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대통령 정책실장이 24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사진 = 뉴스1


김용범 대통령 정책실장이 24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비수도권 반도체 단지 조성 문제와 관련해 "논의 마무리 단계가 다가오고 있다"며 "확정되면 국민에게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수도권에 더 지으려 해도 땅도, 전력도, 용수도 없다. 그렇다고 해외로 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비수도권 제2 반도체 클러스터 참여를 사실상 확인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김 실장은 "수도권에 짓고 있는 공장을 옮기는 게 아니다"고 했다. 이미 진행중인 경기도 용인의 반도체 클러스터와는 별개라는 것이다.

청와대는 29일 '국토 공간 대전환' 민관 합동 회의를 열 예정인데, 두 기업은 이를 계기로 반도체 투자 구상을 내놓을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관련 내용을 논의했고, 25일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도 만난다. 당초 두 기업은 반도체 칩 후공정인 패키징 공장을 지방에 세우는 것을 검토해 왔다. 하지만 정치권의 요구에 따라 최첨단 회로를 그리는 팹(전 공정)까지 구축하는 방안을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음 달 1일 출범하는 전남광주특별시와 새만금, 충남 일대 등이 대상지로 거론된다. 최첨단 메모리 반도체 생산라인 하나를 구축하는데 최소 60조 원이 든다고 한다. 비수도권 반도체 클러스터에 5∼10년에 걸쳐 수 백 조 원 규모의 투자가 이뤄질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반도체 투자유치 공약이 쏟아졌을 때 기업의 판단에 맡겨야 할 투자 결정에 정치가 개입하는 데 대한 경제계의 우려가 적지 않았다. 실제로 이번 반도체 투자 결정 과정이 충분히 자율적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말로는 "기업이 결정할 사안"이라면서도 시기나 규모, 지역 선정 등에 대한 각종 주문을 쏟아내며 기업을 압박하는 모양새였다. 이에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이 "정치권 논리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기업의 투자 결정은 경제적 타당성과 기업 경쟁력 차원에서 충분히 시간을 갖고 검토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인공지능(AI) 시대의 폭증하는 수요에 대응해 메모리 반도체 설비확장이 급한 건 사실이다. 수도권에 편중된 제조업 투자를 다른 지역으로 분산해 지역균형 발전을 제고해야 한다는 논리도 명분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지역균형 발전이라는 정책 목표와 투자가 순조롭게 진행돼 새 시설이 초격차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지는 다른 문제다. 호남·충청 지역의 전력 사정이 수도권보다는 낫지만, 생산전력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태양광·풍력 체계만으로 1년 365일 반도체 시설을 안정적으로 돌리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발전 설비 확충과 용수 확보를 위한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대규모 투자가 기대한 성과를 내기 어렵다. 지방근무를 기피하는 인재 확보도 만만치 않은 문제다.

반도체는 우리 경제의 근간이 되는 국가 전략 산업이다. '정무적 판단'으로 투자를 성급히 결정할 일이 아니다. 기업이 내려가면 어떻게든 조건은 만들어질 것이라는 식은 곤란하다. 전력·용수 공급, 정주 여건 등 과제가 한둘이 아니다. 우리 경제의 미래를 위한 '후회없는 선택'이 어떤 길인지 차분히 생각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