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훈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나 어디에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 루소의 사회계약론 첫 문장이다. 루소는 이 문장을 통해 자유롭게 태어난 인간에게 어떠한 정치적 의무가 정당한지 묻는다. 그에게 강제나 지배에 따른 복종은 정당하지 않다.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이 공동선을 위해 형성한 일반의지에 따라 맺은 사회계약에 대한 의무만이 정당하다. 따라서 시민이 일반의지에 따라 제정된 법을 따르는 것은 타인의 의지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입법에 참여해 형성한 일반의지에 따르는 것이며, 시민적 자유를 실현하는 행위다.

현대 민주국가의 헌법은 이러한 일반의지를 규범과 제도로 구현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공동체 구성원이 헌법에 복종하는 것은 지배 세력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일원으로서 스스로 만든 규범을 존중하는 행위다. 헌법 질서를 지키는 것은 자신의 자유를 제한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가 가능하도록 만드는 조건을 수호하는 일이다. 이러한 헌법 존중은 개인의 이념이나 거주지역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로 인해 공동체 안에서 개인의 자유는 무제한적이고 무제약적인 자유가 아니라 공동체가 합의한 헌법 질서 안에서 보장되는 자유이다.


물론 모든 헌법이 일반의지를 구현하는 것은 아니다. 시대적, 지역적 특수성에 따라 일부 국가의 헌법은 특정 세력의 이해관계나 지배질서를 제도화한 결과일 수도 있다. 권위주의 국가의 헌법에서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의 일반의지를 발견하기는 어려운 것이 그 일례다. 반면, 민주국가의 헌법이 공동선을 구현하는 정치 질서를 담고 있다면, 헌법을 따르는 것은 타율적 강제가 아니라 시민적 자유의 실천이 된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임시정부의 법통과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공동체의 헌법적 가치로 천명하고 있다. 해방 이후 이러한 헌법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시민이 희생과 헌신을 감내했다. 독재와 폭력, 부당한 권력에 맞선 시민들은 단순히 당시의 국가권력에 저항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더 나아가 헌법이 지향하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해 시민적 자유를 실천했다. 5·18 민주화운동은 이러한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 가운데 하나다. 광주의 희생은 당시 부산과 마산을 비롯한 전국적인 민주화운동의 연장선에 있었으며, 자유민주적 헌정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시민들의 헌신이었다.

최근 5·18 민주화운동을 희화화한 응원가가 한국 사회에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 편에서는 응원가조차 마음대로 부르지 못하게 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5·18은 결코 건드려서는 안 되는 성역이며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작금의 논쟁은 두 가지 측면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첫째, 표현의 자유인가 공적 제재의 대상인가라는 논쟁은 정치 진영 간 대결 구도에 수렴되고 있다. 사건에 대한 숙의와 토론의 필요성은 무시되고, 각자의 입장에서 상대를 비난하는 목소리만 증폭되고 있다. 둘째, 이러한 대립 속에서 정작 문제의 본질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민주공동체 구성원에게 요구되는 역사 인식과 시민적 책임과 같은 보다 근본적인 질문은 충분히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시 루소를 떠올리는 이유는 대한민국에서 함께 살아가는 시민의 의미를 되새겨 보기 위해서다. 루소의 시민적 자유 개념에 비추어 보면, 민주공동체가 오랜 시간 쌓아온 역사적 경험을 왜곡하거나 희화화하는 행위는 단순한 개인의 취향이나 사적 자유의 문제로 환원될 수 없다. 그것은 공동체가 공유하는 헌법적 가치와 역사적 기억을 훼손하고 시민적 연대를 약화시킬 수 있는 공적 행위이다. 따라서 이러한 행동은 표현의 자유와 그 한계에 대한 논쟁에 제한되지 않고, 민주공동체를 유지하는 일반의지를 존중하려는 시민의 책임과 직결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태는 시민적 자유의 실천으로 보기 어렵다.

논의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그 행동의 주체가 고등학생이라는 사실이다. 앞날이 창창한 학생들의 치기 어린 행동과 역사적 무지를 어디까지 공적 책임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지는 쉽지 않은 문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무지와 미성숙 자체를 처벌의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이를 단순한 실수로 치부한 채 방치하는 것 또한 공동체의 책임을 외면하는 일이다.

다시 루소의 논의로 돌아가면, 이러한 행동에 대한 민주적 대응은 처벌보다 교육에 무게를 두어야 할 것 같다. 이들이 일반의지의 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민주공동체가 선택할 방향이다. 제도적으로 왜 그러한 표현이 공동체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훼손하는지 스스로 성찰할 수 있도록 집중적인 심화 시민교육과 역사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게 하는 방안도 검토할 가치가 있다. 중요한 것은 교육 방법 자체가 아니라 앞으로 민주공동체를 함께 책임질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학습의 기회를 제공하는 일이다. 자유의 의미와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함께 배우도록 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와 공적 징벌이라는 양극단의 논쟁을 넘어 민주공동체가 선택해야 할 보다 성숙한 대응일 것이다.

한정훈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서울대 EU센터의 센터장을 맡고 있으며, 국가미래전략원의 민주주의클러스터 연구팀을 이끌고 있다. 미국 뉴욕주의 로체스터 대학에서 유럽의회정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비교정치적 시각에서 한국의 선거와 의회정치를 연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