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한 달 동안 1%포인트 오르면 이후 최장 석 달에 걸쳐 은행 정기예금이 늘어나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증시 활황기에 예금이 한꺼번에 빠져나가기보다는 만기가 돌아온 정기예금의 재예치가 줄고 신규 자금 유입이 둔화하면서 은행의 수신 기반이 서서히 약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11일 토스 금융경영연구소 토스인사이트가 발표한 '불확실성의 시대, 은행산업 전망 및 대응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코스피 월별 수익률이 1%포인트 상승할 때 정기예금 증가세는 최대 3개월에 걸쳐 둔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코스피 상승 충격 이후 정기예금 잔액의 누적 로그변화율은 1개월 뒤 0.055%포인트 하락했고, 3개월 뒤에는 하락 폭이 0.085%포인트로 확대됐다. 이를 올해 2월 정기예금 잔액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6000억원에서 9300억원의 증가세 둔화 압력에 해당한다.
다만 이는 실제로 해당 규모의 예금이 빠져나간다는 의미는 아니다. 보고서는 해당 수치가 추정된 누적 로그변화율을 잔액 기준으로 선형 환산한 참고치인 만큼, '예금 유출액' 자체보다는 자본시장 활황기에 정기예금 증가세가 단기적으로 약화될 수 있다는 조기경보 신호로 해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주목할 점은 증시 상승의 영향이 모든 예금에 동일하게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요구불예금에서는 코스피 상승에 따른 통계적으로 유의한 반응이 확인되지 않은 반면 정기예금에서는 뚜렷한 감소 압력이 포착됐다.
이는 예금의 성격 차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요구불예금에는 가계의 생활자금과 기업 운전자금, 세금·급여 지급 자금뿐 아니라 투자 대기성 자금까지 섞여 있어 주가 상승의 영향을 총잔액에서 명확히 분리하기 어렵다. 반면 정기예금은 일정 기간 유동성을 포기하는 대신 확정수익을 얻는 상품이어서 주식이나 상장지수펀드(ETF) 등 다른 금융상품과의 수익률 비교에 상대적으로 민감하다.
이에 따라 증시가 오를 때 기존 정기예금이 즉각 중도해지되기보다는 만기가 돌아온 자금이 다시 예금으로 들어오지 않거나 신규 가입이 줄어드는 방식으로 '머니무브'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보고서의 분석이다. 실제 정기예금의 감소 반응도 코스피 상승 충격 직후가 아닌 이후 1~3개월 구간에 집중됐다.
과거 통계에서도 주식시장과 은행 예금은 대체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2016년 1월부터 올해 2월까지 월별 자료를 분석한 결과 코스피 등락률과 정기예금·요구불예금을 합친 주요 예금 증가율 간 상관계수는 -0.55로 나타났다. 2017~2018년 위험선호 회복기와 2020~2021년 코로나19 유동성 확장기, 지난해 하반기 이후 반도체 주도 증시 활황기에도 비슷한 흐름이 반복됐다.
문제는 이 같은 수신 둔화가 은행 간 예금금리 경쟁으로 이어질 경우다. 만기가 돌아온 자금을 붙잡기 위해 은행들이 정기예금 금리를 높이거나 우대조건을 강화하면 조달비용 상승과 순이자마진 축소, 이익 변동성 확대를 불러올 수 있다.
이에 보고서는 은행들이 단순히 월말 총예금 잔액만 관리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정기예금 만기 도래액과 재예치율, 신규 정기예금 유입액, 중도해지율, 특판·우대금리에 따른 비용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만기 자금을 동일한 고금리로 붙잡기보다 이탈 가능성과 고객 가치, 조달비용 등을 고려한 선별적인 가격 전략도 필요하다고 봤다.
보고서는 "시중은행은 정기예금 만기구조와 가격 규율을 중심으로, 인터넷전문은행은 생활계좌 락인과 행동 데이터 기반 고객 유지 전략을 중심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모든 만기 자금과 이동 가능 잔액을 가격으로 방어하는 전략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짚었다.
이어 "결국 방어할 예금과 방어하지 않을 예금을 구분하고, 조달금리 인상분이 수익성 지표에 미치는 영향을 계량화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