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서울 강서구의 한 중학교에서 학생이 보고서 작성 수행평가를 하고 있다. 동행미디어 시대는 문해력 저하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교사와 강사 13명을 심층 인터뷰 한 뒤 사례 50개를 선별해 8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이를 토대로 자체 진단 테스트 문항을 만들들었다./조현호 기자


▲지문: '적선이 방향을 바꿔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찰나, 장군은 적선을 향해 배를 돌리라고 명령했다. 장군이 이끈 조선 수군은 치열한 전투를 이어갔다. 이 전투는 이순신 장군이 지휘한 노량해전이었다.'

▲질문: 다음 글에서 '찰나'의 뜻으로 가장 알맞은 것은 무엇입니까?
①장군의 이름
②조선 수군이 사용한 배
③아주 짧은 순간
④노량해전이 벌어진 장소



동행미디어 시대가 직접 만든 문해력 진단 테스트 항목 중 하나다. 시대는 중·고등학생별로 각기 다른 14개 문항을 만들어 서울·경기·부산 지역 중학생 251명, 고등학생 343명 등 모두 594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17일부터 이달 10일까지 문해력 진단 테스트를 실시했다.

앞서 소개한 문항은 중학생용이다. 전체 251명 중 정답(아주 짧은 순간)을 맞힌 학생은 211명(84.1%)이었다. 반면 19명(7.6%)은 '찰나'를 장군의 이름이라고 답했다. '찰나라는 이름을 가진 장군이 적선을 향해 배를 돌리라고 명령했다'고 이해한 것이다. 11명(4.4%)은 찰나가 노량해전이 벌어진 장소라고 답했고, 10명(4.0%)은 찰나를 조선 수군이 사용한 배라고 응답했다.

지난달 8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한국은 과학 526점, 수학 522점, 읽기 501점을 기록했다. 읽기 영역은 2000년 수치를 집계한 이래 가장 낮은 점수다. 이를 계기로 시대는 문해력 저하 현상이 얼마나 심각한지 확인하기 위해 중·고등학생을 상대로 한 진단 테스트를 진행했다.



문항 설계를 위해 초·중·고교 교사와 국어 논술강사 등 13명을 심층 인터뷰해 문해력 저하 현상을 8가지 유형으로 나눈 뒤 각각의 유형을 평가할 수 있도록 설문을 구성했다.

/그래픽= 신재민 편집위원


'찰나'는 '맥락 추론'을 확인하기 위한 문항이다. '찰나'라는 단어의 뜻을 몰라도 전체 문장 속에서 뜻을 유추해낼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앞선 결과대로 중학생의 15.9%가 맥락 추론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등학생들을 상대로는 '맥락 추론' 문항으로 '편린'의 올바른 뜻을 물었다. 제시한 지문은 이것이다. '낡은 사진 한 장은 당시 노동자들의 삶의 편린을 보여준다. 그 사진만으로 시대 전체를 알 수는 없지만, 작업 환경의 일부를 짐작할 수 있다.'

전체 응답자 343명 중 정답(전체를 이룬 작은 한 부분)을 맞힌 학생은 284명(82.8%)이었다. 반면 45명(13.1%)은 '시대 전체를 설명하는 완전한 기록'이라고 답했다. 11명(3.2%)은 '사실과 무관한 거짓 정보'라고, 3명(0.9%)은 '사진을 보관하는 방법'이라고 응답했다. 고등학생의 17.2%도 맥락 추론에 어려움을 겪는 셈이다.

문해력 저하의 또 다른 유형 중 하나인 '단어의 정확한 사용'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환멸'을 정확하게 사용한 문장이 무엇인지 물었다. 많은 학생이 '환멸'을 '기대나 환상이 깨진 데서 오는 괴로움'이라는 본뜻 대신 '화가 난다' '힘들다' '짜증난다'는 의미로 혼동해 사용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한 설문이다. 실제 전체 응답자 251명 중 203명(80.9%)은 '환멸을 느꼈다'는 보기를 골라 정확한 뜻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 48명(19.1%)은 '환멸났다' '환멸했다'를 정답으로 표기, 정확한 의미를 몰랐다.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단어의 정확한 사용' 문항은 '반증'이었다. 반증을 '어떤 사실이나 주장이 옳지 않음을 반대 근거를 들어 증명함'이라고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 학생은 전체 343명 중 202명(58.9%)에 불과했다. 141명(41.1%)은 반증의 정확한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시대가 직접 만든 중·고등학생 문해력 진단 테스트 문항 및 정답(https://zeitgeist-coder.github.io/literacy_survey/)과 교육 현장에서 수집한 문해력 저하 사례 50가지(https://zeitgeist-coder.github.io/literacy_DB/)를 각각의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래픽=신재민 편집위원


설문 조사 결과에서 나타나듯 학교 현장에선 문해력 저하 현상이 점점 심화하고 있다고 대다수 교사가 입을 모은다. 지난달 11일 시대가 찾은 서울 동작구의 한 일반고 종례 시간 풍경은 이랬다. 고등학교 1학년 담임교사 A씨가 '점심시간이나 체육 시간엔 소등하고 에어컨을 끄고 가시오'라는 교내 공지사항을 전달하자, 곧바로 한 학생이 물었다. "소등이 뭐예요?" "불 끄는 거!" A씨의 답변에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A씨는 시대에 "'이 정도 단어의 뜻도 모르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요즘엔 흔히 있는 질문"이라고 했다.

문제는 문해력 저하가 단순히 국어 성적 하락이나 언어 활용능력의 부족으로 나타나는 것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고영선 한국교육개발원장은 "문장을 잘 이해하는 아이일수록 논리적 추론이나 수학 문제를 푸는 능력이 뛰어나다. 문해력은 단순히 국어 성적만 좌우하는 게 아니라 모든 교과 학습을 뒷받침하는 기초역량"이라고 강조했다.

현대 사회에서 문해력은 단순 어휘력이나 추론 영역을 넘어 종합적인 의사소통 능력으로 확장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유네스코는 문해력을 읽고 쓰는 단편적 행위가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고 소통하면서 시민 역량을 키우는 과정으로 정의한다. 문해력 저하가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사회에 참여하는 시민 역량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