. B2C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고 화장품 B2B 소재 시장의 납품 기준을 충족시켜 수익성을 증명하는 것이 향후 오너 3세 체제의 안착을 가늠할 지표가 될 전망이다.
이러한 안팎의 시각과 관련해 농심 측은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농심 관계자는 "이익률이 4~5% 수준인 식음료 업계 특성상 라면 등 핵심 사업에 자원을 집중하다 보니 건기식 전문 업체들과의 마케팅 경쟁에 제약이 있었다"며 "이번 화장품 B2B 진출은 본격적인 화장품 사업 진출이 아니라 라이필 콜라겐 원료의 특징을 알리기 위한 단순 협업 수준"이라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