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카드사들이 비자·마스터카드 등이 주도하는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컨소시엄에 대거 합류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논의가 속도를 내지 못하는 사이 글로벌 결제망 사업자들이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앞세워 차세대 결제 표준 선점에 나서자 카드사들도 대응에 나선 모습이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 컨소시엄 오픈스탠다드는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 오픈USD(OUSD)를 올해 안에 출시할 계획이다. 컨소시엄에는 비자와 마스터카드, 스트라이프, 코인베이스, 블랙록, 구글 등 글로벌 결제·디지털자산·빅테크 기업이 참여했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와 신한금융그룹(신한지주), 두나무, 카카오뱅크, 케이뱅크, 한화생명 등이 이름을 올렸다.
카드업계에서도 KB국민카드와 우리카드, 하나카드, 현대카드, 삼성카드, BC카드, NH농협카드 등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카드도 참여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도 최근 개인 인스타그램을 통해 오픈USD에 주목했다. 정 부회장은 "비자와 마스터카드, 아메리칸익스프레스 등이 공동으로 만든 달러 스테이블코인"이라며 "비자와 마스터카드가 과거 EMV를 만들어 결제의 국제표준을 만든 전력이 있는 만큼 오픈USD가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게임체인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했다.
EMV는 유로페이·마스터카드·비자가 주도한 카드 결제 국제 규격이다. 카드업계에서는 정 부회장의 발언이 오픈USD를 단순한 가상자산 상품이 아니라 결제 인프라 표준 경쟁의 연장선에서 본 것으로 해석한다.
오픈USD는 달러 가치에 1대1로 연동되는 스테이블코인이다. 기존 테더(USDT)나 서클의 USDC와 달리 발행·상환 수수료를 없애고 준비자산 운용 수익을 컨소시엄 참여 기업과 나누는 구조를 내세웠다. 기존 스테이블코인은 발행사가 미국 국채와 현금성 자산 등을 운용해 얻는 이자수익을 가져가는 구조였지만 오픈USD는 참여 기업과 수익을 공유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카드사들의 참여는 당장 달러 스테이블코인 사업을 직접 하겠다는 의미라기보다 결제망 변화에 대비하는 성격이 크다. 스테이블코인이 해외 결제와 송금, 기업 간 정산, 플랫폼 결제 수단으로 확산될 경우 기존 카드 승인·정산망을 거치지 않는 거래가 늘어날 수 있어서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사업 모델이나 카드사의 역할이 정해진 단계는 아니어서 당장 수익사업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다만 비자와 마스터카드가 참여한 글로벌 결제 인프라 논의인 만큼 시장 변화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참여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국내 카드사들은 이미 스테이블코인 관련 준비를 해왔다. 여신금융협회를 중심으로 구성된 스테이블코인 태스크포스(TF)에는 주요 카드사들이 참여해 카드 결제와 가맹점 대금 정산에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하는 방안을 살펴보고 있다. 신한카드와 BC카드, KB국민카드 등은 블록체인 기업과 협업하거나 QR코드 결제 실증, 해외 결제 모델 검토 등으로 관련 사업 가능성을 점검해왔다.
다만 국내에서 실제 서비스로 이어지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유통을 규율할 디지털자산 관련 법제화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고 전자금융거래법, 외국환거래법 등 다른 규율과의 관계도 정리돼야 한다. 해외에서 발행된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국내 기업이 결제나 정산에 활용할 경우 외환거래, 자금세탁방지(AML), 고객확인(KYC), 이용자 보호 문제가 함께 발생할 수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스테이블코인이 결제와 정산 영역으로 확산되면 기존 카드망을 우회하는 거래가 늘어날 수 있어 카드사 입장에서는 위협이 될 수 있다"면서도 "반대로 초기 인프라 안에서 카드사의 역할을 확보하면 새로운 정산 구조에 참여할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원화 스테이블코인 논의가 지연되는 사이 달러 기반 글로벌 네트워크가 먼저 표준을 만들어갈 가능성이 있다"며 "국내 금융사들이 오픈USD에 이름을 올린 것은 당장 사업화보다 결제망 재편 과정에서 배제되지 않기 위한 선제 대응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