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쓰는 건 알겠지만 방향성이 보이질 않습니다"
얼마 전 만난 AI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의 정책 청사진을 묻자 힘없이 답했다.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독파모), 보안 특화 AI 파운데이션 모델(보안특파모), 모두의 AI, 프런티어(최상위) AI까지 사업은 늘고 있지만 이를 한 방향으로 이끌 전략은 찾기 어렵다는 얘기다. 기업들은 프로젝트 하나에 몰두하기에도 벅찬데 새 과제가 나올 때마다 구색을 맞춰 뛰어들어야 하는 실정이다.
2019년 세계 최초 5G 상용화 때도 그랬다. 정부와 통신사는 최초라는 화려한 성과를 앞세웠지만 이용자들은 기대에 못 미치는 속도에 분통을 터뜨렸다. LTE보다 20배 빠르다던 5G는 화려한 간판을 먼저 달았을 뿐, 망과 서비스 기반은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다.
AI 정책에서도 기시감이 든다. 가시적인 결과를 재촉하면서 정책의 초점은 흐려지고 예산과 행정력은 분산됐다. 독파모는 세계적인 수준의 독자 AI 모델을 구축한다는 당초 취지가 옅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보안 위협에는 보안 특파모, 해외 초고성능 모델에는 프런티어 AI가 뒤따랐고 대국민 서비스는 모두의 AI로 별도 추진됐다.
최근 1년 사이 프로젝트가 잇달아 발표되면서 이름조차 헷갈린다. 연초부터 준비해도 결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과제를 하반기에 새로 꺼내 드는 모습에서는 정부의 조급증마저 읽힌다. 현안이 생길 때마다 사업을 덧붙이면 선택과 집중은 어려워지고 행정 비용도 커진다. 정책 중심이 계속 흔들린다면 미국과 중국이 긴장할 만한 AI 3강은 요원하다.
올림픽 동메달도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수년간 일관된 훈련과 안정적인 지원이 쌓여야만 가능하다. 수능을 앞둔 수험생도 불안한 마음에 자신의 수준과 맞지 않는 심화 학습에만 매달리면 오히려 독이 된다.
정부가 AI 3강이라는 달콤한 구호에 취해 단기 성과만 좇는다면 5G 때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할 수 있다. 급할수록 우선순위를 세우고 정책 역량을 한곳에 모아야 한다. AI 패러다임 전환에 제대로 대응할 백년대계를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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