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초과이윤 배분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었던 청와대 회의가 기약없이 미뤄지면서 이 문제를 둘러싼 혼란도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정부 내에서도 교통정리가 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청와대까지 이슈에서 한발 물러선 모습이다. 초과이윤의 획일적 재분배보다 기업의 사회적 투자를 유도하는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21일 정치권에 따르면 전날 예정됐던 대통령 주재 수석보좌관회의는 시작 약 2시간을 앞두고 순연됐다. 회의에서는 기업 초과이윤 배분 방안이 논의될 예정이었다. 생중계 일정까지 잡혀 있던 회의가 취소된 것은 이례적이다. 언제 다시 열겠다는 공지는 따로 없었다.
기업 초과이윤의 사회적 배분 논의는 지난 5월 삼성전자 노사의 성과급 갈등을 계기로 본격화했다. 노사 갈등이 봉합된 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대기업의 초과이익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분배할 것인가의 해법은 사회적 대화밖에 없다"고 했다. 비슷한 시기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도 기업의 초과이윤과 초과세수를 활용한 '국민배당금' 구상을 제안하며 논의에 불을 지폈다.
기업의 초과이윤 활용 방안을 두고는 정부 내부에서도 시각차가 뚜렷하다.
고용노동부는 AI 시대 기업의 성과를 '사회가 함께 만든 결과'로 본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지난 14일 한 토론회에서 "기업이 거둔 천문학적인 성과는 기업의 독자적 혁신만으로 이뤄진 결과물이 아니다"라며 "천문학적인 AI 성과는 우리 사회가 함께 만들어낸 이익의 총량"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노동계와 경영계뿐 아니라 그동안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던 청년과 미조직 노동자, 새로운 형태의 일하는 사람까지 모두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를 통해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산업통상자원부는 기업의 이익이 미래 투자로 이어져야 한다며 투자 우선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지난 15일 "AI 시대에는 기업의 이익을 미래를 위한 투자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5월 노동부 장관이 대기업 초과이익의 사회적 재분배 필요성을 처음 언급했을 때도 "지금은 투자가 최우선"이라며 견해차를 보인 바 있다.
경제계와 전문가들은 사회적 배분 논의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15일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포럼에서 "저희가 내는 세금으로 정부가 알아서 하는 것에 토를 달 이유가 없다"면서도 초과이익의 사회적 배분에 대해서는 "이해관계자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 뭔가를 해야겠지만 그게 우리가 생각하는 방향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학계에서는 기업 초과이윤의 기준을 설정하는 것부터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가 기업의 초과이윤 재분배를 강제할 법적 근거를 확보하는 것도 문제다. 반도체 슈퍼사이클로 늘어난 '초과세수'와 '기업의 초과이윤'은 성격이 엄연히 다르다는 점에서다.
윤동열 건국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연구개발비 비중과 해외 투자 규모, 미래 설비투자 계획까지 고려하면 동일한 잣대로 초과이윤을 산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며 "반도체 산업은 수년간 적자를 감수하다 한 번의 슈퍼사이클에서 대규모 이익을 내기도 하고 같은 제조업이라도 자동차와 조선업은 투자 회수 기간과 위험도가 모두 다르다"고 말했다.
기업의 투자를 위축시킬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윤 교수는 "기업의 높은 수익 자체를 추가 부담 대상으로 삼을 경우 투자 의욕을 약화시킬 것"이라며 "특히 AI와 반도체처럼 대규모 선행투자가 필요한 산업에서는 미래 투자 여력이 줄어들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윤 교수는 "중요한 것은 '초과이윤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가 아니라 기업의 성장 성과를 미래세대를 위한 사회연대 투자로 연결하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라며 "획일적인 초과이윤 기준을 만드는 것보다 기업의 사회적 투자 성과를 평가하고 이를 지원하는 인센티브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