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반도체·AI 데이터센터·피지컬 AI를 중심으로 AI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겠다고 공언한 가운데 전력기기 업계의 신규 수주 기회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그래픽=강지호 기자

정부가 한국형 인공지능(AI) 생태계 구축 청사진을 발표한 가운데 전력기기 업계의 수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반도체 공장과 AI 데이터센터 모두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인 만큼 전력 인프라 관련 장비 수요 확대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계획이 구체화할 경우 국내 전력기기 3사는 각자의 강점을 앞세워 수주 기회를 모색할 것으로 전망된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전날 '대한민국 대도약을 위한 3대 메가 프로젝트 국민보고회'를 열고 반도체·AI 데이터센터·피지컬 AI를 국가 핵심 성장축으로 제시했다. 반도체를 기반으로 AI 데이터센터와 피지컬 AI를 연결해 국가 차원의 AI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삼성그룹은 정부 구상에 발맞춰 평택·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2030조원, 호남·충청·영남권에 625조원 등 총 2655조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SK그룹도 AI 데이터센터에 1000조원, 반도체 공급 확장에 1100조원 등 총 2100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내놨다.


반도체 공장과 AI 데이터센터는 전력 공급 안정성이 운영의 핵심 조건으로 꼽힌다. 반도체 생산라인은 24시간 가동을 전제로 운영되는 초정밀 공정인 만큼 전력 공급이 불안정해지면 공정 중단과 수율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AI 데이터센터 역시 서버와 냉각 설비가 상시 가동돼야 해 안정적인 전력 인프라 구축이 필수다. 신규 지역에 해당 시설들이 들어서는 만큼 기존 전력망과의 계통 접속을 위한 변전 설비와 송배전 기자재, 데이터센터 내부 전력 분배에 필요한 전력 장비 등의 수요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전력기기 업계의 신규 수주 기회도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HD현대일렉트릭·효성중공업·LS일렉트릭 등 국내 전력기기 3사는 북미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와 해외 노후 전력망 교체 수요를 바탕으로 수주를 늘려왔다. 올해 1분기에만 3사 합산 수주잔고는 32조원을 넘어섰다. 해외 시장에서 축적해온 각 사 주력 분야에서의 기술력과 납기 대응력을 앞세워 국내 수주 확대를 노릴 것으로 예상된다.

HD현대일렉트릭은 대형 전력기기 분야 강자로 평가받는다. 지난 1월 미국 최대 송전망 운영 전력회사와 986억원 규모 765kV 초고압 변압기 공급 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지난달 미국 중부 대형 전력회사와도 1730억원 규모의 765kV 초고압 변압기·리액터 공급 계약을 맺으며 경쟁력을 입증했다. 신규 반도체 산단과 AI 데이터센터는 대용량 전력을 안정적으로 끌어올 송전망과 변전 설비가 필요한 만큼 HD현대일렉트릭의 초고압 전력기기 수주 경험이 강점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최근엔 배전기기 사업도 확대하고 있어 데이터센터 내부 배전 설비 수주에도 관심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효성중공업은 대형 전력기기부터 전력망 안정화 설비까지 폭넓은 사업 포트폴리오가 강점이다. 154kV·345kV·765kV급 초고압 변압기를 국내 최초로 개발한 데 이어 북미 중심으로 공급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엔 미국 시장에서 765kV 초고압 변압기와 리액터, 800kV 차단기 등을 포함한 초고압 전력기기 수주를 따내며 패키지 설루션 역량도 선보였다. 장거리·대용량 송전을 돕는 초고압직류송전(HVDC)과 전력망 안정성을 높이는 스태콤(STATCOM) 기술도 보유하고 있다.

LS일렉트릭은 데이터센터 내부 전력 분배 설비와 배전 설루션 분야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이번 달 북미 빅테크 기업 AI 데이터센터 건설 사업에 1064억원 규모의 38kV급 고압 배전반 시스템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등 올해 빅테크 데이터센터 수주 금액만 1조2000억원에 육박한다. AI 데이터센터는 서버와 냉각 설비에 전력을 안정적으로 나눠 보내는 내부 배전망 구축이 중요하다. LS일렉트릭은 북미 수주 경험을 앞세워 향후 확대될 국내 AI 데이터센터 관련 수주를 노릴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클러스터·AI 데이터센터 구축 초기 가장 먼저 검토되는 부분이 전력 공급 체계"라며 "정부 프로젝트가 구체화할수록 발주 일정과 요구 사양에 대응하기 위한 전력기기 업체들의 준비도 빨라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