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13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g0v 공동창립자 취샤오웨이(Ipa Chiu)가 동행미디어 시대와 인터뷰하고 있다./사진=김성아 기자


대만 타이베이 도심 중정구, 충칭난루(重慶南路)와 닝보시제(寧波西街)가 만나는 사거리 모퉁이. 푹푹 찌는 7월 한낮 볕 아래 훅 끼쳐 오는 끈적한 습기와 스쿠터 매연을 뚫고 걸음을 옮기자 잿빛 외벽에 노란색 창틀이 층층이 얹힌 4층짜리 콘크리트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1968년 지어진 타이베이 제1여고 교원 숙소를 타이베이시가 고쳐 2019년 문을 연 비영리단체 공유공간 '타이베이 NPO 취락'이다. 이곳에 대만 최대 시빅테크(Civic Tech·시민기술) 공동체 'g0v'(제로 정부)의 아지트가 자리 잡고 있다.

g0v는 2012년 말 젊은 프로그래머들이 "코드를 써서 사회를 바꾸자"며 한자리에 모이면서 시작됐다. 첫 작품은 정부 공식 사이트 주소의 'gov'에서 알파벳 'o'를 숫자 '0'으로 바꾼 사이트에 복잡한 중앙정부 예산안을 시각화해 시민 눈높이로 공개한 것이었다. 대만 시빅테크의 상징이 된 g0v에서는 출범 이후 14년 가까이 1만명 넘는 시민이 900여건의 공공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군데군데 페인트칠이 벗겨진 좁은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자 '反客為主'(손님이 주인이 된다)라고 적힌 포스터와 노란 선반 위에 제멋대로 널브러진 오픈소스 서적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곳곳에 묻어난 흐트러짐은 이곳이 누구나 드나드는 열린 공작소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 실제로 g0v에는 회원 가입 심사도, 내부 위계도 없다. 두 달에 한 번 열리는 해커톤에는 누구나 무료로 참가할 수 있다. 자신이 해결하고 싶은 공적 문제를 3분 동안 발표하고 함께할 동료를 찾으면 곧바로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참여자의 60% 이상은 개발자가 아닌 디자이너·변호사·NGO 활동가·학생 등 일반 시민이다. 자원과 인맥이 부족한 청년들에게 g0v는 정치 영역으로 나아가는 문턱 낮은 진입로가 돼 준다. g0v 공동창립자 취샤오웨이(Ipa Chiu)는 동행미디어 시대와의 인터뷰에서 "g0v 현장에서 가장 자주 공유되는 규칙은 '정부를 비판하는 데서 그치지 말고, 직접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제안하라'는 행동주의"라며 "짧은 발표 시간 동안 자신이 실행할 구체적 행동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연습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고 말했다.

자신이 낸 아이디어가 실제 법과 정책이 되는 경험은 청년들에게 강한 정치적 효능감을 안겼다. 대표적인 사례가 정치헌금 공개다. 2014년 g0v 활동가들이 감찰원의 정치헌금 자료를 온라인에 올리자 시민 1만여명이 하루 만에 30만여건을 디지털화했다. 이는 2018년 정치헌금 내역의 온라인 공개를 의무화하는 법 개정으로 이어졌다. 코로나19 당시 '마스크 지도'와 '문자 출입 등록제'도 시민 제안에서 탄생했다. 취샤오웨이는 "입장이 다른 사람과 같이 밥을 먹으며 데이터를 바탕으로 토론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가, 정치가 무엇인지 연습하는 경험'"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만의 민주주의와 시민사회는 강한 회복력을 지니고 발전해 왔다"며 "과거에는 단체 중심이었다면 현재는 커뮤니티 중심으로 대만인들의 삶 속에 깊이 자리 잡았다"고 했다. 이어 "'시민사회는 순수하고 정치는 더럽다'는 식의 이분법적 구분이 대만에서는 그리 강하지 않으며 둘은 하나의 연속선상에 가깝다"고 말했다.

대만이 일상적인 시빅테크 활동으로 청년들이 자연스럽게 정치 참여에 나설 통로를 만들어 온 반면 한국 청년정치는 여전히 '일회성 인재 영입'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는 "대만과 달리 한국은 청년들이 일하면서 경험과 경력을 쌓고 네트워크를 구축한 뒤 진출하는 구조가 아니라 한두명을 깜짝 영입해 소비하는 방식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능력 있는 청년들이 제 발로 찾아올 수 있도록 일터와 삶 속에서 정치 역량을 키울 토양부터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7월13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g0v 공동창립자 취샤오웨이(Ipa Chiu)가 동행미디어 시대와 인터뷰하고 있다./사진=김성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