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만 행정원(행정부)에 청년의 목소리가 또랑또랑 울리기 시작한 것은 해바라기 운동의 열기가 채 식지 않은 2014년 말이다. 희끗한 머리의 장관 곁에 서른다섯도 안 된 청년 창업가와 사회혁신가가 한두 명씩 자리를 잡고 장관이 미처 보지 못한 세상을 귀띔했다. 이른바 '거꾸로 가는 멘토링'이다. 2017년에는 고등학교 1학년 왕쉬안루(王宣茹)가 학교 숙제로 정부 청원 사이트 '조인'(Join)에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를 금지하자'는 제안을 올렸다. 2년 뒤인 2019년 7월 학교와 패스트푸드점 매장에서 플라스틱 빨대가 자취를 감췄다.
행정원 고문 시절 이 청원 사이트 개발에 참여한 40대 해커인 오드리 탕(唐鳳) 대만 정부 공식 사이버 대사(사이버 공간 거버넌스 담당 무임소대사)는 지난 7월 동행미디어 시대와의 인터뷰에서 "젊은 세대를 미래의 유권자가 아니라 현재의 이해당사자로 대할 때 그들은 가장 큰 역량을 발휘한다"며 "지혜는 나이 든 사람만의 전유물이 아니고 혁신은 청년만의 전유물이 아니다"라고 했다. 청년을 선거철에만 챙기는 '표밭'이 아니라 오늘의 정책을 함께 짜는 '설계자'로 대하라는 것이다. 그는 "청년 정치는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공적 공간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모든 집단적 행동"이라고 했다.
탕 대사의 청년 정치는 거리에서 시작됐다. 2014년 3월 중국과의 서비스무역협정 강행 처리에 반발한 학생과 시민들이 입법원(국회)을 24일간 점거한 해바라기 운동을 통해서다. 당시 서른셋이던 탕은 점거 현장의 목소리를 바깥세상으로 실시간 중계하는 기술 지원을 맡았다. 그는 "협력의 에너지와 개방형 디지털 도구가 결합하면 시민들이 정책의 공동 설계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직접 봤다"고 회고했다.
해바라기 운동 이후 대만 청년들은 두 갈래 길로 정치에 들어섰다. 첫째 길은 정당이었다. 해바라기 운동 세대가 세운 정당 시대역량(時代力量)은 2016년 첫 총선에서 5석을 확보하며 원내 제3당이 됐지만 4년 뒤 3석으로 쪼그라들었고 2024년에는 의석을 모두 잃었다. 탕 대사는 "풀뿌리 운동은 유연한 네트워크와 빠른 합의 속에서 활력을 얻지만 제도 정치는 경직된 위계와 엄격한 정당 규율을 요구한다"며 "혁신은 주변부에서 일어나지만 제도 정치는 시급한 변화보다 연속성에 더 큰 보상을 준다"고 했다.
둘째 길은 디지털 숙의 플랫폼이었다. 2014년 말 국민당 마잉주 정부는 탕을 행정원 고문으로 발탁했다. 그는 시민 해커와 정부가 함께 만든 플랫폼 'vTaiwan'에서 정부 측 창구 역할을 맡았다. 탕 대사는 "디지털 숙의 플랫폼은 절차와 근거, 권한을 함께 나누면 투명한 국정 운영이 가능하다는 것을 청년 활동가들에게 보여줬다"며 "이 깨달음이 시민과 제도권 사이의 간극을 좁혔다"고 했다. 거리에서 정부를 향해 소리치던 청년들이 제도 안에서도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탕 대사는 디지털 숙의 플랫폼을 대만 청년 정치의 핵심으로 꼽았다. 빨대 제안이 올라간 조인이 대표적이다. 2015년 문을 연 조인에서는 제안이 60일 안에 5000명의 동의를 얻으면 담당 부처가 두 달 안에 답해야 한다. 문턱이 낮으니 청년들이 몰렸다. 2021년 기준 조인 청원 제안자의 4분의 1 이상이 18세 미만이었다. 그는 "대만 시민사회의 에너지가 오래간 것은 상설 디지털 플랫폼과 열린 피드백 구조로 풀뿌리 참여를 제도화했기 때문"이라며 "젊은 세대는 시민 참여를 선거 때만 하는 일이 아니라 일상의 실천으로 이해한다"고 했다.
디지털 숙의 플랫폼은 사회적 갈등을 푸는 실마리가 되기도 했다. 2013년 대만에 진출한 우버를 두고 택시업계가 거세게 반발하자 2015년 vTaiwan이 나섰다. 4주 동안 4000명 넘는 시민이 토론에 참여했고 기계학습 도구가 입장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동의한 문장을 골라냈다. 그해 8월 정부와 우버, 택시업계는 이렇게 찾은 합의점을 들고 생중계 카메라 앞에 마주 앉았다. 탕 대사는 "공유하는 가치에 초점을 맞추면 양극화의 화산 같은 열기를 협력과 문제 해결에 쓰이는 지열 에너지로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탕 대사는 '시민 AI'(Civic AI)를 숙의 민주주의의 핵심 수단으로 제시했다. 시민 AI는 정답을 내놓는 대신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정리하고 서로 동의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주는 AI로, 일종의 '토론 진행자'에 해당한다. 탕 대사는 "진정한 시민 알고리즘은 사람들의 주의를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이해를 돕는 촉진자로서 공동체에 기여한다"고 역설했다.
바다 건너 일본에서는 AI 엔지니어 출신 안노 다카히로(安野貴博)가 대만의 조인과 vTaiwan을 참고해 AI로 시민 의견을 모으고 정책에 반영하는 실험을 벌였다. 이는 2025년 5월 청년 신당 '팀 미라이' 창당으로 이어졌고 안노 대표는 그해 7월 참의원 선거에서 당선됐다. 탕 대사는 "(팀 미라이의 사례처럼) 적절한 공동의 장이 마련되면 오픈소스 코드 한 줄도 정치적 리더십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오드리 탕 대사 프로필
▲1981년 대만 타이베이 출생 ▲2014~2015년 행정원 고문(역멘토) ▲2016~2022년 행정원 장관급 정무위원(최연소) ▲2022~2024년 초대 디지털발전부 장관 ▲2024년 10월~ 사이버 대사 ▲2025년 '대안 노벨상' 라이트 라이블리후드상 수상(대만인 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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